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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심정 벗님글방

빨간불 아닌 파란불일 때 건너는 게 자유다

등록 2022-07-22 06:13수정 2022-07-22 06:17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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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우리를 바라보며 산 아래로 내려가는데 멀리 굴뚝에서 피어오르는 연기가 보인다. 어릴 때 살던 집이 생각나 그 집에서 하루를 묵기로 하였다. 할머니가 홀로 살고 있었는데 사람이 그리웠는지 나를 아들처럼 반겨 주었다. 삼발이가 놓여 있는 화로 위에서 된장찌개가 끓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기억 저 끝에 숨어 있던 옛 풍경이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른다.

내가 머물 곳이 여기라면 좋겠다마는 내일 아침 또 어디론가 떠나야 하니 인생이란 끝도 없이 걸어야 한다는 게 맞는 말인 것 같기도 하다. 아침 일찍 일어나 따사로운 햇살 맞으며 지나온 인생길을 잠시 뒤돌아보는데 꽃은 보이지 않고 마른 잎만 가련하게 보인다. 나는 무엇을 위하여, 무엇을 찾아 여기까지 왔나? 아무리 생각해 봐도 무엇을 위한 것도, 무엇을 찾으려고 한 것도 없었다. 그냥 생각 없이 걸었을 뿐, 이제 와서 어떤 의미를 부여한다는 것은 웃기는 일이었다.

나는 하루하루 소중히 살지 않았고 그저 세월에 떠밀려 살다가 여기까지 온 것이다. 잘못 걸어온 것은 아닐지라도 혹시나 거짓말하며 살지는 않았는지 느닷없이 그런 생각들이 가시처럼 마음 한구석을 찌른다. 생각해 보니 굳이 거짓말을 할 필요도 없었는데 거짓말을 했고 굳이 자신을 속일 필요도 없었는데 자신을 속였다. 아무도 그렇게 하라고 가르쳐 주지 않았는데 나는 왜 그런 짓을 했을까? 더 답답한 것은, 거짓말했다는 건 알겠는데 왜 거짓말을 했는지 그게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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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이라는 것이 빨리 달리는 것보다 천천히 걷는 것이 훨씬 아름다운 건데 그 옛날에는 왜 그걸 몰랐을까? 사람마다 가는 길은 다르지만 누구에게나 인생길은 하나라는 거, 누구는 달렸다고 할 것이고 누구는 걸었다고 하겠지만, 어느 구간에선 달리고, 어느 구간에선 걷고, 어느 구간에선 쉬어 가고 그랬겠지. 다만 누구는 달리는 구간이 길었고, 누구는 걷는 구간이 길었고, 누구는 쉬는 구간이 길었을 테지. 하지만 돌연변이도 있지.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그냥 하루하루 숨만 쉬며 사는 사람들, 바로 나 같은 사람을 두고 하는 말일 게다. 꿈도 없는 놈이 마치 꿈이 있는 것처럼 살았으니….

