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이란 무엇인가. 그리고 세상을 초월해 저 높은 곳을 향하는 인간의 이상은 어디까지 가 닿을까.
첫 순례지는 ‘아기아스 트리아도스(Agias Triados) 수도원’이다. 벽 같은 수직 절벽에 수도관 파이프 같은 통로를 내놓았다. 계단도 1925년에서야 만들어졌는데, 130개의 계단을 올라가야 한다. 계단과 통로가 만들어지기 전까지 수도사들은 나무 사다리나 밧줄을 타고 오르내렸다.좁은 통로와 계단을 통해 수직 절벽 위로 올라가니 그 위는 평지처럼 평평하다. 신이 수도원용으로 제작한 모형 바위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마당은 좁지만 정원은 생각보다 넓고, 어디선가 날아온 흙 몇 줌에 의지해 몇 그루의 나무도 버티고 서 있다.출입구 옆쪽으로 돌아가니 굵은 동아줄이 기둥을 감고 있다. 수도사들이 절벽 위를 오르내릴 때 수도원과 세상을 연결해주던 유일한 끈이다.
수도원 내 한두 평 남짓한 방에 난 작은 창밖으로 새가 한 마리 날고 있다. 옛 은둔 수도사들은 감옥 같은 이 방에 스스로를 가두고, 자유롭게 나는 새를 보면서 무엇을 꿈꿨을까. 그리스 신화에서 하늘을 날고자 했던 이카로스처럼 하늘을 날고 싶었을까, 아니면 그런 마음마저 비워 허공이 되고자 했을까. 수도원 입구 반대쪽으로 나가보니 저 멀리 설산을 배경으로 칼람바카 마을이 바위군 틈에 앉아 있다. 설산과 마을과 수직바위가 트리오처럼 어울려 있다.
수도원을 내려오는 길에서 다시 아폴론을 만났다. 녀석은 꼬리를 좀 흔드는가 싶더니 이내 고개를 돌려버린다. 어떻게 해야 녀석의 마음을 되돌릴 수 있을까. 점심 끼니용으로 싸온 소시지를 보여주며 부르자 처음엔 쑥스러운 듯 고개를 숙이더니 이내 다가와선 맛있게 받아먹는다. 그러곤 좀 더 없냐는 듯이 쳐다본다. 남은 소시지마저 넘겨주지 않을 수 없다. 아폴론의 쩝쩝 소리에 맞춰 내 배에선 꼬르륵 소리가 난다. 그때 수도원 계단을 오르던 아폴론 일행이 개를 향해 손을 흔든다. 소시지에 정신 팔려 일행을 내팽개친 그가 무정하다는 듯이. 일행들을 보더니 아폴론은 부끄러운 듯 도랑으로 숨는다. 개가죽만 뒤집어썼을 뿐 영락없는 사람이다. 이제 전날의 소원함을 풀고 아폴론과 즐거운 데이트를 해볼까 하는 생각도 잠시, 고개를 돌려보니 녀석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다. 꼬리를 흔들어봐야 내 배낭에서 더는 나올 게 없다는 것을 눈치 채고 튄 것이다. 삶이란 그런 것. 오고 감을 받아들이지 못하면 슬픔과 고독뿐이다. 수도사들이 바위 끝 삶을 산 것은 슬픔과 고독 속에 자기를 가두기 위함이 아니라 자기로부터 해방되기 위함이다. 나도 좀 더 대범하게 녀석을 보낼 수 있어야 한다.
<그리스인생학교>(조현 지음, 휴) '5장, 하늘 위의 수도원, 메테오라'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