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평화의 길을 묻다-장회익 교수 즉문즉설
김지하 시인의 비판은 부정적 쇼크 때문일 것
자기만 생각하는 인간, 온생명 죽이는 암세포
지난 13일 서울 정동 프란체스코수도회 강당에서 생명평화탁발순례단이 마련한 ‘생명평화의 길을 묻다’는 주제의 세 번째 즉문즉설이 펼쳐졌다. 법륜 스님과 김경재 목사에 이은 세 번째 타자는 장회익(70) 서울대(물리학)명예교수였다. 이날 마당에선 그가 초대 녹색대학장을 지낸 대표적인 생명학자인만큼 ‘생명’에 대한 질문들이 쏟아졌다. 특히 사회를 맡은 생명평화탁발순례단 황대권 공동체위원장은 김지하 시인이 장교수의 온생명론을 비하한 내용을 질문해 대표적인 생명사상가들끼리의 논쟁을 촉발시켰다. 김 시인은 최근 인터넷매체인 <프레시안>에 쓴 글에서 장 교수의 ‘온생명론’의 글을 인용하며 “낱생명이 유용, 쓸모가 있다고?”라면서 ‘자기 자신도 낱생명인데 마치 자기가 중추신경계 자체인 듯, 자기가 다른 것을 환히 보고 있는 듯, 온생명 쪽에서 낱생명을 내려다보는 듯하고 있다’며 ‘신학 짝퉁 같다’고 몰아붙였다.
‘낱생명 유용’이라 말한 적 없어…전체와 개체 함께 봐야
-‘동학적 생명관’을 지닌 김지하 시인이 장회익 교수의 생명관이 서양의 영향을 받은 짝퉁 신학이라고 비난했는데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예전 김 시인이 쓴 책에 대해 서평을 쓴 적이 있다. 그 때 과학에 대한 부분이 부적절하다는 점을 지적한 데 대해 김 시인이 상당한 쇼크를 받았다고 했는데, 아마도 부정적 쇼크를 받았던 것 같다. 이번 글은 상당히 의외다. 내가 쓰지 않는 표현까지 썼다. 날생명에 대해 나는 유용하다고 말한 적이 없다. 안 읽어보고 말한 것 같다.
나는 전체와 개체를 함께 봐야 한다는 입장이다. 가정을 예로 들어보자. 나는 개체이기도 하지만 가정이란 전체에 속한다고 해서 개체가 아닌 것이 아니지 않느냐. 문제는 개체 생명을 절대화하면 개체 차원에서 온생명을 죽이는 일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내가 살기 위해서 다른 생명을 먹어야 하는데, 내가 중요하면 다른 생명도 중요하다. 식물만 먹는다고 하는 이들도 있지만 식물도 생명이기에 자가당착에 빠질 수 있다. 개체가 없으면 온생명도 될 수 없다.
-장교수가 주창하는 ‘온생명’이라는 게 무엇인가.
=생명이 뭐냐고 할 때, ‘생명의 정수’라는 게 있지 않겠는가. DNA가 생명에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그것도 생명의 정수는 아니다. 생명이란 생명현상이 나타나야 한다. 문제는 뭐가 얼마만큼 만나야 생명현상이 나타나느냐는 것이다. 박테리아는 물, 공기, 영양소가 있어서 생명이 된다. 사람도 몸만 가지고는 생명이 안 된다. 우주의 99%는 진공이다. 진공에 던져놓으면 사람 생명이 아니다. 온생명이라면 우주의 어디다 던져놔도 생명의 기능을 해야 한다. 그렇게 따져보면 지구 생명체 전체가 된다. 거기에 하나가 더해져야 한다. 태양이 있어야 한다. 그것도 적절한 거리에 있어줘야 한다. 생명이 되기 위해 인과의 실타래가 얽혀있다. 이 손은 어떻게 움직이는가. 태양에너지가 녹색식물에 닿아서 에너지 칼로리를 만들어내고 그것을 먹어 에너지가 돼 내 팔이 움직이는 것이다. 태양에너지와 내 팔이 이렇게 연결돼 있다. 이것을 우리는 일상적인 시각으로 잘 보지 못한다.
온생명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 우리가 온생명 안에 있어
-장 교수가 온생명의 중추신경계가 개체와 전체의 매개체 역할을 하고 있다고 할 때 박이문 교수가 ‘당신이 그걸 봤어?’ 하니 대답을 못했다고 하면서 김 시인이 비판했는데.
=박 선생에게도 온생명을 모두 이해시키기는 어려웠다. 김 시인의 말을 종잡기 어렵다. 온생명이 따로 있어서 별도의 의식이 있다고 생각 안한다. 우리가 온생명 안에 있다. 내 개인이 온생명이라는 게 아니고, 사람에게서 의식이 나온 건 개인 것이 아니라 인류의 문화 덩어리에서 나온 것이다. 그러나 아직까지 온생명의 의식이 충분히 깨어나지 못하고 있다. 자기가 누군지 알지 못하지만 깨어나고 있다.
