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신비의 ‘동굴 호수’
죽기살기로 오른 청전 스님의 생생한 체험
천진한 게촉 스님 마음에 잔잔히 되살아나
체력과 정신의 극한 상황을 넘어서야 하는 순례일수록 그 직후 차원이 다른 세계를 경험하게 마련이다. 마라톤 선수가 숨이 막히고 더 이상 달리기 어렵다고 느끼는 ‘데드 포인트’(사점)를 넘어선 순간 그 때까지와는 사뭇 다른 평안을 느끼는 것과 마찬가지다.
잔스카르 최고의 오지에 있는 푹탈사원은 데드포인트를 넘어서야만 도달할 수 있는 곳이다. 찻길이 완전히 끊기는 무네사원에서 하루를 달려 묵은 도르종의 외딴 민가에서 날을 새자마자 길을 나서도 해가 지기 전에 도착할 수 있을지 기약하기 어렵다. 더구나 도르종에서 푹탈사원까지는 설산에서 녹아 흐른 물이 거세게 흐르는 격류 위의 미끄러운 외길만으로 이어져 있다. 그 외길의 막바지에 외나무다리를 건너 급경사의 언덕을 넘어서자마자 천길 벼랑 속 동굴에 제비집처럼 붙어 있는 푹탈사원이 드러난다. 푹탈사원이 눈 앞에 펼쳐지는 그 순간의 경이로움은 지상에서 맛보기 어려운 것이었다.
환희 못 잊어 다시 찾아가니 아! 어디로 사라진 걸까?
그래서였을까. 달라이 라마의 제자 청전 스님은 1991년 8월 고산증을 겪으며 지쳐 쓰러질 즈음 이 언덕을 넘어 푹탈사원을 바라보는 순간 고꾸라지듯 엎드려 사원을 향해 절을 올렸다고 한다. 그리고 두 손을 모으고 동굴 안으로 들어갔더니 놀랍게도 호수가 있었다. 호수 안에 하얀 탑이 서있었는데, 그 주위를 두 노승이 돌며 옴마니밧메훔을 염송하고 있었다. 환희에 젖은 그도 노승들을 따라 탑돌이를 했다.
몇 년 뒤 푹탈사원을 다시 찾을 때 예전의 환희를 잊지 못한 그는 먼저 동굴 안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놀랍게도 동굴 안에 호수는커녕 작은 연못 하나 없었다. 놀란 그가 동굴을 나와 사원 스님들에게 “몇 년 사이 호수가 어디로 사라졌느냐?”고 묻자 그곳 스님들은 “호수 같은 것은 애초에 없었다”고 했다. 동굴호수를 분명히 보고 탑돌이까지 했다는 그가 의문을 갖고 노승을 찾아 묻자 노승은 그에게 “예전부터 동굴 안에 호수가 있었다는 전설이 전해내려오긴 했다”고 답했다. 아니나 다를까. 어원을 따져보니, 푹은 티베트어로 동굴, 탈은 산스크리트어로 호수라는 뜻이었다. 푹탈은 ‘동굴 호수’였던 것이다. 티베트어로만 따지면 ‘고통을 넘어서는 동굴’이란 뜻을 담고 있는 곳이기도 했다.
극한 고통을 넘어서 ‘동굴 호수’를 보았던 청전 스님은 “분명히 꿈이 아니라 현실에서 체험했고, 지금도 너무나 생생한 일이었다”고 고백했다. 하지만 동굴 안엔 호수도 탑도 없었다. 거대한 동굴 속을 제집 삼은 ‘티베트 까마귀’인 충카들만이 천장에서 울며 날고 있었다. 그렇다면 청전 스님이 본 것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식사 챙겨주고 3박4일 고행길 길잡이 자청
푹탈동굴 안에서 순례객을 맞은 것은 동굴호수가 아닌 젊은 승려 텐진 게촉(22)이었다. 이렇게 외진 사원일지라도 정규적으로 먼 마을까지 내려가 사람들의 평안과 행복을 기원하는 의식을 하는 이곳 스님들의 대부분이 절을 비운 사이, 거동이 부자유스러운 노승들과 함께 그만이 절을 지키고 있었다. 그래서 게촉이 암벽사원의 계단을 오르내리며 순례객의 식사를 챙겨주는 등 뒷바라지를 해주었다. 게촉은 아무런 반찬 없이 달랑 냄비 하나에 티베트수제비를 끓여왔다. 게촉은 “페 신푸두 페 신푸두”(아주 맛있다, 아주 맛있다)고 말하는 순례객들 보며 신이 난 듯 부엌으로 달려 내려가 남은 수제비를 긁어 와선 순례객이 그릇을 다 비울 때까지 식사하는 모습을 신기한 듯 바라보곤 했다.
세계 최고의 고갯길로 손꼽히는 싱고라를 넘는 3박4일 고행길의 길잡이를 자청하고 나선 것도 그였다. 지칠대로 지친 순례객들 처지에선 푹탈사원에 게촉마저 없었다면 그 막막함을 어찌했을 것인가.
“나는 의지할 데 없는 이들의 안식처가 되리라. 나는 배고픈 이들의 먹을 것이 되리라. 나는 험한 물을 건너고자 하는 이들의 다리가 되리라.”
7~8세기 인도의 고승 산티 데바가 <입보리행론>에 쓴 보살이 어찌 전설 속에만 있다고 할 것인가.
험난한 고비마다 익살 떤 그의 미소, 아! 거기에 있었다
절에선 거의 말이 없는 묵언수행자였던 게촉은 아랫마을 마부인 위르겐과 함께 말 두 필에 순례객들의 짐을 싣고 절문 밖을 나서자 마치 소풍을 떠나듯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한나절가량 말을 달려 푹탈사원의 험한 지형을 벗어나자 설산에 둘러싸인 초원에 야생화가 지천으로 피어 있고, 야크떼와 양떼들이 시내와 호숫가를 거니는 천상의 선경이 펼쳐졌다. 절 떠난 첫 밤의 숙소는 그 샹그릴라같은 초원에 있는 테타마을. 게촉이 열한 살 때 푹탈사원으로 출가하기 전까지 살던 고향집이었다. 속가의 어머니와 누나를 보고 미소짓는 게촉은 어느 새 동심의 아이였다.
게촉의 아쉬움을 뒤로 한 채 다시 길을 떠난 지 이틀째 밤. 현지의 천막에서 설산의 찬바람을 피해 잠을 자도록 순례객들을 밀어넣은 뒤 천막 밖에서 별을 보며 누운 게촉은 자기는 “밖이 더 편하다”며 환한 미소를 짓는다. 데드 포인트를 수없이 극복해야 하는 싱고라를 넘는 험난한 고비에선 더 익살스런 표정과 몸짓으로 순례단의 기운을 북돋워주던 게촉의 활력은 도대체 어디에서 온 것일까. 고통 속에서도 끊임없이 맑고 밝은 빛을 반사하는 ‘동굴 호수’는 전설 속에만 있지 않았다.
싱고라를 넘은 뒤 말을 끌고 다시 그 험한 길로 돌아서기 위해 어두운 밤 계곡을 건너는 그를 바라보며 순례객들은 긴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게촉은 미소를 띤 채 아무렇지도 않은 듯 다시 싱고라를 향하고 있었다.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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