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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심정 순례기

간디의 수제자면서 간디도 배운 비노바

등록 2010-04-23 17:16

땅 헌납운동 벌여 비폭력 도덕혁명 ‘기적’

힌두교 기독교 불교 등 기도문 함께 봉송

 

비노바 베바는 간디만큼 유명하지않다. 그러나 간디는 인도가 독립한다면 가장 먼저 인도 국기를 게양해야할 인물로 비노바 바베를 꼽았다. 비노바 바베는 간디의 제자다. 간디의 수제자나 다름없지만 한편으로 간디는 그에게서 많은 것을 배웠다. 그만큼 비노바 바베는 탁월한 현자였으며, 성자의 풍모를 지닌 인물이었다. 그러면서도 그는 수행자로서만 머물러있지않고, 봉건 인도를 변화시킨 주역이었다.

 

 

13년 동안 인도 전역 걸어다니며 호소

 

 

 

비노바 바베(1895~1982)가 1951년부터 1962년까지 인도 전역을 두 발로 걸어다니며 지주들을 만나 했던 얘기다.

 

 

인도 독립 뒤 농촌빈민들은 땅 한 평 없이 피죽으로도 연명하기 어려웠고, 지주들은 이들의 폭동과 폭력적인 공산 혁명을 두려워했다.

 

그러나 비노바는 13년 동안 인도 전역을 걸어다니며 지주들을 만나 “만일 당신에게 아들 다섯이 있다면 가난한 이들의 대표자를 여섯째 아들로 생각하고 당신 땅의 6분의 1을 달라”고 부탁했다.

 

그의 설득은 공산 혁명과는 전혀 다른 비폭력적인 도덕혁명이 가능하게 했다. 제 땅이라곤 한평도 내놓지 않을 법한 지주들이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주라며 땅을 내놓았다. 그가 헌납받은 땅이 4천만 에이커로 스코틀랜드 넓이만 했다. 

 

보통 비노바지아쉬람이라고 부르는 이 아쉬람은 세바그람간디아쉬람에서 5km 떨어진 푸우나의 담강가에 있다.

 

1916년 비노바는 21살 때 47살이던 간디를 만났다. 간디는 1938년 비노바가 푸우나로 분가한 이후에도 자신을 찾은 지도자와 사상가들에게 늘 “파우나에 가서 비노바를 만나보았느냐”고 묻고는, “만나보지 못했다면 꼭 만나봐야 하는 사람”이라고 말하곤 했다.

 

 

 

 

꽃이 사람이고, 사람이 꽃

 

간디아쉬람이 관람객 등 일반인들이 많이 드나들고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있는데 반해 비노바아쉬람은 가톨릭의 수도원 같은 인상이었다. 

 

아쉬람으로 가기 위해 담강의 다리를 넘다보면 담강바닥의 바위에 있는 비노바의 무덤을 먼저 만난다. 1982년 80일간의 단식으로 얼굴에 평화와 빛에 싸여 몸을 벗어버린 비노바의 재를 묻은 무덤이다. 

 

강가에서 정문을 따라 들어가다보면 브라더 4명이 쓰는 건물이 나오고, 다시 다른 문을 통과하면 가운데 밭과 정원이 있고 사방에 시스터들의 숙소와 기도실들이 둘러싼 아쉬람이 나온다. 이곳이 31명의 시스터들이 살고 일하며 기도하는 곳이다.

 

문에 들어서니 가장 먼저 나를 반긴 것은 정원의 꽃들이었다. 사람은 없었다. 점심시간 전후에 있는 침묵 시간이었다. 침묵 시간엔 일체 활동 없이 개인적인 침묵으로 보낸다. 

 

건물은 낡은 스레트 지붕이었고, 밭과 정원도 애써 조경한 흔적이 없었다. 자연 그대로였다. 그런데도 국화와 장미꽃이 빛을 뿜어냈다. 꽃에서 광채와 아우라가 생겨났다. 물아일체. 꽃은 사람이고, 사람은 꽃이다. 난 빛을 내뿜는 꽃과 빛을 나누는 시스터들이 더 빨리 보고 싶어졌다.

 

담강가의 무덤 말고도 내부 건물에도 비노바의 재를 묻은 키 작은 대리석 무덤이 있었다. 무덤 위엔 시스터들이 꽃잎을 따서 하트 모양으로 놓아두었다. 비노바가 떠난 지 22년이 지났지만 그들에게 비노바는 떠난 것이 아니었다.

