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벗님 글방/박기호] 농기구를 챙기며
영성 없는 농사는 죽음의 농작물 만들어
소백산 연화봉은 아직도 눈꽃 모자를 쓰고 있지만 골 깊은 산촌에도 봄이 오고 있습니다. 이곳은 고랭지에 속하여 농사는 다른 농촌의 들녘보다 열흘 정도는 늦게 시작됩니다. 농촌이 맞는 봄이란 새싹이 움트고 들꽃피고 아지랑이 꾸물대는, 동요같은 분위기라기보다는 조용하지만 오히려 바쁘게 움직여집니다.
우리도 겨우내 눈에 덮여 있던 방초망을 걷어 챙기고 고추대를 뽑아 불에 태우고 양계장에 가서 닭똥을 얻어오고 쟁기질 전 밑거름을 넣기 위해 퇴비를 밭으로 나릅니다. 작년에 유난히 극성이었던 멧돼지 고라니 등살에 밭마다 둘러쳐 두었던 노루망도 걷어냅니다. 자루가 깨진 호미와 뭉뚱그려진 낫과 괭이 등 농기구도 보수하고 챙깁니다. 출하를 기다리는 더덕을 캐내는 일도 만만찮습니다.
내 자신의 영성을 짓는 농사도 생각해 볼 때
금년의 작목 계획도 세웁니다. 우리 마을 농사는 자급자족이기 때문에 약 40 여 종의 작물을 심는데 수익성 작물은 더덕, 고추, 콩 3가지입니다. 물론 입촌 이후 우리는 모든 농사를 유기농업 방식으로 짓습니다. 유기농은 대단한 매력이 있습니다. 더덕은 향이 좋고, 콩은 청국장 띠우는 기술이 부족했음에도 불구하고 콩 맛이 좋아서 명성을 얻어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고추는 제대로 수익을 본 적이 없습니다. 2월초 모판부터 시작하여 10월까지 작목기간은 너무 길고 손이 많이 가는데 비해 가격은 별 거 없습니다. 더구나 탄저 등 병충해가 심해서 약을 많이 써야 하는데 유기농으로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금년에는 우리가 고추장 담고 양념으로 먹을 만큼만 심고는 콩밭을 늘리고 구기자를 심기로 했습니다. 지난 4년 동안 실속은 적고 힘만 너무 들었기 때문인지 가족들이 흔쾌히 합의합니다.
작년 봄에는 더덕 파종에 실패했습니다. 정성을 다했지만 시기를 잘 못 맞추어 땅의 수분이 부족했던 것 같습니다. 좀더 계획적이지 못했던 점을 후회했습니다. 그래서 금년에는 겨울 밭의 눈이 녹고 냉기가 지자마자 파종을 했는데 잘한 거라고들 말합니다. 금년에는 모든 파종에서 약간 서둘러보려고 비알밭의 쟁기질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우리 가족은 쟁기질을 못하기 때문에 이번에도 동네 반장님이 품앗이를 해주러 올 겁니다.
소백산에 산골에 찾아온 새봄은 이렇게 우리 움직임을 부산케 만드는데, 겨울 동안 밭일에 손을 잊고 있었던 때문인지 뭔가 큰 시간 속으로 흘러가고 있다는 느낌을 갖게 합니다. 아마도 벌써 한여름 뙤약볕에서 김을 매거나 결실의 가을 노래가 우리들 마음속에서 맴돌고 있는 지도 모르겠습니다.
한해의 밭농사를 준비하고 마을 경영을 계획하면서 내 자신의 영성을 짓는 농사도 생각해 봅니다. 산위의 마을의 수행의 삶인 사랑, 순명, 자비심의 결실을 바라보며 함께 성장하는 삶이 되도록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국가 경영 위한 농사인 총선, 귀찮다고 기권하면 안돼
어찌 우리 마을만이 봄을 맞겠습니까? 세상에도 봄을 맞아 부산한 거 같습니다. 특별히 정치적으로 향후 5년 국가 경영을 담당한 정부 권력과 4년 동안의 국회를 꾸려야 하는 농사 준비가 한창 입니다. 대통령에게 경세치용을 맡긴 전폭적 권한 위임의 중요성을 생각하면 걱정도 됩니다. ‘이명박 운하’ 때문인지 ‘오륀지 영어살이’ 때문이지 모르겠으나 왠지 안정감이 없고 불안스럽습니다. 생각이 몸을 움직이는 것입니다. 철학(영성)이 삶을 만듭니다. 영성 없는 농사는 죽음의 농작물을 만듭니다. 소출은 많이 낼 줄 몰라도 생명의 먹거리를 죽이고 땅을 죽이고 생태 환경을 파괴하기 때문입니다.
중장비 토목공사식 정치가 가져올 공적주의 개발과 발전 모드는 흉측한 재앙을 만들어내는 실험에 불과합니다. '이명박 운하'는 절대 하지 말아야 할 일입니다. 걱정만 하고 있을 일이 아닌 것 같습니다. 한 번 더 기회를 맞습니다. 바로 국회의원 총선이 다가왔습니다. 일 년 농사도 초봄에 생각하고 준비하고 움직입니다. 하물며 국가 경영을 위한 농사를 짓자는데 준비도 생각도 없이 그저 손길 가는대로 감정대로 선출할 일이 아닙니다.
“한해 짓지 못한 농사는 일 년의 설움이지만, 한번 배우지 못한 공부는 평생의 눈물이다”고 했던 어린시절 권학 격언이 생각납니다. 농사가 실패하면 한해 가을 후회하고 말겠지만 국가 경영에 실패하면 자손대대로 부끄러운 짓의 오명을 입을 것입니다. 국회의원 선거는 4년의 국가 농사입니다. 남녀노소 모두 호미와 괭이를 들고 밭으로 가서 거룩한 한 표를 행사해야 하겠습니다. ‘귀찮고 별 볼일 없다’는 등의 이유로 기권하는 것은 씨 뿌리지 않고 가을을 기다리는 것과 같을 것입니다. 꼭 투표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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