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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심정 벗님글방

초심자는 늘 말이 많다

등록 2012-05-18 17:30

“그것이 무슨 뜻일까?” _ 요한 16, 16-20

‘말귀를 알아듣는다’는 것은 자기 지식과 경험의 범주에 비유하여 이해되었다는 뜻이겠지요. 확인되지 않은 정보라도 비슷한 지식과 경험을 통해서 유추나 비유하여 알아듣게 됩니다. 가령 ‘금년 가을에 새로 선보일 스마트폰 기능에 이런저런 것이 있다’라고 하면, 전혀 확인되지 않더라도 이제까지의 기술 발전 과정에 대한 믿음이 있기 때문에 말귀를 알아듣게 됩니다.

그러나 학습이나 간접 경험을 통해서 자신은 이미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직접 경험하지 않고서는 사실 이해가 미칠 수 없는 세계가 많습니다. 미혼자가 결혼에 대해서, 또는 이혼에 대해서라든가 사회적 인기인이나 유명한 사람의 성품이나 성격에 대한 것들은 측근에서 경험하지 않고서는 알 수 없는 세계입니다. “내 남편이 그렇게 훌륭하고 성격 좋은 사람으로 보인다구? 네가 데리고 살아볼래?”

공동체 생활에 대해서도 우리는 가정생활이나 단체생활의 경험으로 유추해서 이해하기도 하고, ‘사람 사는 데는 다 그렇지 뭐!’라고 하면서 일반화로 이해하기도 합니다. 공동체 초심자들은 자신의 선이해(先理解)를 가지고 공동생활에 임하게 되는 경우가 많은데 정작 생활에서 하루하루 사건을 겪으면서 깨우쳐 가는 강도 높은 경험 앞에 주저 않고 마는 경우가 많습니다. 공동생활이야 말로 경험하지 않고서는 이해하기 아주 어려운 세계이고 실체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당신의 죽음과 부활에 대해서 “얼마 있으면 나를 못 볼 것이고, 그러나 조금 더 있으면 다시 보게 될 것이다”라고 하신 선문답(禪問答)을 알아듣지 못했습니다. ‘사라졌다 나타났다’ 하는 것은 유령이 아니고 인간에게서는 있을 수 없는 정체이기 때문이지요. ‘부활사건’이란 자신의 지식이나 경험 밖의 세계이기 때문에 이해가 미치지 못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경험을 지침으로 삼고 살아가게 마련입니다. 역사란 언제나 훌륭한 스승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자신의 경험으로 비유하고 유추하는 것만으로는 미치지 못하는 세계가 너무 많습니다. 제자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알아듣지 못하는 이유입니다. 영성이나 초월의 세계에 대해서 전혀 감이 잡히지 않을 수 있습니다. 신비주의에 대해서 혹은 사후(死後) 세계에 대해서 부정하는 이유도 그렇습니다.

종교인이라면 어떤 언어에 대해서 ‘아니다’, ‘그럴 리 없다’라거나 부정하는 것은 잘못된 태도입니다. 자신의 경험상 아니라고 해서 부정하는 것은 유물론(唯物論)이고 나아가 무신론(無神論)입니다. 인간의 삶인 공동체 생활도 경험 없이 말하기 어려울진데, 하물며 영적세계의 존재와 실체, 고대인과 고전적 증언들을 부정하는 것은 더 잘못된 것입니다. 겸손해야겠지요. 

공동생활에 입문하는 이들은 부르심에 대한 자신의 응답이 성공하기 위해서 겸손해야 하겠습니다. 세상 살아온 나이에 관계없이 자신을 유년생으로 여기고 시작해야 합니다. 자신이 여태 살아온 사회적 경험을 바탕으로 문제를 풀어가려고 하는 이들이 대부분입니다. 자신보다 앞서 살아온 이들의 생활에 대해서 잘못되었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마을이 가지고 있는 규칙이나 운영 방식들은 많은 시행착오와 실패의 아픔과 비싼 비용을 치르고 마련된 것들이 많습니다. 삶에는 자신들의 경험이 중요하듯이 공동체 삶에도 공동생활의 역사와 경험을 중시하게 됩니다. 그것들이 정리되어 공동체의 규칙이나 방식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초심자는 공동생활에 대해 자신만만하기 때문에 말이 많지만, 경험자는 살아갈수록 끊임없이 새롭게 발견하는 삶에 대해서 경외심을 지니며 자신이 너무 작게 느껴집니다. 그래서 말이 적습니다.

귀농 1년생은 농사에 박사처럼 말하고, 3년 차는 석사처럼 말하고, 5년 차가 되면 학사정도? 암튼 입들이 가볍습니다. 농사꾼 자식으로 태어나서 이제까지 농사를 짓고 살아온 사람들은 묵묵 벙어리지만 때가 되면 씨를 뿌립니다. 비가 조금 더 왔으면 좋겠는데….  (2012. 5. 17) 

본 글은 박기호 신부의  <산위의 신부  www.sanimal.org>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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