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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심정 벗님글방

주전자가 다관이 되듯 번뇌도 깨달음

등록 2008-06-04 15:43

[벗님글방/원철 스님] 다선삼매

뜨거운 물에 수직으로 일어서는 찻잎, 눈맛 ‘덤’

묵은 다관에 찻잎 없이 물로 우려낸 백차 ‘백미’

그 차인을 처음 만난 것은 몇 년 전 이었다. 그 이후 매년 이맘 때 쯤 이면 잊지 않고 일부러 찾아와 손수 법제한 차를 한 봉지 갖다 준다. 올해도 그 마음은 역시 변함없었다. 하지만 서로 자꾸 길이 어긋나 이번에는 우편물을 통해 받았다. 얼마 전 ktx열차를 탔을 때 기내지에 그 차인을 소개하는 기사를 만나게 되었다. 자기 차밭을 경작함은 물론 개인서당까지 운영하고 있음을 남의 글을 통해서 알게 되었다. 그 차는 특이하게도 뜨거운 물을 부으면 누워있던 찻잎이 그대로 수직으로 일어선다. 맛과 향도 그만이지만 무엇보다도 눈맛이 일품인 까닭에 언제나 투명한 유리다관에 넣고서 우려내면서 그 모양새를 즐기곤 한다. 새잎보다 제대로 오래된 잎이 더 약효 뛰어나 절기로 곡우(穀雨) 이전 무렵에 나온다는 우전차(雨前茶)는 햇차를 상징하는 말이었다. 그런데 언젠가 지인이 중국을 다녀오면서 '명전차(明前茶)이니 맛보라'고 하면서 주고 갔다. 곡우보다 한 절기 앞선 청명(淸明)무렵에 나온 차라는 것이다. '햇차는 우전차'라는 등식이 무참히 깨지는 순간이었다. 하긴 따뜻한 운남성은 곡우 보름전인 청명 무렵이면 햇차가 나올 만도 하다. 지구온난화 영향 때문인지 반도동쪽은 양산 통도사가 한계선이던 차가 요즈음은 좋은 물로 유명한 경주 기림사까지 올라갔다. 그 물을 차와 함께 묶어보려고 몇 년 전에 인위적으로 차밭을 조성했다. 물론 일부는 추위를 견디지 못하고 얼어 죽기도 했지만 대부분의 차나무들이 몇 년 째 겨울을 무사히 넘겼다. 대구 팔공산에도 한 독지가가 일 천여 평 부지에 2005년에 3만 그루 차나무를 심었는데 올해 첫 수확을 했다고 한다. 겨울마다 비닐하우스와 방풍망을 설치하고 바닥에 왕겨를 뿌리는 등 다소 인위성이 추가되긴 했지만 어쨌거나 차밭이 조성되었다는 사실 자체가 경이로움이다. 이 추세라면 곧 이 땅의 제주도 차 역시 '명전차' 상표가 붙을 날이 멀지 않았다. "초엽 따서 상전께 주고, 중엽 따서 부모께 주고, 말엽 따서 남편께 주고, 늙은 잎은 차약 찧어 아이 아플 때 먹인다" 이 민요가 말하듯 새잎보다는 제대로 오래된 잎이 더 약효가 뛰어나다. 지리산 언저리에 살고 있는 도반 방에는 찧어놓은 차약 두덩어리를 축구공만한 크기로 매달아 놓았다. 수 십년 지나면 오래된 보이차 만큼 그 값어치가 만만찮게 될 것이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차 따는 시절이나 찻잎 모양이 차 맛이나 약효를 결정짓는 요소는 아니다. 중국 오룡차나 철관음차를 퇴수기에 모아 놓으면 잎이 손가락 크기만 하다. 생긴 것이 참새의 혀 같다고 하여 작설이라는 이름이 붙은 우리 차잎과 그 크기와 모양이 참으로 대비된다. 누구와 함께 마시는가에 따라 맛 달라 송나라 때 고위관료인 연빈(延彬)이 초경원(招慶院)이란 절을 방문했다. 낭(朗)상좌가 찻물를 끓이다 말고 차솥(茶?)을 엎으니 의아해하며 물었다. "차 화로 밑에 무엇이 있습니까?" "화로를 받드는 신이 있습니다." "화로를 받드는 신이 있는데 어찌하여 차솥을 뒤엎는거요?" "천일(千日)의 벼슬살이를 하루아침에 잃었습니다." 그 말에 연빈은 다짜고짜 매우 불쾌해하며 나가버렸다. 하긴 차 맛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누구와 함께 마시는가에 따라 그 맛이 결정된다. 일본속담에 '고차무차(苦茶無茶)'라고 했다. 쓴차를 대접받았거나 차 한 잔 얻어먹지 못한 푸대접을 이르는 말이다. 주인장으로서는 차상을 마주하고 싶지 않았거나 마지못해 대접했다면 '고차무차'가 되기 마련이다. 하지만 같은 '무차'라고 할지라도 '백차(白茶)'가 된다면 이건 한 경지 더 올라간 것이다. 묵은 빈 다관에 차 잎를 넣지 않고 그냥 끓는 물을 넣어 우려내는 것이다. 묵은 차향이 베어져 나와 나름대로 독특한 맛의 경지를 보여준다. 이를 즐길 수 있다면 설사 무차라고 할지라도 제대로 대접받은 것이 된다. '벼슬은 하루아침에 잃을 수 있다'는 말을 듣고도 개의치 않고 차를 즐길 수 있는 무덤덤함이 아쉽기만 하다. 쇠구슬에 찻잔 박살나도 동요 없는 경지 차(茶)는 주로 '차'라고 읽지만 '다'로도 발음한다. 그 음은 당나라 때까지는 중고음이 '다'였다가 송대에 이르러 '차'로 변하였다. 그런데 우리나라에는 '차'라는 말이 구어로 먼저 들어오고 '다'라는 음은 후에 들어와 자전(字典)의 음이 되었다. 그러다보니 뒤죽박죽 사용된다. 하지만 관습도 무시할 수 없다. '다선삼매'를 '차선삼매'으로 바꾸어 읽으면 어색해진다. '다방'을 '차방'으로 발음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마을의 '주전자'는 절집에 오면 '차관'이 된다. 막걸리를 담는게 아니라 백차인 청정수를 올리는데 주로 사용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를 '다관'이라고 하지는 않는다. 어쨌거나 같은 그릇이지만 무엇을 담느냐에 따라 주전자가 되기도 하고 차관이 되기도 한다. 주전자가 차관이 되는 것처럼 번뇌가 바로 깨달음으로 바뀌는 것이니, 범부의 모습으로 성인이 되는 것 역시 그리 어려운 일만은 아닌 것이다. 주광(珠光)선사가 평소 애용하던 찻잔으로 막 차를 마시려고 하는 참이었다. 일휴(一休)선사가 큰소리를 지르면서 쇠로 만든 구슬을 집어던져 그 찻잔을 깨버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광은 조금도 동요하는 기색 없이 이렇게 말했다. "버들은 푸르고 꽃은 붉다." 이에 일휴는 그 흔들리지 않고 차마시는 경지를 크게 칭찬하면서 원오극근 선사의 묵적(墨跡)을 선물로 주었다. 주광은 이를 표구하여 자기가 기거하던 암자에 걸고 놓고 일념으로 차를 즐겼다. 그리하여 마침내 불법이 다도 가운데 있음을 깨달았다. 이름하여 다선삼매(茶禪三昧)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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