웬 아이가 버스 정류장을 향해 달린다. 정류장에 도착할 무렵 버스는 사람들을 태우고 떠난다. 아이는 발을 동동 구르며 다음 버스가 오기를 기다렸다. 그사이 많은 사람들이 버스 정류장에 모여들었다. 버스가 도착하자 사람들이 우르르 올라탔다. 아이는 사람들한테 밀려서 타지 못했다. 버스는 떠나고 아이는 또 한숨을 쉬었다. 하는 수 없다고 생각한 아이는 마침 지나가는 경찰차를 세웠다. 기차를 꼭 타야 하는 날이라고 사정을 얘기했다. 기차역에 다다르자 아이는 온 힘을 다해 뛰었다. 역무원이 검표를 하고 있다. 그제야 아이는 승차권이 없다는 것을 알아차린다. 기차를 타기 위한 기본적인 일을 하지 않은 것이다. 기적이 울렸다. 아이는 멍하니 떠나가는 기차를 바라보았다. 사실 아이는 기차가 어디로 가는 건지도 모르고 그냥 기차를 타고 싶었을 뿐이었다. 기차를 타면 좋은 꿈을 만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5분만 일찍 왔더라면 아니 1분만 일찍 왔더라면…. 하긴, 인생이라는 것이 ‘그랬더라면’의 연속이지. 하지만 목표도 없이 기차를 탄다 한들 그게 무슨 의미가 있으랴? 그 멍청한 아이가 바로 나였다는 것을 내 아이들에게 말해 주면 깜짝 놀라겠지? 그래도 말해 줘야겠다.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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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여자가 내게 다가와서는 다짜고짜 내년에 기차를 같이 타자고 말을 건넨다. 세상에 이런 고마운 사람이 다 있다니…. 나를 위로하고 길을 인도하는 것이 마치 수호천사 같기도 했다. 이름을 물어보니 ‘꿈’이라고 말한다. 이름이 참 예쁘다고 했더니 살짝 웃는다. 나는 그 웃음에 빠져 허구한 날 그 여자만 생각했다. 내년에는 꼭 그녀와 함께 기차를 타겠노라고 다짐하면서 날마다 꿈길에서 그녀를 기다렸다. 그러나 그녀는 단 한 번도 꿈길에 나타나지 않았다.

나에게 있어서 대학 입시란 일 년에 한 번 지나가는 기차나 마찬가지였다. 나는 그 기차를 한 번도 탄 적이 없었고 해마다 타려고 애를 써 봤지만, 어떻게 된 일인지 승차 거부를 당하기 일쑤였다. 사실 승차 거부라는 말은 점잖은 표현이고 실제로는 내가 자격이 안 되니까 기차를 타지 못한 것이다. 게다가 승차권도 없이 기차를 타려고 했으니 도둑놈이나 마찬가지였다. 남의 물건을 훔치는 사람만 도둑이 아니었다. 자신을 속이고 양심을 훔치는 나 같은 사람도 도둑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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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내 체육대회 하는 날이었다. 교문에서 출발하여 안국동 로터리를 돌아서 오는 단축 마라톤 대회에 나갔다. 아이들 대부분은 달리는 척하다가 학교 근처에서 쉬고 있었다. 그럴 거면 뭐하러 마라톤 대회에 나갔는지 그 마음들이 궁금했다. 함부로 남의 흉을 보지 말라고 했는데…. 나 역시 그 아이들과 다를 게 없었다. 힘들게 달리고 있는 나에게 동무들이 버스를 타고 가자며 꼬드겼다. 끝까지 달려야 한다는 생각을 했지만, 나는 이미 버스를 탔고 학교 앞에서 내려 뻔뻔스럽게도 교문을 향해 달리고 있었다. 이럴 거면 처음부터 학교 근처에서 쉴 것이지 뭐하러 힘들게 멀리 가서 버스를 타고 왔는지 모르겠다. 달리는 척하다가 일찌감치 옆으로 샌 아이들이 솔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도둑 가운데 가장 음흉한 도둑은 자신의 양심을 훔치는 사람이 아닐까 싶다. 나도 그런 도둑이 되어 골인 지점을 향해 달렸다.

난 그저 버스를 타고 온 것을 속이려고 했을 뿐인데 달리다 보니 계획에도 없는 3등을 하고 말았다. 내가 3등 할 놈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던 선생님이 나를 부르더니 내 손바닥을 보고는 머리를 툭 쳤다. 1등·2등 한 아이들은 반환점에서 받은 도장이 찍혀 있었는데 나는 그 도장이 없었던 것이다. 괜히 3등을 해서 선생님한테 야단만 맞았다. 동무들이 나를 꼬드겨서 그랬다는 핑계를 대려고 했지만, 그래 봤자 나를 속인 건 나 자신이었다. 그러므로 나는 나를 꼬드긴 동무들을 미워할 자격도 없는 것이었다. 뒤늦게 원망한들 무엇 하랴, 내가 온전치 못했던 것을. 그날 밤 잠을 못 자고 반성을 했는데, 그나마 반성이라도 할 수 있었다는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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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기차를 타려고 했을까? 아무 노력도 없이 꿈을 이루려는 속셈이 내 마음속에 깔렸었던 건 아닐까? 겉모습에 취한 나머지 진실을 제대로 보는 눈도 없이 대학에 가려고 했으니 참으로 어리석었다. 아무 목적도 없는데 기차를 타면 꿈이 이루어진다고 생각한 내가 그렇게 한심할 수가 없다. 아무리 내가 모자라는 놈이라고 해도 그렇지 어떻게 그런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하게 되었는지 모르겠다. 저 섬에 가려면 헤엄을 쳐서라도 가야 한다는 간절함이 있어야 하는데 편안하게 배 타고 갈 생각만 하고 있었으니….

