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사가 돌문을 굴렸네
“호산나 호산나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왕께 호산나”당나귀가 맨 앞에서 길을 인도하면 어린 아기들은 아빠의 무등을 타고, 엄마들은 꼬마들을 손수레에 태워 밀고, 나이드신 할머니는 젊은 자매가 미는 휠체어에 타고 온 식구들이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며 호산나를 외치며 공동체 마을을 돕니다. 이천년전 한번도 사람을 태어본 적이 없는 어린 당나귀를 예수님께서 타시고 예루살렘으로 들어오실 때 그곳에 모인 군중들이 바닥에 옷을 깔고 종려가지를 흔들며 이 땅에 왕으로 오신 다윗의 자손을 찬양하던 날을 기념하기 위한 행진입니다. 오늘은 특별히 행진 도중 종려주일 바로 전 날 86세의 나이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으신 로즈마리 할머니 집 앞에 멈춰 할머니의 생애를 기억하며 호산나 노래를 불렀습니다. 로즈마리 할머니는 브루더호프 초창기 독일 뢴 공동체에서 태어나 나찌시절 영국으로 옮겨간 후 2차대전 발발로 파라과이로 부모님과 함께 이민 왔다가 간호사가 되어 평생 공동체의 모든 아기들과 엄마들, 할머니들을 돌봐 오셨습니다.
젊었을 때 부터 다른 청년들이 캠핑이나 피크닉을 갈 때에도 주저하지 않고 뒤에 남아 도움이 필요한 한 사람, 한 사람을 큰 사랑으로 보살펴 많은 젊은 자매들에게 귀한 모범과 도전이 되었습니다. 또 어디엔가 삶에 지치거나 뒤쳐져 외롭고 힘들어 하는 사람들을 보면 마음속 깊은 곳에서 나오는 사랑과 정성을 담아 격려하는 편지를 보냈습니다. 절망 가운데 방황하고 있다가 로즈마리 할머니의 깊은 마음이 담긴 편지를 받고 큰 위로를 받은 사람이 한 둘이 아닙니다. 한 부부는 머나먼 나라에서 브루더호프 공동체에장기간 동안 방문을 하고 다시 본국으로 돌아간 후에도 자신들을 잊지 않으시고 지속적으로 격려 편지를 보내신 그분의 사랑이 결국은 자신들을 공동체로 다시 돌아오게 했다고 고백합니다. 작년 할머니의 85세 생신 때 수 많은 사람들이 빈 카드를 선물로 보냈습니다. 할머니는 선물 받은 카드를 보시고는 더 많은 이들에게 격려 카드를 보낼 수 있게 되었다며 너무 기뻐하셨습니다. 이제 할머니께서는 예수님과 함께 하늘에서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며 인자한 웃음으로 우리를 내려다 보시고 힘내라며 호산나를 외치시겠지요.해마다 이맘 때가 되면 12년 전 우리가 처음 브루더호프 공동체를 방문했던 일이 생각납니다. 2007년 3월 한국을 떠나면서 따뜻한 봄날을 기대하며 미국에 있는 우드크래스트 공동체로 향했습니다. 그런데 왠일입니까? 우리가 도착한 곳은 파릇파릇 새싹이 돋고 꽃이 활짝 핀 그런 곳이 아닌 하얀 눈이 덮인 산마루였습니다. 우트크레스트의 풍경은 마치 한국을 떠나오기전 새로운 생명을 기다리며 꽁꽁 얼어붙은 나의 마음 같았습니다. 우리 가족이 도착한 시간은 밤 11시가 가까운 늦은 밤이었지만 호스트 부부가 기쁘게 우리를 맞이하고 저녁을 주었습니다. 결혼한지 얼마 안된 신혼부부도 그 밤중에 찾아와 많은 한국 친구들을 알고 있다며 환영해 주었습니다. 생각지도 않은 겨울 왕국에 다시 돌아오자 제일 신난건 당시 4살이었던 하빈이입니다. 