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전자에 콩을 넣고 하루 물만 몇번 주면 쑥쑥 자라는 콩나물 / 사진 휴리
도시에서 자급자족하는 네 가지 식품
현대 사회의 환경오염 문제는 상당부분 생산과 소비가 분리된 삶의 방식 때문에 생겼다, 라는 엄청난 깨달음을 얻은 것은 비닐봉투와 콩나물 덕분이었다.
난 어렸을 때부터 유독 환경오염 문제를 민감하게 받아들이는 감수성을 갖고 있었다. 부엌에 있는 엄마 옆에서 “이건 이렇게 분리 수거해야 한다, 저건 저렇게 해야 한다”면서 쓰레기통을 뒤지며 잔소리를 늘어놓으면 엄마가 “저리 가! 완전 시어머니네!”할 정도였다.
싫증을 잘 내는 편인데도 분리수거만큼은 싫증을 내지 않고 지금도 계속 잘하고 있다. 이런 나였지만 분리수거 중 유독 비닐류 분리수거는 1년 전까지만 해도 잘하지 않았다. 비닐 류는 음식이 묻어있는 경우가 많아서 분리수거를 해도 실질적으로 재활용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자체 판단 때문이었다.
그러나 새로 살게 된 지역에서는 구청에서 비닐 류 분리수거 전용 쓰레기봉투를 무료로 나눠주는 것이 아닌가. 비닐 류 분리수거가 매우 중요한 과제임을 깨달은 나는 그때부터 비닐 류도 열심히 분리수거하기 시작했다.
사실 분리수거를 열심히 하는 사람이라면 소비를 줄이도록, 가능하면 친환경 제품을 쓰도록 노력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병, 캔, 플라스틱, 종이 등을 분리 수거하다 보면 “내가 이렇게 많은 물품을 소비하고 있구나”라는 것을 깨닫기 때문이다. (분리수거가 귀찮아 소비를 하지 않는 1차원적인 상황도 물론 있을 수 있다…)
대형마트와 대형 체인 슈퍼마켓에서는 적은 양의 야채도 사각 플라스틱 접시나 스티로폼접시 같은 것에 담아 포장해 놓은 경우가 많다. 일주일 치 장만 봐도 엄청난 양의 플라스틱과 스티로폼 접시가 쌓이는 것을 보고 기겁을 한 나는 가능하면 마트에 대형 슈퍼에 가지 않고, 가더라도 플라스틱 용품으로 포장한 것은 사지 않으려고 한다.
비닐 류는 분리수거 하면서 나는 또 한번 놀라게 된다. “일상생활에서 비닐을 이렇게 많이 쓰다니!!”를 확인하게 되는 것이다. 플라스틱 용기를 쓰지 않는 제품들도 최후의 수단인 비닐봉투만은 피해갈 수 없다. 포장을 줄여도 비닐이나 종이는 쓰게 돼있다.
야채포장 비닐, 과자포장비닐, 요구르트 포장비닐 등을 모으다 보면 버석버석한 특징 때문에 부피가 커지는 비닐이 어느새 한 보따리 쌓인다. 그 동안 이 비닐들이 땅속에 그냥 묻혔을 생각을 하면 그것만으로도 숨이 막히는 것 같다.
그래서 비닐포장도 가능한 줄이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장을 보러 갈 때는 장바구니뿐 아니라 1회용 비닐봉투를 대신할 수 있는 천으로 만든 봉투도 구비했다. 생선, 흙 묻은 대파 등 장바구니를 쓰기 어려운 사각지대가 있는데 요즘엔 생선을 사러 갈 땐 밀폐용기를, 대파를 살 땐 과거 대파를 살 때 썼던 비닐봉투를 다시 가져간다. 동네 가게에서 골뱅이무침 같은 별미를 포장해 올 때도 밀폐용기를 가져간다. 스티로폼 포장 그릇, 비닐, 1회용 나무젓가락 등도 당연히 안 쓰게 된다.
그릇에 거즈를 깐뒤 씨앗 뿌려놓고 하루 몇번 물만 갈아주면 되는 새싹/사진 휴리
중간요약하자면 1. 철저한 분리수거 2. 1회용품 가능한 사용하지 않기의 실천이 환경보호를 위해 중요하다고 하겠다. 소비에 대한 성찰은 생산을 경험해보면 더욱 분명하게 알 수 있다. 콩나물을 사면 콩나물을 담은 비닐봉투도 함께 온다. 그러나 콩나물을 집에서 길러 먹으면 콩나물이 담긴 비닐봉투도 오지 않는다. 콩나물 콩을 살 때 한번만 비닐봉투를 쓸 뿐이다.