150억년의 나이를 지닌 우주에서 우리 같은 생명체가 나타나기 위해 40억년이란 세월이 필요했다. 또 다른 곳에서 이런 생명체가 나올 수 있는 게 아니다. 지구라는 아주 특별한 곳에서 나왔다. 더구나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생명체가 나온다는 것은 대단히 놀라운 것이다. 그 안에서 ‘자기’라는 주체의식이 나왔다. 그 물질덩어리에서 어떻게 주체의식이 나왔는지 내 자신도 아직 이해 못한다. 생명 속에서 그런 놀라운 것이 나왔다. 우리 같은 존재는 쉽게 나올 수 없다. 우주적 존재다. 40억년의 세월동안 만들어진 것이다. 인간의 출현으로 주체의식이 나왔다. 주체적 생명이 깨어난 것은 우주적 사건이다.
-인간만이 의식을 가진 존재라는 말인가. 꼭 인간과 같아야 의식을 가진 존재로 여기는 것도 편견 아닌가. 의식이란 서로 무엇인가 파악하고 인식하는 능력이라면 식물에도 의식이 있는 게 아닌가.
=우리가 생각하는 의식은 복잡한 신경계에서 나온다. 그러나 나무는 그렇지 않다. 나무가 의식을 가지고 있다고 인정할 이유는 없다. 적어도 의식이라는 게 나오기 위해선 몇 십억 년간 공을 들인 끝에 나왔다. 그만큼 우리라는 생명이 소중한 것이다. 식물도 조건반응이 있긴 하지만 동물이 가지고 있는 중추신경계는 없다. 의식과 물질을 나눌 수는 없다. 사람도 눈이나 뇌를 다쳐 에고이스트나 범죄자가 될 수도 있다. 내 두뇌가 잘못돼 딴 사람처럼 될 수도 있다. 마취제를 먹어봐라. 물질과 의식이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 그렇다해도 식물이 의식을 갖고 있다고 근거를 찾기는 어렵다.
기독교 등 제도종교는 나에게 족쇄…초종교적 입장
-지구의 입장에서 보면, 의식을 가진 인간이이야말로 생명평화를 해치는 해충이 아닌가.
=온생명이 생물학적 존재만이 아니라 정신적인 존재로 가도록 하는 유일한 존재가 인간이다. 그런데도 인간은 자기만을 생각하다 온생명을 죽이는 암세포와 같다. 선한 사람만이 아니라 잘난 사람과 훌륭하다는 사람들도 그렇다. 도덕적으로 자기 조직 내에서는 잘 하고 있어도 생명적 관점에선 잘못하고 있는 게 많다. 많이 벌어 많이 쓰는 게 지구 생명의 관점에선 죄가 되지만 자기 조직에선 잘 난 사람으로, 선으로 평가받지 않는 게 세상 아닌가.
-외계에 인간과 같은 생명체나 UFO는 있다고 보는가 없다고 보는가?
=외계 생명체가 없다고는 단정 안한다. 그러나 대단히 어렵다고 생각한다. 태양이 있고, 지구 같은 어떤 행성이 만들어져야 가능하다. 만약 있어서 광속으로 여기에 오더라도 몇천만년이 걸릴 것이다. 그러므로 생명체가 있다고 하더라고 교신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UFO는 없다고 본다. 전혀 다른 현상을 그렇게 보기도 한다. 기상에 의해 희한한 현상들이 많다. 누군가는 외계인과 얘기를 나눠보았다고 하는데 그것을 믿을 수는 없다.
-온생명론이 기독교 신학의 아류라는 비판에 대해선.
=어느 순간 기독교가 나에게 족쇄가 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아니 제도권 종교가 그랬다. 나름대로 신앙을 느끼지만 기독교 말고도 배워야 하는 많은 가르침이 있구나하는 것을 알았다. 이제 초종교가 내입장이다. 나는 하나님이 계시다고 믿는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믿는 것과는 다르다. 나는 하나님을 잘 모르지만 우주적 의미가 있을 것이다. 삶의 궁극적 의미가 있다는 입장이다. 낱생명도 온생명을 통해 궁극적 의미에 이른다고 본다. 그 정도의 신앙을 가지고 있다.
-생명의 안락사 문제를 어떻게 보나.
=옛날에는 죽었을 상황이어도 의료기술의 발달로 억지로 못 죽게 하니, 판단해야 한다. 사람들이 생명을 유지시키는 것만 생명을 보살피는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건강하게 살고, 건강하게 죽는 것이 진정으로 건강한 것이다. 따라서 의사 한명의 판단이 아니라 합의에 의한 것이라면 법이 그 정도는 허용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마지막엔 온생명을 위해 던지는 게 바람직하다. 우리에겐 더 살 수 있으면 어떻게든 더 살려는 본능이 있다. 자신이 회생하기 어려운 상태가 되면 안락사를 시켜달라고 미리 결정한 사람들도 막상 안락사 시점에 의식이 희미한 상태에서 안락사를 거부하는 일이 많다고 한다. 나는 설사 그렇게 의식이 희미한 상태에서 오직 살려는 본능만으로 이를 거부해도 안락사해달라는 것을 내 자신의 경우 약속해놓고 싶다.
