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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심정 순례기

[라다크·잔스카르 순례기] 신이 버린 땅 천길 벼랑에 미소가 산다

등록 2010-07-29 18:17

<1> 신이 버린 땅에서 만난 잃어버린 얼굴

55년 수행 토굴엔 담요·냄비·숟가락만 ‘달랑’

목숨같은 염주도 선뜻 내어주고 그저 ‘빙그레’

 

인도 서북부 히말라야 고지대 라다크·잔스카르 지역은 티베트불교의 원형이 가장 잘 보존돼 있어 ‘작은 티베트’로 불린다. 이곳에선 현대 문명인들이 ‘잃어버린’ 인간 본래의 ‘얼굴’들을 만나볼 수 있다. 척박하고 고립된 환경 속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미소를 잃지 않고 있는 그들의 삶 속으로 들어가본다.

지난달 29일 라다크의 수도 레에서부터 시작해 25일간 25개의 옛 티베트 사찰을 비롯한 마을들을 누빈 라다크와 잔스카르 순례길은 <나는 걷는다 붓다와 함께>(휴 펴냄)의 저자 청전(57) 스님과 함께했다. 

 

가톨릭 신부가 되기 위해 신학대에 다니던 중 출가해 1988년부터 인도 히말라야 다람살라에서 티베트불교의 정신적 지도자 달라이라마를 스승으로 수행해온 그는 20여 년째 매년 여름 한 달가량 라다크를 순례해왔다. 그때마다 그는  영양제와 관절염약, 보청기, 돋보기, 헌옷 등을 갖고 가 히말라야 사람들에겐 ‘산타 몽크’(산타클로스 스님)로 알려져 있다.

 

해발 3000~6000m 고지인 이 지역 순례는  지프와 말을 기본 이동수단으로,  고찰과 천막에서 새우잠을 자고 세계 최대 설산 고갯길 싱고라를 5박6일간 걸어서 넘으면서 고산증 및 체력의 한계와 싸우는 고행의 연속이었다.

 

 

가도 가도 끝 모를 하늘에 걸린 외길, 감옥인가 삶인가

 

 

 

숨이 가빠온다. 발밑은 천길 벼랑이다. 설산에서 녹아 흐르는 거센 급류가 포효하는 강물에 휩쓸리면 주검조차 찾을 길이 없다. 얼마 전 발밑 모래에 미끄러져 말이 떨어져 죽었다는 건너편 벼랑 위를 지나는 말의 행렬이 마치 곡마단의 외줄타기처럼 아슬아슬하다. 외줄처럼 가느다란 잔스카르의 산길은 몇 백미터가 아니다. 한 시간을 가도 한나절을 가도 끝없이 이어진 외줄의 연속이다. 지상에서 영원으로.

 

하지만 순례 첫날 비행기를 타고 해발 3500m인 레에 내려 며칠 간 구토와 두통으로 고생하며 세계에서 세번째로 높은 고개 창라(5360m)와 세계 최고 고갯길 칸둥라(5608m)를 넘은 뿌듯함도 일시적 기분일 뿐인가. 찻길이 끊어져 오직 두 발에만 의존해야 하는 잔스카르의 산길에선 이제 생사를 가를 수도 있는 한 발 한 발만이 전부다. 모든 것이 일시적이어서 고통일 뿐이라는 불법의 진리가 이 오지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마침내 영원한 것은 없다. 순간이다.

 

가쁜 숨을 제어하지 못해 제 지팡이에 다리가 엉켜 하마터면 천길 아래로 산화했을 뻔했다는 자책도 호사일 뿐. 오직 앞발을 내딛는 한순간이 중대하다. 현기증에도 엉덩이 하나 붙일 곳이 없는 아찔한 시야 속에 까마귀의 사촌인 충카가 비상하며 공중을 선회하다 벼랑 끝에 핀 해당화 줄기 끝에 사뿐히 내려 앉는다. 위태하고 힘겨운 순례자 앞에서 그는 자유롭고 아름답다. 순례자와 충카는 손에 닿을 듯 가까이 있지만 그 마음은 지옥과 천상만큼 멀다. 이 위태한 외줄은 어떻게든 벗어나야 할 감옥인가, 아니면 외줄을 즐기는 곡예사처럼 받아들여야 할 삶의 행로인가.

 

 

비워내고 비워낸 그 마음엔 무엇이 채워져 있을까

 

새벽길을 배웅해주던 통데곰파(곰파는 ‘절’의 티베트어)의 노승 타쉬 왕뒤(75) 스님의 삶처럼 외줄이 이어져 있다. 티베트 불교의 위대한 스승인 나로파 존자의 수제자인 마르파가 고산 통바위의 벼랑 끝에 창건한 통데곰파에서 최고령자인 왕뒤 스님은 절 아래 마을에서 태어나 스무 살에 출가해 55년간 통데곰파에서만 수행하며 살아왔다.

 

절벽에 제비집처럼 달라붙어 있는 그의 흙집 안엔 담요 한 장, 냄비와 숟가락 한 개가 전부였다. 세속의 재밋거리를 엿볼 그 무엇 하나 방구석에선 찾아볼 길이 없었다. 그 삭막한 토굴 안에서 55년. 그런데도 세상의 재미와 감동을 한가득 안은 양 평화롭고 자비롭게 짓는 그의 미소는 대체 어디에서 연유한 것일까.

