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위의마을에서 새끼를 난 어미소 사진 조현
참 신통방통한 일이다. 어린 처녀 소가 발정이 와서 수정시키려고 보니 이미 임신한지 4개월이 되었다는 것이다. 거 참 놀라운 일이다. 무정란처럼 자가 수정? 에이, 그런 게 어딧나!
송아지는 출생 8~9개월이 되면 첫 발정을 하고 새끼를 가질 수 있는 월령이 된다. 그렇지만 사람으로 치면 여중생 정도 밖에 안 되기 때문에 사람이나 짐승이나 너무 어릴 때 임신을 한다면 산모와 태아, 어미와 새끼의 건강 문제가 우려 될 수 있을 것이다. 좀 더 성장해서 골격이 갖추어 진 다음에 임신을 시켜야 어미 소도 등치가 더 크게 성장하고 송아지도 건강함은 당연하다.
일반 농가에서는 발정을 한다고 해서 즉시 수정시키지 않고 최소한 13~14개월 때 까지 기다렸다가 수정을 한다. 그 때가 성숙한 처녀 나이가 되는 것이다.
그런 이유로 해서 우리 축사에서 유망주로 태어난 어린 암소에 한두 번 발정이 왔으나 무시하고 기다렸다. 그런데 이번에는 13개월이 되었어도 발정할 생각을 않는 것이다. 발정을 넘기다 보면 아예 발정을 하지 않는 경우도 있게 되는데 내버려 두면 석녀가 되고 말 터이다.
그럴 때는 발정 촉진주사를 한다. 일종의 홀몬 생성제 이다. 우리 소도 발정이 없어 한 두달 더 기다리다가 촉진제를 놓았다. 아니나 다를까 발정 끼를 보였다.
소가 발정할 때는 계속 울어 대고, 다른 소를 올라타는 행동을 보이고, 우사 안에 있는 전체 소들이 흥분 상태를 보이게 된다. 이제 되었구나 싶어 수정을 시키기 위해서 수정사를 불렀다.
그런데 어? 이게 웬 일인가? 이미 임신이 되어 벌써 4개월 정도나 되었다는 것이다. 참 신통한 일이다. 수정을 시킨 적도 없는데... 넉 달 전 다른 소에 인공수정할 때 잘못해서 엉뚱한 녀석에게 수정을 시켰을까? 아니다. 혹시...? 우사 옆 칸에 사는 황소가? 숫컷 수에 눈초리가 가게 된다.
10마리의 우리 소들 중에는 16개월 된 혈기왕성한 ‘성주’란 이름을 가진 앳된 수소가 한 마리 있다(이름이 왜 성주인지는 아이들이 붙여주었기 때문에 난 모른다). 성질도 황소같지 않고 아주 온순한 성주는 코뚜레를 하지 않아서 묶어 두고 칸막이를 하여 혼자 독립적으로 기르고 있다.
황소는 암소 중 한 마리가 발정을 해도 가리지 않고 교미를 하려들기 때문에 혹시라도 이미 임신된 소와 교미할 경우 유산될 위험이 크기 때문에 황소를 같이 넣고 기를 수는 없는 것이다. 칸막이는 높고 튼튼해서 넘어갈 수도 없는 상태이다.
그런데 어떻게 임신이 되었단 말인가? 성령으로 잉태될 리도 없을 것이니 그래도 가능성으로 본다면 오직 한 가지 수컷에 의심이 갈 수 밖에 없는 일이다.
진상은 며칠 후에 밝혀졌다. 마침 다른 암소가 발정을 하였는데 암컷은 수컷의 칸막이 곁에서 엉덩이를 대고 있었고 수컷은 울타리 사이로 새빨간 ‘거시기’를 길쭉하게 내밀고서 들이밀려고 애를 쓰고 있었다.
내가 발견하자마자 소리를 지르면서 쫒아냈지만, 암컷이 조금만 더 가까이 있었더라면 교미가 이루어 질 뻔 했다. 그러니까, 아무도 모르게 임신한 암소도 그렇게, 칸막이 울타리 사이로 일을 벌였던 것이 아닐까 추정된다. 물론 목격자는 없다. 임신 4개월이니 오진 우려도 없을 것이다.
