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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심정 벗님글방

영원을 꿈꾸고, 오늘 죽을 것처럼 살아라

등록 2022-04-21 15:21수정 2022-04-21 15:21

사진 픽사베이
사진 픽사베이

<정처없는 나그네의 가난한 산책>

# 새벽 1시에 깨었다가 다시 잠든다. …규모가 꽤 큰 대중식당. 일행인 대학생 대선 군이 자기 등 뒤에 앉은 사람 어깨를 툭 치며 “재미가 깨소금인 찍자 놀이 한판 어때요?” 제안을 한다. 그러자 상대방이 벌떡 일어나, 감히 어떤 놈이 허락도 없이 남의 어깨를 치느냐고 노려본다. 눈빛 하나로 상대를 꼼짝 못하게 할 만큼 살벌하다. 꿈인데 소름이 돋는다. 얼른 일어나 정중히 사과한다. 미안합니다, 젊은 친구가 제 흥에 겨워 선생께 무례를 저질렀나봅니다. 부디 진정하시고 용서해주십시오. 그러자 보이지 않는 저쪽 (조폭 일당) 두목이 굵직한 바리톤으로 말한다. 어이, 자칼, 노인이 저렇게 말씀하시니 그만 자리에 앉지? 자칼이 등을 돌리고 앉는데 두목의 말투가 귀에 익었다. 자리에서 일어나 건너다보니 맞다, 바리톤의 주인공은 바로 고향 선배 불곰이다. 아이쿠, 형님. 홍콩인가 어디에 사신다는 말을 들었는데 언제 오셨습니까? 선배가 반색하며 두 손을 번쩍 들고 자네 미스코리아 아닌가? 한다. 예, 맞습니다, 저 미스코리아예요. (어린 시절 미스코리아 오현주씨 덕분에 ‘미스코리아’라는 별명으로 통한 적이 있음.) 불곰 선배가 자리에서 일어나 두 팔을 번쩍 들고 한바탕 껴안을 태세로 말한다. 자네야말로 내 부하를 용서하시게. 조직에 들어온 지 얼마 안 됐는데 성질이 좀 까칠해. 이쯤에서 꿈을 벗은 것 같다. 문득 떠오르는 생각 하나. 어차피 전쟁이란 걸 하지 않을 수 없는 세상이라면 두목끼리라도 서로 통하는 사이였으면 좋겠다. 싸움을 하려면 적어도 둘이 있어야 하지만 싸움을 끝내는 데는 하나로 족하다 했지. 아예, 처음부터 싸움이 없게 하는 데도 하나면 족하지 않을까? 저 하늘처럼, 어디에도 없으며 어디에나 있는 텅 빈 사람. 세상에 무엇이 그와 다툴 수 있으랴? 아아, 하늘을 닮고 싶다!

# 막차인 시내버스에서 졸았나 보다. “아저씨, 종점이오!” 투박한 운전기사 목소리에 깜짝 놀라 깨어난다. 동승했던 기림도 졸고 기림이 데려온 고양이까지 졸았나 보다. 셋이 버스에서 허둥지둥 내리는데 발걸음은 계속 잠결이다. 큰일이다. 컴컴한 거리에서 두리번거리다가 꿈을 벗는 순간 어김없이 들리는 한마디. …큰일 아니다! 셋이 밤길을 걸어 돌아가면 된다. 괜찮다. 사람이 만든 모든 길에 유턴이 있다. 온 길을 되돌아갈 수 없는 그런 길은 없다. 인간에게 회개는 언제든지 가능한 것. 그러니 인생길에서 무슨 일이 벌어져도 괜찮다. 뭐가 잘못됐어도 돌아가면 된다. 사실 인생에 잘못이란 없는 것이다. 잘못하는 게 인생이니까. 그러나 한님의 길에는 유턴도 멈춤도 없다. 오직 한 길이다. 거기에 머리카락만큼의 어긋남도 없기 때문이다. 강이 개울로 흐르고 봄이 겨울로 접어드는 것을 보았느냐? 돌아서거나 멈추어야 할 이유가 원천적으로 없는 길이 그분의 길이다. 잊지 마라. 네가 어디를 가다가 멈추고 돌아서고 그러는 것 자체가 한 치도 어긋남 없이 한님의 길로 가는 것임을! 가다가 잘못 온 줄 알았으면 돌아가라. 그게 바로 너에게 주어진 그분의 길을 곧장 가는 거다. 어제 눈으로 보지 않았느냐? 썰물이 밀려들고 밀려나고 그러면서 어김없이 멀어져가는 것을. 그러므로 다시 말한다. 괜찮다, 괜찮다, 인생에 감당 못할 큰일이란 없는 것이다.