콩나물 콩 500그램을 사서 지금 길러먹고 있는데 이것은 콩나물 한 봉지 분량만큼을 최소 10번 이상은 길러먹을 수 있는 양이다. 비닐봉투도 그만큼 아끼고, 돈도 많이 절약된다. (유기농 콩나물 한 봉지가 2500원 정도 하는데, 유기농 콩나물 콩 한 봉지는 6000원 정도.)
콩나물뿐 아니라 텃밭상자에 상추, 시금치, 부추 등의 씨앗을 심고 키우고 있다. 이것도 생산이다. 텃밭상자에도 물을 줘야 한다. 그러고 보니 콩나물에 준 물이 있지 않던가. 이걸 그냥 버리고, 수돗물을 받아 텃밭상자 물을 줄게 아니라 콩나물에 준 물을 다시 모아 텃밭상자에 주면 되는 것이었다. 옛날 농촌에서는 사람의 배설물, 음식쓰레기 어느 하나 버리는 것이 없었다, 는 말이 나온 것은 생산과 소비가 동시에 이루어졌기 때문에 유기적은 순환이 가능한 것이었으리라. (시루가 없어도 주전자에서 쉽게 콩나물을 기를 수 있다. 반나절 정도 물에 담가 콩을 불린 후 주전자에 콩을 넣고 뚜껑을 닫으면 햇볕이 차단된다. 수시로 물을 부어주고 주둥이로 바로 따라낸다. 주둥이에도 뚜껑이 작게 있다면 그건 열어 놓는 것이 좋다. 여름이라 온도가 높아서 주전자 내부 공기가 더워지면 콩나물이 쉽게 무를 수 있다)
그뿐 아니다. 텃밭상자를 관리하다 보니 매일 아침 핸드드립으로 내리고 나서 곧장 쓰레기가 됐던 커피원두가루도 쓸모가 생겼다. 원두를 매일 모아 말린 후 텃밭상자 비료로 썼다. 그만큼 쓰레기도 준다.
얼마 전부터는 떠먹는 요구르트도 만들어 먹는다. 한번 먹는 분량의 떠먹는 요구르트는 그만큼 플라스틱 용기가 생긴다. 하지만 요구르트를 만들어 먹으면 (분리수거) 쓰레기 양이 확 준다. 500밀리리터 우유 2개와 떠먹는 요구르트를 2개 사서, 우유 하나에 요구르트를 하나를 섞은 다음 전기오븐 요구르트 만들기 메뉴로 발효를 시킨다. 그러면 떠먹는 요구르트 15개에 가까운 요구르트가 만들어진다. 집에서 만드는 만큼 설탕이나 색소, 향료 등을 추가로 넣지 않으니 건강에도 좋다. (시중 요구르트를 사용하고 싶지 않다면 유산종균을 사서 넣으면 된다고 한다. 나도 유산종균을 넣고 싶었으나 우리 동네의 작고 허름한 약국에서는 왠지 팔지 않을 것 같아 시도도 안 해봤다)
비빔밥 용도로 쓰는 새싹도 길러 먹으면 된다. 그릇에 거즈(키친타올을 쓰면 한번 쓰고 버리지만 거즈를 쓰면 빨아서 계속 쓸 수 있다)를 깔고 씨앗을 놓은 후 물을 뿌린다. 발아 때까지는 햇볕을 가려주고 싹이 트면 햇볕에 내놓고 물을 자주 뿌려주면 된다. 키우는 재미도 있고, 사먹을 때 생기는 플라스틱 용기도 없다.
이렇게 작게나마 생산에 참여(!)하게 되면 그 동안 얼마나 환경을 오염시키는 방식으로 소비를 했는지 스스로 깨달을 수 있게 된다. 새싹 기르기, 텃밭(상자)에서 채소 기르기, 콩나물 길러먹기, 요구르트 만들어 먹기 등 네 가지 방법의 자급자족만 시도해도 아마 쓰레기, 나아가 환경을 보는 눈이 달라질지도 모르겠다. 여기에 꼼꼼한 분리수거도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