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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심정 벗님글방

어찌 사람을 피하고만 살랴

등록 2012-01-30 10:43

반가워 포옹하는 모습 사진 <한겨레> 자료 까치설날’인 신정에는 해맞이를 가고 ‘우리설날’인 구정에는 세배를 간다. 해맞이는 약간의 노력만 더한다면 함께 하고픈 이들과 갈 수 있었다. 하지만 세배는 피하고 싶은 경우에도 의무감으로 가야만 한다. 같은 설날이지만 신구에는 이런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말없는 해는 모두에게 편안하지만, 유정(有情)한 인간은 누구에게나 편할 수가 없는 까닭이다. 이번 명절엔 아예 템플스테이를 가는 '화려한 싱글'로 변신했다. 집에 가봐야 친인척들에게 ‘왜 결혼 안하느냐?’는 반복된 지청구를 듣는 일이 너무 힘들어 해마다 피신오는 동지(?)들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혈연이 모인 자리는 듣기 싫은 말도 들어야 하고, 덮어두었던 생치기까지 들추는 일도 더러 생기기 마련이다. 아무리 가족이라 할지라도 피하고 싶은 상황까지 만나야 하는 것은 괴로운 일이다. 이래저래 명절이라는 즐거움 뒤에는 싱글만이 감내해야 할 심리적 고통은 해가 지날수록 부피가 더해졌다. 설연휴로 상처받은 싱글은 제자리로 돌아온 후에도 피인지사(避人之士)를 꿈꾼다. ‘코드’가 맞는 자리에만 어울리겠다는 다짐을 한다. 마음에 드는 이도 다 못보고 사는데, 싫은 사람까지 보고 살아야할 이유가 없는 까닭이라고 자기합리화도 해본다. 한 술 더 떠서 피세지사(避世之士)는 더욱 좋은 일이라고 찬양한다. 그리하여 이 세상과 무관하게 지내면서 내가 할 수 있는 그리고 좋아하는 일만 하고 살겠다는 결심을 굳힌다.
2009년 9월 남북 이산가족 상봉 모습 사진 <한겨레> 자료 그 싱글은 얼마 전에 출간된 『인생을 낭비한 죄』라는 책을 읽었다. 인간관계에 지쳐 피인(避人)과 피세(避世)를 꿈꾸는 어떤 스님 이야기에 눈길이 멈춘다. 어느 날 문득 누굴 보든지 ‘저 사람이 내가 마지막으로 만나는 사람이 될지도 모른다’는 귀절에 이르러 필이 꽂혔다. “사실 매일 만나야 하는 사람들이지만 상대방은 큰맘먹고 멀리서 온 경우가 대부분이다. 물론 그날 이후로 두 번 다시 찾아오지 않는 경우도 많다. 알고보니 똑같은 수없는 사람이 아니라 한 사람 한사람이 전혀 다른 새사람이라는 사실을 발견한 것이다. 또 나 자신도 언제 이슬처럼 이 세상에서 사라질지 알 수 없는 일이다. 따라서 언제든지 누구나 내 인생의 ‘마지막 사람’인 것이다.” 아! 정말 그렇구나. 그 자리에서 책장을 덮었다. 공자의 롤모델인 주공(周公)은 머리를 감다가 세 번 머리카락를 쥐고서〔握〕뛰어 나왔고, 밥을 먹다가 세 번 뱉고서〔吐〕쫓아 나왔다고 한다. 그 이유는 목욕 중에 세 차례 누군가 찾아왔고, 식사 도중에도 세 차례 볼일로 찾아왔기 때문이다. 그 때마다 젖은 수건을 감고서, 또 젓가락질을 멈추고 사람맞이를 마다하지 않았다. 이런 그를 흠모하여 후인들은 ‘삼토삼악(三吐三握)’이라는 사자성어로 영원히 보답했다. 어쨋거나 사바세계는 인토(忍土)라고 했다. 본래 참지않고는 살 수 없는 땅이다. 한 단계 낮추어 감인(堪忍)이라는 완곡한 표현도 사용했다. 참지못할 고통은 없는 땅인 까닭이다. 이 세상은 내가 감당할 수 있는 괴로움이 적당히 있기 때문에 그런대로 살만한 곳이라는 의미가 된다. 그렇다. 현실이 만족스럽지 못하다고 해서 피인과 피세가 결코 해답이 될 수 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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