# 무슨 일로 자기가 무시당했다는 생각에 동생 손가락을 깨문다. 여린 손가락뼈에 이빨이 닿는 것을 느끼며 아차, 잘못했구나, 싶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 동생은 자지러지게 울고 다행히(?) 집안에 어른이 없어 혼나지는 않았지만 어쩌면 그렇게 너밖에 모르느냐는 자책의 회초리가 가슴을 파고든다. 기억나는 꿈은 여기까지. 잠에서 깨어나 시계를 보니 밤 11시55분, 하루가 지나려면 5분 남았다. 이런 계산이 무슨 소용이겠느냐만 이것도 버릇이다. 사람이 평생을 저로 살지 않고 제 버릇으로 산다는 말이 그래서 있는 건가? 화장실 다녀와 다시 자리에 눕는다. 이번에는 대원군 이하응의 어머니란다. 역사적 사실인지는 알 수 없고, 아무튼, 두 손 모으고 기도하는 그녀의 뒷모습이 보인다. 누군가 그녀에게 말해준다. “기도란 너보다 약한 누구에게 하는 것이 아니다. 너보다 높고 깊고 넓고 큰 신령님께 드리는 것이다. 그러므로 기도는 간곡해야 한다. 건성으로 하는 기도는 기도가 아니라 신령님에 대한 모독이다. 한마디를 하더라도 정성을 다해라. 기도할 때는 기도에 오롯해야 한다. 괜한 잡념이 머리카락만큼이라도 비집고 들어오지 못하게 해라. 무엇보다도 기도는 밤낮없이 이어져야 한다. 한번 끊어진 기도를 다시 잇는 건 태산만큼 무겁고 힘든 일이다. 부디 기도를 중단하는 일만큼은 없도록 하라. 한 순간인들 숨 쉬지 않고 살 수 있느냐? 기도는 숨이다.” 대원군 어머니가 고개를 외로 돌려 소리 나는 쪽에 귀를 기울이고 경청하는 모습이 장엄하고 융숭하다. 끝내 얼굴은 보이지 않고 희뿌연 바위처럼 넓고 평평한 등허리만 눈에 가득 들어온다. 갑자기, 저 여인이 바로 어린 동생 손가락 깨물던 그 철부지 아이라는 생각이 번갯불처럼 뒤통수를 친다. 깜짝 놀라 꿈에서 깨어난다. 됐다, 이번 꿈은 꿈 자체가 메시지다. 무슨 군더더기를 보태랴? 오, 한님! 저로 하여금 오직 기도로 살게 해주십시오. 아니, 제 삶이 온통 당신께 드리는 기도이게 해주십시오. 아멘.

사진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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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두산 호랑이한테서 숨 쉬는 법을 배운다. “들숨으로는 겨드랑이를 목발로 받쳐 태산처럼 무거운 몸을 버티고 날숨으로는 솜털처럼 가볍게 날아올라라.” 입가에 언제나 웃음이 깃들던 호랑이는 이틀 만에 어디론지 가버리고 그가 머물던 토굴만 쓸쓸히 남아있다. 태산처럼 무겁게, 솜털처럼 가볍게! 과연 이것이 동시에 가능하단 말인가? 생각하는데 누가 속삭인다, 동시라야 진정한 삶이지 따로따로면 백프로 가짜인 거라! 꿈에서 깨어나 묻는다, 도대체 어떤 인간이 그럴 수 있단 말인가? 누구의 속삭임에 웃음기가 섞인다, 동시에 몸과 영혼으로 살아가는 인간이 어떻게 그러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ㅎㅎㅎ…

# 얼굴 표정이나 몸짓은 낯익은데 누군지 모르겠다. 그의 속가슴에 혹이 생겨 차츰 커지면서 심장을 압박하고 있다. 현대 의료 기술로는 혹을 제거하거나 줄이는 방법이 없는지라 성장을 억제시키는 약물로 처치하는 수밖에 없다. 그런데 그 약의 효과가 언제까지 지속될지 아무도 모른다. 인간의 신체에 면역력이 있어서 혹이 적응을 하게 되면 약효가 떨어질 것이다. 꿈속에서 누가 말한다. 뭐야? 그러니까 시방 자네가 시한부 인생이다, 이런 얘기지? 허, 참. 그게 자네만의 경우는 아니잖나? 이 세상 누구는 시한부 인생 아닌가? 그가 대꾸한다. 그건 그렇지만 자기가 그렇다는 걸 생생하게 알면서 산다는 게 쉬운 일인 줄 아시오? 그걸 생생하게 아니까 삶이 더 수월할 수도 있지 않겠나? 시시한 설교 집어치우고 당신도 나처럼 되어보시오. 그래도 그런 말이 입에서 나오는지. 뭐, 자네 생각이 정 그렇다면 더 말할 것 없지. 그럼 어디 순간마다 커지는 혹을 근심하면서 전전긍긍으로 살아보시게. 하기는 그것도 인간이 맛볼 수 있는 여러 살맛들 가운데 하나일 수 있겠지. 일체(一切)가 유심조(唯心造)라, 만사가 마음먹기에 달렸느니! ㅎㅎㅎ… 같이 웃다가 꿈에서 깨어난다. 충주 버스터미널 다방 유리창에 이런 글이 적혀있다. Dream as if you’ll live forever(영원히 살 것처럼 꿈꿔라). Live as if you’ll die today(오늘 죽을 것처럼 살아라).

글 아무개 관옥 이현주 목사

***이 글은 순천사랑어린학교 교장 김민해 목사가 발간하는 <월간 풍경소리>와 함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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