글·사진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탁발평화순례단 ‘생명평화의 길을 묻다’ 즉문즉설은 매주 목요일 오후 6시30분~10시 서울 중구 정동 프란체스코수도회관(경향신문 옆) 2층 강당에서 열린다. △20일=김종철 <녹색평론> 발행인. △27일=정양모 신부(다석학회 회장) △12월 4일=도법 스님.
◈ 김지하 시인이 <프레시안>에 쓴 ‘최재천·장회익에게 묻는다’ 발췌문
장회익씨의 ‘온생명’에 관해서는 별로 말을 하고 싶지 않다. 자기 자신이 방정스럽게 날더러 한 말 ‘어림없다’를 되돌려주는 정도 이외엔 없다. 그만큼 볼품이 없다. 떼이야르나 통섭에 관해 말해버린 에코파시즘 위험에 하나도 빠짐없이 속속들이 말려들었을 가능성으로 가득 찬, 심지어 그 책을 쓰기 위해 번지수가 맞지도 않은 주역이며 뭐며 동양 사상을 그야말로 주간지 기자 용어로 ‘도둑질’해 온 사냥 과정까지도, 주역 등을 다루는 데에 수십 년 주역 전문가도 내내 조심하는 괘사 해석을 제멋대로 기독교식으로 천박하게 해석해 제치는 것이나 마음에 드는 것은 단 하나도 없다.
도대체 생물학을 물리학 다루듯 했으니 대운하를 토목 공사하듯 해치우려 했던 어떤 사람과 닮아도 보통 닮은 게 아니다.
역시 개인의 낱생명은 개똥도 아니고 거대한 온생명의 그 어마어마한 중추신경계에 의해 조정되고 통제되는 불쌍한 낱생명이 그저 불쌍하고 불쌍할 뿐이다.
학문으로서의 체계, 격조 그런 건 있지도 않지만, 느껴지지도 않는다. 그러나 그는 인기다. 팬이 많다. 혹시 누가 아는가? 팬들은 그 책에서 ‘에코 파시즘’ 아닌 ‘에코 피스’를 찾을는지?
한 구절만 보자. 대강 요약한다. ‘낱생명도 유용하지 않은 건 아니지만 보다 중요한 것은 온생명이요 온생명의 중추 신경계다.’
마치 자기가 중추 신경계 자체인 듯 자기가 다른 것을 화안히 보고 있는 듯 말한다.
‘유용하긴 하지만?’
낱생명이?
유용(有用)? 쓸모가 있다고?
쯧쯧쯧-
문제는 자기 자신도 낱생명인데 함부로 유용, 무용한다는 것이니 과연 생명을 안다고 할 수 있는 것인가? 삶을 ‘유용’ ‘무용’ 운운하는 자는 도대체 누군가? 제가 신인가? 하기야 전편을 통해서 온생명 쪽에서 낱생명을 내려다보고 계신다. 거룩하다. 도무지 학문이나 과학 이전에 신학 짝퉁 같아서 웃음이 난다. 노코멘트가 나을 것이다.
박이문(朴異汶) 선생이라고 계신다. 유럽과 미국 등에서 유럽 철학, 과학, 문학을 수십 년 공부하고 가르친 유럽통이시다.
장회익씨의 큰 생명에 대한 장광설을 내내 듣다 듣다못해 끝내 한마디,
‘당신이 그걸 봤어?’
장회익씨의 입이 그 때 조그맣게 얌전하게 오므라드는 걸 보고
‘아하, 역시 임자는 유럽이로구나!’
나에게 방자하게 ‘어림없다’고 할 때와는 전혀 다르다.
장회익씨는 분명 ‘우리의 전통 학문이 말해주는 삶의 지혜와 현대 과학이 보여주는 ’온생명‘ 개념을 어떤 방식으로 우리의 새 문화 속에 수용하는 것인가가 문제’라고 걱정한다. 초심이겠다. 이 걱정의 의미만은 인정해야겠다. 그러나 그는 근본을 모른다. ‘온생명’의 고향인 서양은 우주의 조리(條理)와 인간의 윤리(倫理) 사이에 거대한 차별이 있어 매개자가 있어야 한다. 그래서 ‘미셸 세르’처럼 ‘생명 계약’을 말해야 한다. 그러나 동아시아 사상에서는 우주의 조리와 인간의 윤리는 일치한다. ‘매개(중추신경계 따위)’나 ‘계약’은 필요 없다. 장회익씨는 이 근본적 차이를 모른다.
개벽의 때가 가깝다.
일단 오류는 가차 없이 비판해야만 만인이 다 사는 길이라는 개벽의 때에 다 자기를 개혁해서 오롯한 모심으로 한 걸음 한 걸음 새 세상으로 나아갈 자격을 얻어야 하는 것이다. 개벽은 분명 무자비하고 참혹한 혁명이 아닌 것이다. 또 이따위 엉터리 생명 장사꾼들이 제압되지 않으면 개벽은 혁명을 통과하게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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