암소와 수소 모두 이제 겨우 청소년들에 해당되지만 사람이나 가축이나 가르쳐주지 않아도 저희들 알아서 자신들의 밭을 가꾸고 씨를 뿌린다. 생성·성장·소멸의 법칙에 어긋남 없다.
한우 교육에서는 좋은 황소 한 마리 정도를 길러서 자연 수정을 하는 것도 가능하다고 했다. 그것이 자연스러운 교미가 될 것이다. 그렇지만 농가 입장에서 볼 때 값도 나가지 않은 황소를 기른다는 것은 여물만 축내는 낭비다.
그래서 수컷이 태어나면 3개월 무렵의 송아지 때 거세를 하고 사육해서 육우로 팔게 되는데 이를 ‘거세 우’ 라고 한다. 그리고 암컷에 대한 수정은 국가가 관리 검증한 우량종우의 정자를 공급받아 인공수정을 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천하장사 보다 더 건장하고 욕정 왕성한 황소를 곁에 두고도 인공수정을 시키는 것은 뭔가 자연에 거슬리는 것이고 너무 이상한 일이다.
우리에게는 좋은 황소 ‘성주’가 있으므로 자연 수정을 하고 싶기도 하다. 그러나 자연 수정은 축협에서 관리하는 혈통 등록을 받아주지 않는다. 제도상으로 자연 수정을 부정하는 것이다. 마치 건축법에서 재래식 화장실을 인정해 주지 않는 것처럼...
임신 촉진제를 놓고 인공수정 하고 어떤 성분이 어떻게 들어있는지도 모르고 수시로 사료를 사다 먹이면서 자급생산 생명농업의 귀농 의지는 왜소하게 움츠려들게 마련이다. 영성으로 사는 삶이 될 수 없다는 사실에 혼란스럽다.
축산이건 농업이건, 하고 싶으면 공학 기술에 의한 현대 시스템에 따라야 하는 것이고, 싫다면 못하는 것이다. 이제 자연의 순리를 따라 무엇을 하겠다는 것은 축산도 농업도 거의 불가능이 되어 버렸다.
인공수정이 아니면 축산도 할 수 없고 화학비료 없이는 농사를 지을 수 없고, 제초제 없이는 밭을 관리할 수 없고 농약 없이는 병충해를 방어할 수 없다. 종자 회사가 모두 미국으로 넘어갔으니 미국 없으면 이제 잡곡과 채소의 종자마저 구하기 어려운 지경에 이르고 있다.
생각하기도 흉칙스러운 일이지만 황우석 박사의 줄기세포 소동 이후 언젠가는 사람도 인공수정이나 대리모 임신이 다반사로 이루어지지 않을까 두렵다. 참으로 난세다!
그럴수록 자연의 법칙에 따르는 삶에 축복이 있다는 것을 믿고 있다. 그런 믿음을 가진 이들이 점점 많아져 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아직도 토종 종자를 보존하면서 잡곡 생산에 매달리는 분들이 있다. 농약과 제초제를 쓰지 않고 화학비료를 사용하지 않고 생명의 농업에 매달리는 이들이 있다.
고생만 호되게 하고 결실이라곤 쭉정이 뿐일 때도 있지만 자연의 이법에 순명하는 농부들이 있는 것이다. 아직도 자녀를 일곱씩도 낳고 잘 키우는 가정도 있다.
이들이 현대 과학 기술과 금융자본과 제국기업에 의한 저주로부터 하느님의 축복을 지켜내는 종말론적 구원의 수비꾼일 것이다. 그래서 우리 산위의 마을은 새로운 창조를 준비하는 ‘노아의 방주’ 라는 자의식을 잃지 않으려 애쓰고 있다.
오늘의 스페셜:
사람을 함부로 대하는 사람과 `모시는' 사람의 차이는?(좌산 상사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