매일 유치원에 가면 아이들과 함께 신나게 눈썰매를 탑니다. 한국에선 큰 맘 먹고 일년에 한번 용인 에버랜드에 가야 탈수 있는 눈썰매를 매일 타니 너무 좋아합니다. 어떤 곳은 언덕이 가팔라 저도 타기를 두려워하는데 나이드신 50대 중반의 아주머니들도 주저않고 아이들과 함께 눈썰매를 즐깁니다. 눈썰매에 푹빠진 하빈이는 결국은 눈썰매를 타다 넘어져 얼굴에 큰 상처를 내어 집으로 돌와왔네요. 한국에선 얼굴에 조그만 상처라도 생기면 자국이 남을까봐 비싼 독일제 상처 안나는 반창고를 붙이곤 해서 아내가 혹시 몰라 몇개 챙겨온 것이 있어 하빈이 얼굴에 붙여주었습니다. 얼굴의 ¼을 덮으니 좀 흉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상처 자국 남는 것보다 낫겠지 싶어 1-2주일을 나두었다가 반창고를 떼니 상처가 아물고 마법같이 자국없는 깨끗한 얼굴이 되자 옆에서 지켜보던 이웃들도 신기해 하네요. 조금이라도 상처나면 야단 법석을 떠는 환경에서 살다가 바깥에서 하도 뛰어노니 넘어지고 상처나는 것은 흔한 일이라 별로 대수롭지도 않게 여기는 이상한 나라(?)에 살다보니 그 이후로 마법 반창고는 우리집에서도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우드크래스트에서 받은 처음 인상은 이상하게도 그 곳에 도착하는 순간 거룩한 산에 서 있는 평안을 느끼면서 본향으로 돌아 온 것 같았습니다. 그 곳에서 인류의 심장 박동 소리를 듣는 듯했고 뭔가 모를 생명의 열기와 희망이 내 마음 속에 꿈틀거리기 시작했습니다. 처음 한 달 동안 매일 예배 시간에 부활절에 관한 노래를 불렀는데 두꺼운 책 한권이 모두 부활절에 관한 노래로 한국 찬송가에 있는 몇몇 노래 외에는 거의 모르는 노랬였지만 가사 하나 하나가 마음 깊이 울려 왔습니다. 하루는 바하의 마태 수난곡을 공동체 전체가 불렀는데 난생 처음 듣는 곡이고 영어로 불러 가사가 뭔지 잘 몰랐지만 그 대곡을 들으면서 예수님의 고난과 죽음 그리고 부활이 깊이 마음 속으로 와닿으면서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을 쏟고 말았습니다. 옆에 앉아 있던 호스트 제임스도 함께 눈물을 흘렸습니다. 천사가 돌문을 굴려 예수님의 부활을 외친 것 처럼 어두운 밤에 갇혀 있던 내 영혼의 돌문도 굴려지고 예수님과 다시 살아나 그동안 표류하던 내 영혼의 닻을 깊이 내리는 시간이었습니다. 겨우내내 죽어 있는 것 같은 꽁꽁 얼어 붙은 대지에서 연한 잎을 내밀고 노란 꽃망울을 떠뜨리는 수선화를 보면 예수님의 부활을 알리는 나팔수 같습니다. 나팔과 같이 생긴 부화관에 6개의 노란 꽃잎이 받쳐 있는 수선화를 보노라면 “예수 다시 사셨네”하며 온 세상에 외치는 것 같습니다. 수선화 뿐만 아니라 고운 자색의 목련, 분홍빛의 벚꽃, 향기 만발한 하야신스등 온 갖 꽃들과 너무나 싱그러운 연두빛의 새 잎을 내는 나무들을 보면 모두 겨울이 끝이 아니라고, 어두움을 통과해야 새로운 생명이 온다며 예수님의 부활을 우리에게 속삭이는 듯 합니다. 예수님께서 이 봄에 부활하신 것이 결코 우연이 아닌 것 같습니다. 실제로 수선화와 튜율립등 봄에 피는 꽃들은 늦가을에 심어 추운 겨울을 지내야만 꽃을 피웁니다. 추운 겨울을 지내지 못한 경우에는 화분에 알뿌리를 심어 냉장고에 일정기간 두어야만 꽃을 피울 수있습니다.
