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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심정 벗님글방

경유-휘발유 차와 들기름-참기름 관계

등록 2008-06-16 10:04

[벗님 글방/원철 스님] 자리가 사람 만들듯 운전도 차 따라 난폭-겸손 화려한 말 타다 미륵보살에 혼난 스님 얘기도 기름값 때문에 야단났다. 도처에서 아우성이다. 프랑스 어민은 고깃배를 항구에 묶었고, 영국 운전사는 트레일러를 길가에 세웠으며, 자카르타 택시기사도 운행을 중단했다고 외신은 전한다. 기름 한 방울 나지 않는 우리나라도 예외일 수는 없다. 인천경제자유구역내 '영종도 하늘도시' 공사장의 덤프트럭이 고유가로 인하여 수지타산을 맞출 수 없어 서 버렸다. 그 바람에 국책사업 건설현장마저 정지상태라는 기사를 필두로 화물용 트럭은 말할 것도 없고 서민생계용 1톤짜리 포터와 아파트 단지에 세워 둔 승용차도 움직이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호떡가게에 불난 정도의 일부 호들갑 수준이 아니라 그야말로 모든 세상이 불타는 집(三界火宅)이 되어버린 것에서 나오는 비명소리인 것이다. 더 아연할 일은 경유값이 휘발유값과 같거나 일부지역은 앞질렀다는 사실이다. 만약 참기름과 들기름 값이 같아졌다면 더 고급인 참기름을 먹으면 된다. 하지만 이건 그게 아니다. 경유차는 경유차고 휘발유차는 휘발유차다. 구조가 다르기 때문에 바꾸어 넣을 수도 없다. 그래도 경유가 연비가 높다는 사실이 받을 수 있는 유일한 위로인 셈이다. 같은 기름인데도 전혀 선택의 여지가 없다. 참기름과 들기름 정도의 차원이 아닌 것이다. 물론 참기름을 써야할 요리가 있고 들기름을 사용해야 할 경우가 있다. 하지만 바꾸어 사용한다고 해도 그렇게 요리내용이나 혹은 먹는 사람에게 치명적이지는 않다. 경유와 휘발유는 대체할 수 없는 서로 전혀 다른 물건이라는 사실을 이번에 알았다. 다만 '기름'이라는 이름만 같을 뿐이었다. 소형차로 장거리를 가야만 할 일이 생겼다. 사실 안전문제 등 여러 가지 이유로 내심 걱정된다. 빗속에서 커브를 돌 때마다 약간 미끄러지는 느낌을 떨쳐버릴 순 없지만 염려했던 것보다는 편안했다. 옆자리에 함께 한 만만찮은 덩치를 가진 도반도 '보기보다는 안이 넓어 전혀 불편하지 않다'고 비위를 맞춰주었다. 그런데 더 놀라운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다. 스스로 운전을 너무나 조신하게 하고 있었던 것이다. 작은 차가 사람을 겸손하게 만들어 주었다. '자리가 사람을 만들어 준다'고 하더니 운전석도 그랬다. 함께 탄 도반은 아예 차도 없고 더욱이 운전할 줄도 모른다. 그래서 우리들은 그를 '문화재급 스님'으로 부른다. 지프를 몰면 대부분의 운전자가 사막의 전쟁터에 있는 양 저절로 거친 운전을 하게 된다고 한다. 한술 더 뜨는 건 대형차 운전자다. 버스 혹은 대형트럭 기사의 교만심 때문에 운전 중에 이런저런 낭패를 경험한 작은 차 운전자가 적지 않다. 높고 큰 자리에 앉으면 누구나 교만해지기 마련이다. 그래서 율장에서는 '높고 넓고 화려한 자리에 앉지 말라'고 했다. 고급 승용차도 마찬가지다. 좋은 차는 타는 사람을 거만하게 만든다. 그래서 '하심(下心:마음낮춤)'과 '섬김'을 생활화해야 하는 종교인이 화려하고 비싼 자리에 앉아있으니 남들의 눈살이 찌푸려질 수밖에 없다. 설사 앉을 수 있더라도 앉지 말아야 할 자리인 셈이다. 얼마 전 한 공중파 방송의 시사프로인 '뉴스 후'에서 고급승용차 소유문제로 종교인들이 여론의 질타를 받았다. 어쩌다보니 소형차 타는 것 자체가 종교인 이미지 제고작업이 되는 시대가 되어버렸다. <삼국유사>에는 당시에 '잘나가던' 경흥국사가 화려하게 꾸민 큰 말(馬)을 타고 다니며 위세를 부리다가 미륵보살에게 딱 걸려 "극락행 명단에서 이름을 지워버리겠다"는 소리를 듣는 기록까지 나온다. 하지만 오늘 우리가 혹시 미륵보살을 만나더라도 칭찬 받을 일 밖에 없다며 키득거렸다. 고속도로 주유소에 들어서니 유난히 먼저 가격표가 눈에 들어왔다. 첫줄의 휘발유와 둘째줄의 경유값의 숫자가 거의 엇비슷하게 적혀있었다. 사람 심리란 참으로 묘한 것이다. 그 덕분에 휘발유 넣는 돈이 덜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 늘 끌고 다니던 경유차인 산타페를 타고 나왔더라면 매우 억울한 생각이 들 뻔했다. 목적지 마당에서 일행을 기다리던 주인장이 소형차에서 내린 우리들을 한참 바라보더니 약간 감동스런 표정을 지으면서 한마디 했다. "담박하고 검소하신 모습이 참으로 보기 좋습니다요." 사실 부득이한 사정으로 이 소형차를 가지고 나왔다. 사찰 업무용이었는데 이제 필요 없게 된 까닭에 차량중계상에게 팔아달라고 탁송하던 도중에 잠깐 볼일이 있어 겸사겸사 이용한 것이었다. 그런데 이런 저간의 사정을 알 리 없는 제3자에게 '검소함'을 찬탄하는 말을 본의 아니게 듣게 된 것이다. 그런 분위기에서 "이 차는 세컨드 카 입니다"라고 말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순발력 있게 고상하고 품위 있는 언어로 둘러댔다. "설사 능력이 있더라도 작은 차를 타는 것은 절제의 미학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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