사회 시스템에서 벗어나려면 거기에 맞설 실력이라도 있어야 하는데 나는 그 시스템에서 벗어날 실력도 없었고 그냥 세월의 뒷골목에서 폼을 잡는 양아치에 불과했던 것이다. 신호등이 빨간불일 때 건너는 것이 자유가 아니라 파란불일 때 건너는 것이 자유다. 그런데 그 쉬운 것조차 하지 못하면서 기차를 타려고 했으니 이 얼마나 부끄러운 일인가! 적어도 하늘이 준 재능을 사랑하는 척이라도 했다면 뜬구름 잡으려고 서성대는 양아치는 되지 않았을 텐데, 나는 내가 무슨 재능을 지니고 있는지도 알지 못했다. 뒤늦게 숙였던 고개를 쳐들고 내 별을 찾아보기로 하였지만, 이미 세상은 나 같은 쪼다들은 쳐다보지도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어둠 속에서 헤매던 어떤 쪼다가 하늘에서 들려오는 별들의 노랫소리를 듣게 되었는데, 하늘의 은덕을 받았는지 눈물을 펑펑 흘리며 자신이 걸어온 길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비로소 자기가 잘못 걸어왔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었다. 그 일이 있고 나서부터는 더 이상 기차를 기다리지 않았고 양아치 생활도 청산하게 되었다.

나는 그렇게 쪼다로 살면서 아까운 세월을 허비했다. 만약 그렇게 살지 않았더라면 내 인생은 적어도 마른 잎처럼 가련하지 않았을 것이다. 지금 생각하니 참 슬프다. 내가 공부를 하지 않아서 대학에 못 간 걸 가지고 교육 탓만 하고 있었는데, 그건 핑계도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도 나는 제대로 된 교육을 소홀히 여기는 내 나라가 못마땅하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이제는 때가 되지 않았을까? 경제도 중요하지만 사람살이를 풍요롭게 하는 길은 뭐니 뭐니 해도 교육이 아닐까 싶다. 교육 혁명까지는 아니더라도 학부모, 선생님들, 학생들 모두 뜻을 모아 우리네 학교가 바뀌었으면 참 좋겠다. 그게 우리 아이들이 잘 살고 우리나라가 잘 사는 길이라고 감히 생각해 본다. 나를 보라! 승차권도 없이 기차를 타려고 하는 이런 쪼잔한 청춘은 더 이상 생겨나서는 아니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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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듬해 나는 ‘꿈’이라는 여자와 함께 기차를 타러 갔다. 하지만 나는 개찰구를 통과할 수 없었다. 그렇게 겪었으면서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승차권 준비를 하지 않았던 것이다. 결국 나는 또 기차를 타지 못했고 기차를 타고 가는 그녀를 멍하니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빈 철길이 쓸쓸하게 보였고 우수수 떨어지는 나뭇잎을 바라보니 마치 내 꿈이 산산이 부서져서 흩날리는 것 같았다. 그때 나는 내 양심이 신음하는 소리를 들었다. 꿈이 있어야 꿈이 부서지는 걸 알지, 꿈도 없는 놈이 어떻게 꿈이 부서지는 걸 안단 말인가. 이런 도둑놈 같으니라고!