 

그 나로파-마르파 존자의 숨은 후예는 50여 년 간 몸에 지니며 일념으로 ‘옴마니밧메훔’을 염송하며 굴려 반질해질대로 반질해진 반짝이는 보리수 염주를 이 순례자의 목에 걸어주었다. 자신의 목숨처럼 간직해온 유일한 유산을 아낌없이 지나는 순례객의 목에 걸어준 뒤 무소유의 처지에서도 세상을 다 가진 듯 자족하게 미소 짓는 그의 마음엔 과연 무엇이 채워져 있는 것일까.

 

왕뒤 스님의 변함없는 삶처럼 이어진 길 위에 신(神)의 그림자는 보이지 않는다. 설산 아래 풀 한 포기 없는 황량한 산들은 신마저 버린 것인가.

 

 

 

동공 풀린 순례자 발 간지럽히는 천진함에 터져버린 웃음

 

통데곰파에서 잔스카르 최고 오지 암자 푹탈곰파까지 1박2일 산길 안내를 자처한 통데곰파의 겐 출팀 툽톱(71) 스님의 발걸음은 사뭇 다르다. 마치 충카처럼 사뿐사뿐 앞서 걷던 그가 모처럼 나타난 밭에서 일하던 한 아낙을 본다.  그들이 이미 아는 사이였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그도 달려가고 아낙도 달려온다. 그들이 여는 미소가 황량한 사막에서 샹그릴라처럼 피어난다.

 

그 툽톱 스님을 따라 걷고 걸어 날이 어둑해져 푹탈곰파에 도착했을 때 순례자는 파김치가 됐다. 천길 벼랑 위 거대한 동굴 속에 자리한 곰파에 순례자의 거친 숨소리와 마른 기침만이 메아리친다. 지친 순례자 앞에 놓인 것은 티베트 수제비인 보리 툭파 한 그릇. 반찬은 아무 것도 없다. 그것이 1년 내내 그들이 먹고 사는 음식의 전부다. 툭파도 먹는 둥 마는 둥 풀린 동공으로 퍼져있는 순례자 옆에서 툽톱 스님은 여느 때와 다름없이 불경을 염송하고 있다. 그러다가 자신 앞으로 펼쳐진 순례자의 부르튼 발을 살며시 간지럽히기 시작한다. 아무런 조건 없이 한 존재를 사랑스럽게 터치하며 간지럽게 하는 손길에 가슴 속에 갇힌 웃음이 터져나와 버린다. 그날 푹탈 동굴에선 그 메아리의 파장이 오래도록 퍼져갔다.

 

라다크·잔스카르/글·사진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 라다크와 잔스카르는

사면이 설산으로 둘러싸인 인도 서북부의 히말라야 고지대

스웨덴 여성학자 호지 <오래된 미래>로 알려진 ‘대안 사회’

 

라다크와 잔스카르는 사면이 설산에 둘러싸인 인도 서북부 히말라야 고지대다. 인도와 파키스탄, 중국령 티베트의 접경으로 현재 인도의 잠무·카슈미르 주에 속한다. 2차 대전 이후 인도 땅으로 정착하긴 했지만 파키스탄과 중국이 자국 영토임을 내세워 분쟁이 끊이지 않는 지역이다. 대부분의 지역이 군경의 진입허가서를 받아야 들어갈 수 있다.

 

이 지역은 옛 티베트 구게왕국이다. 티베트가 1959년 중국의 침공으로 나라를 잃어 전통 불교사원과 문화가 파괴된 것과 달리 이곳은 인도령으로 남아 여전히 티베트불교 승려들이 고찰에서 그들의 전통을 지키며 살아가고 있다.  언어는 티베트 방언인 라다크어다. 지역민 대부분이 티베트불교 신도로, 자식 가운데 한둘은 출가시키는 것을 당연시한다. 대부분의 사찰엔 동자승학교가 있어 사찰은 학교인 동시에 삶의 중심지다.

 

라다크는 ‘고개’라는 ‘라’와 ‘땅’이라는 ‘다크’의 합성어로 ‘고갯길이 있는 곳’이란 뜻이다. 칸둥라와 창라 등 세계 최고의 고개들이 이곳에 있다. 여름철 4~5개월을 제외하고는 7~8개월 동안 얼어붙어 있어 대부분 차량 통행이 끊긴다.

 

라다크는 1975년부터 16년간 연구활동을 위해 거주한 스웨덴 출신의 여성학자 노르베리 호지의 <오래된 미래-라다크로부터 배우다>를 통해 서구문명의 대안적인 사회로 서구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비가 전혀 오지 않아 대부분 황무지다. 하지만 설산과 황무지, 설산에서 녹아흐르는 시냇물, 야크와 양이 뛰노는 초지, 제비집같은 사원들은 신비로운 풍경을 연출한다. 10만여 라다크인들의 주식은 보리와 밀로 만든 ‘은감폐’(일종의 주먹밥)다.

 

조현 기자

 

 

 

   1.신이 버린 땅에서 만난 잃어버린 얼굴

   2.신비의 동굴호수

 3.5360m 창라를 넘어

 4.샤추쿨의 축제

 5.행복한 공동체 리종사원

   6.리종 린포체

  7.히말라야 최고 어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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