 

 

 

 

여성들 중심으로 수련 통한 깨달음 이끌도록 

 

비노바는 이곳에 정착한지 21년이 지난 1959년 아쉬람을 열었다. 이름은 브라마비디야 만디르. 브라마비디야는 지고의 존재다. 브라마비디야를 얻지 않는다면, 우리의 사상의 샘물은 곧 말라버려 고갈될 것으로 믿은 비노바는 지고의 존재를 만나는 아쉬람을 세웠다. 그리고 여성들의 사다나(수련을 통한 깨달음)를 공개적으로 드러내야 될 때가 왔다고 보고 여성들 중심으로 이 아쉬람을 이끌도록 했다. 남자들의 힘만으로 세계 평화를 이룰 수 없다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

 

기도회에 모여든 시스터들과 브라더들은 아름다웠다. 표정과 걸음걸이 하나하나에서 풍기는 아름다움을 어찌 말로 설명할까. 그것은 젊기 때문이 아니었다. 이들은 대부분 고령자였다. 비노바와 함께 직접 인도 전역을 걸으며 토지헌납운동을 하고 이 아쉬람을 함께 설립한 사람들이 여전히 이곳에 상당수 살고 있었다.

 

기도회에선 간디아쉬람과 마찬가지로 힌두, 이슬람, 자이나, 기독교, 시크, 불교, 조로아스터 등 여러 종교의 기도문이 함께 봉송된다. 그런데 자유스롭게 여기저기에 앉은 시스터들과 브라더들의 상당수는 기도 중 물레를 돌렸다. 어떤 시스터는 신상에 올릴 꽃목걸이를 만들고 있었다. “노동이 바로 예배”라는 비노바의 말대로 하고 있는 것이었다.

 

날이 어둑어둑해지자 담강의 비노바 무덤이 보이는 곳에 있는 기도실로 옮겨 기도했다. 기도를 마친 한 시스터가 나를 보더니, “누구의 상인지 아느냐”고 물었다.

“멍키”

다른 상은 누구라고 말할 자신이 없었지만, 마지막에 서 있는 것은 원숭이가 분명했다. 나는 하누만을 동원해 권력과 권위에 대한 충성을 유도한다는 생각도 있어서 하누만에 대한 존경의 마음을 갖지 못했다. 그러나 나는 그들에게 큰 의미 있는 신에게 얼마나 큰 실례를 했는지 한참이나 알지 못했다.

 

 

 

 

 

인류 구원의 화신인 람을 “원숭이”라고 했으니…

 

기도실에 모셔진 것은 람 신상이었다. 돌에 새겨진 상은 람과 부인 시타, 동생 바라타와 락슈만, 그리고 원숭이 대장 하누만이었다.

 

내게 질문한 시스터가 한참을 웃더니, 옆 시스터에게 우리 둘 사이에 오고 간 얘기를 했다. 그랬더니 그 시스터와 옆에 있던 시스터들도 웃음을 참지 못했다. 전혀 비웃거나 실망하는 표정은 찾으려야 찾을 수 없었다. 마치 구르는 낙엽만 봐도 웃는 10대 소녀처럼 순진무구하게 웃었다.

 

인도에선 유지의 신 비슈누는 지상의 진리와 질서가 쇠퇴할 때 인류를 구원하러 화신으로 내려온다고 믿는데, 7번째 화신이 람, 8번째 화신이 크리슈나다. 인도를 대표하는 두 편의 서사시 ‘라마야나’와 ‘마하바라타’는 람과 크리슈나가 각각 등장한다. 이들은 시바와 함께 인도에서 가장 사랑받는 신이기도 하다. 특히 람은 인간 속에 있는 신성을 실현한 완성된 인간의 상징으로 그려진다.

 

람은 누가 뭐래도 왕 제목이었지만 새 어머니의 모략으로 왕위에 오른 동생 바라타 대신 14년간 숲으로 추방당했다. 그러나 착한 동생은 늘 그를 기다렸고 그는 결국 왕이 돼 이상정치를 실현했다. 

 

하누만이 등장한 것은 람이 숲에 머물 때다. 아름다운 부인 시타가 악마 라반의 섬에 납치되었을 때 람을 헌신적으로 도와 부인을 위기에서 구한 게 하누만이었다.

 

중국이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의 마스코트로 내세운 손오공의 원형이라고도 전해지는 하누만은 농사를 돌보는 촌락의 수호신이자 몬순의 보호신으로 알려져 있다. 누군가를 섬기는 신의 전형이 하누만이었던 것이다. 그들에게 그렇게 중요한 ‘신’을 그냥 ‘멍키’라고 했으니.

 

조현 종교명상전문기자cho@hani.co.kr

[이 기사의 자세한 내용은 <인도오지기행>(한겨레출판 펴냄)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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