언젠가 산을 오르는 나에게 미소를 보내 준 꽃들이 있었는데, 나는 봉우리에 오르는 상상에 취해 모른 척 지나가고 말았다. 이제 와 생각하니 그 꽃들이 참 고마운 동무들이었다. 지금이라도 그 꽃들한테 돌아가 미안하다고 말하고 싶지만, 그러기에는 너무 먼 길을 왔고 설사 돌아간다 해도 부끄럽고 창피해서 그 꽃들을 바라볼 엄두가 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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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 앞 광장을 지나가는데, 어떤 노인이 내게 다가와 말을 건넨다. “그 여자의 이름은 ‘꿈’이 아니라 ‘헛꿈’이라네.” 느닷없는 노인의 말에 나는 깜짝 놀랐다. 무얼 하는 노인이기에 내 마음을 꿰뚫어 보는 걸까? 헛꿈은 허깨비와 비슷해서 몸과 마음이 허한 사람한테 걸리는 병이다. 굳이 다른 게 있다면 허깨비가 보이는 사람은 제 몸이 허하다는 걸 느낄 수 있지만, 헛꿈을 꾸는 사람은 제 마음이 허하다는 걸 느끼지 못한다. 그러니까 헛꿈을 꾸는 사람은 허깨비가 보이는 사람보다 더 허약한 사람이다. 노인이 내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다시 말했다. “꿈 조심하게!” 노인은 무섭지 않았지만, 세상에 그렇게 무서운 말은 처음 들어 보았다. 어떻게 꿈을 조심하라는 말을 할 수 있을까? 그렇다면 꿈이 나를 해칠 수도 있다는 말이 아닌가? 그 노인에게 꿈을 어떻게 조심해야 하는지를 물어보려고 했으나 이미 사라진 뒤였다.

‘꿈’이라는 여자를 떠나보내고 집에 돌아와 방구석에 세워져 있는 기타를 집어 들었다. 청소년들에게 부끄러운 나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어서였다. 나 같은 불쌍한 청춘은 더 이상 있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기에. 그런데 노랫말이 자꾸만 내 발목을 잡았다. 고치고, 고치고 또 고치다 보니 40년이 지나도록 발표를 하지 못했다.

꿈은 내 인생을 감싸 주고 보호해 주는 의로운 벗이다. 그런데 나는 그런 꿈을 내 인생을 남한테 보여 주는 도구로 이용했으니 꿈을 배신한 거나 마찬가지다. 나중에 알았다. 꿈을 배신하면 헛꿈을 만나게 된다는 것을. 사랑하는 청소년들이여, 혹시라도 ‘꿈’이라는 사람을 만나거든 섣불리 사랑하지 말지어다. 그 ‘꿈’이라는 것이 ‘헛꿈’일 수도 있을 테니….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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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떠나가 버린 기차를 보면서
내가 걸어온 길을 생각해 본다
나는 무엇을 찾아 어디로 가는가
꿈도 희망도 없이 떠도는 그림자
뜬구름 잡으려고 서성이는
가엾은 나의 인생아
상처 난 양심의 신음 소리 들으며
진실을 생각해 보라

둥 둥 둥 북소리 나를 쫓아오네
또 다른 기차가 기적을 울리네
서글픈 계절에 낙엽이 우수수
꿈이 흩날리네 찬바람 속에서
기차는 무정하게 지나가고
철길만 눈에 보이네
길 잃은 철새는 어디로 가려나
불쌍한 나의 인생아

음음, 나는 알았네 나의 헛된 꿈을
이제는 기차를 기다리지 말자
나는 걸어가리라 바람 소리 들으며
어린 날의 내 별도 찾아보리라
저 거친 광야에서 부는 바람
이제는 두렵지 않아
바람을 헤치며 내 꿈을 찾는다
누구를 원망하랴(‘헛꿈’, 1980)

글 한돌(노래 ‘홀로아리랑’ ‘개똥벌레 등 작사·작곡가, 음악가, 작가)

*이 시리즈는 순천사랑어린학교장 김민해 목사가 발간하는 <월간 풍경소리>와 함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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