엄마 옆에서 젖을 빠는 엊그제 태어난 아기 양과 너무나 앙증 맞게 귀여운 세 마리의 아기 염소들, 부활절 전 날에 태어난 송아지 모두 우리에게 예수님의 부활을 알려주며 기뻐하는 듯합니다. 부활 주일 새벽이 되면 들판에 큰 모닥불을 피워 공동체 식구들이 모여 해뜨는 걸 지켜보며 부활절 노래를 함께 부릅니다. 드디어 아침 7시 반이 되자 브라스밴드 형제들이 예수님의 부활을 알리는 나팔을 불어 연주하자 하나 둘씩 식당앞으로 모입니다. 오늘은 특별히 주변의 이웃들을 아침 식사에 초대해 함께 예수님의 부활을 축하합니다. 식당 로비에는 고등학생들과 청년들이 몇 일동안 정성을 다해 Easter garden(부활의 정원)을 만들었습니다. 그 동안 정성들여 키워온 온 갖 꽃들을 심고 펌프를 이용해 위에서부터 물이 흐르는 계곡과 분수도 만들고 병아리와, 메추라기 새끼, 갓 태어난 아기 염소도 옆에 함께 놓아 아이들 뿐만 아니라 어른들의 마음도 환하게 합니다. 모두들 기쁨에 찬 밝은 얼굴로 “Happy Easter!(행복한 부활절 되세요!)” 하며 서로 손을 내밀어 따뜻하게 악수합니다. 아침 8시 반쯤에 다이닝룸 문이 열리자 모두들 활기차게 안으로 들어가 정성스럽게 만든 자신의 이름표가 놓여진 자리로 가 앉았습니다. 테이블마다 노란 수선화 꽃병이 놓여 있고 다이닝룸 중앙에는 초를 이용해 염색해 만든 멋진 그림들이 새겨진 계란들이 장식되어 있고 벽에는 어린 아이들이 색종이로 꽃들을 접어 걸어 놓았습니다. 가지각색으로 예쁘게 물들인 삶은 계란으로 옆 사람과 계란치기를 해 누구 계란이 제일 튼튼한지 내기도 해보고 갓 구운 빵과 소세지 그리고 오렌지와 코코넛으로 만든 상큼한 페스츄리로 맛있는 아침 식사를 한 후 유치원생부터 청년들까지 모두 나와 그동안 함께 연습한 합창도 하고 공동체 전체가 부활 노래를 마음껏 불렀습니다. 아침 식사를 끝낸 후 유빈이 학교 아이들이 숲 길에 만든 십자가 산책로로 향했습니다.한 아이는 점토로 당나귀를 만들어 천으로 오린 옷들과 종려나무 가지위에 올려 놓았고, 어떤 아이는 보리떡 5개와 물고기 2마리도 만들어 놓았습니다. 유빈이는 학교에서부터 양동이에 물을 날라 갈릴리 호수도 만들고 배를 띄어 놓았네요. 옆에는 모닥불을 만들어 물고기를 굽고 있는듯한 장면도 있고 이끼긴 돌로 무덤도 만들고 작은 십자가도 꽂아 놓고 꽃도 심어 놓는등 아이들이 조그마한 손으로 부활절을 생각하며 만들어 놓은 것들이 우리 어른들에게 잔잔한 감동을 주네요. 산책길 끝에 다다르면 우리 형제들이 묻혀 있는 공동체 묘지가 있습니다. 며칠전 하빈이가 속해 있는 고등학생들이 묘지 한쪽 끝을 열어 언덕에 세 개의 십자가를 세우고 예수님의 돌무덤을 만들었습니다. 무덤 문은 토요일까지 닫혀 있었지만 오늘은 예수님이 부활하신 날이라 무덤의 돌문이 옆으로 굴러져 있습니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흑인 영가 중 하나를 부르면서 예수님의 돌무덤처럼 차갑고 굳어진 우리 마음의 돌문도 매일 매일 굴려져 새 생명이 움트고 자라길 소원해 봅니다. “The angel rolled the stone away 천사가 돌문을 굴렸네 ”천사가 돌문을 굴렸네. 천사가 돌문을 굴렸네빛나고 눈부신 아침 나팔소리가 들려올때 천사가 돌문을 굴렸네마리아가 동이 트자 달려왔네. 돌문이 굴러 갔다고 하늘로 부터 소식이 들리네. “내 구세주를 찾고 있어요. 어디에 있는지 알려주세요.”높은 산 위로부터 돌문이 굴러갔네. 많은 병사들이 돌문 앞에 지키고 섰지만, 누구도 막지 못하고 돌문이 굴러갔네. 천사가 돌문을 굴렸네. 천사가 돌문을 굴렸네빛나고 눈부신 아침 나팔소리가 들려올때 천사가 돌문을 굴렸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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