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베트 ‘천진보살’ 쬔뒤 스님, 지상 여행 마쳐
죽음 예견하며 열반 전 출가사찰로 되돌아가
17일 밤 잠결에 전화가 울렸습니다. 히말라야 다람살라에 있는 청전 스님이었습니다. 젖은 목소리였습니다.
“아빠 스님이 돌아가셨소!”
청전 스님이 전해온 것은 롭상 쬔뒤 스님의 열반이었습니다. “그랬군요”라는 말 이외 할 말이 없었습니다. 어제 밤 꿈에서 청전 스님을 보았는데, 아마 이 소식을 들으려는 전조였던 모양입니다. 인도 라닥의 티베트 노스님인 쬔뒤 스님은 제가 본 ‘가장 천진한 웃음’을 간직한 분이었습니다. 그가 84년간의 지상 여행을 끝내고 돌아간 것입니다.
제가 6년 전 히말라야에 있을 때, 저와 한달간 한방에서 동거를 했던 쬔뒤 스님은 그야말로 천진보살이었습니다. 그가 사는 라닥은 겨울이면 워낙 추워서 노인들이 겨울을 나기가 쉽지 않기 때문에, 청전 스님이 조금이나마 여건이 나은 다람살라로 쬔뒤 스님과 왕걀 스님을 오시게 해 모시고 있었습니다. 평생 도반인 두 분 가운데 쬔뒤 스님은 꼭 남편같고, 왕걀 스님은 꼭 부인 같아서 청전 스님은 쬔뒤 스님을 아빠 스님, 왕걀 스님을 엄마 스님이라고 불렀습니다.
청전 스님이 최근 아빠 스님, 엄마 스님 얘기가 포함된 <나는 걷는다 붓다와 함께>를 출간하러 한국에 와있던 2개월 동안에도 아빠 스님은 눈을 감기 전 자식같은 청전 스님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몇번이나 전화해오곤했습니다. 쬔뒤 스님은 열반하기 위해 아홉살에 출가해 평생을 지낸 출가본사인 라닥의 사찰, 리종곰빠인 로 돌아가 있었습니다. 자신의 죽음을 예견하면서, 여한 없이 기쁘게 다음 여행을 떠날 수 있음을 내비치곤 했습니다. 한국을 너무도 좋아하는 쬔뒤 스님은 "다음 생엔 한국에서 태어나겠다"고 했고, "청전 스님의 상좌(제자)로 다시 돌아오겠다"고 약속했습니다.
2년 전엔 청전 스님이 그 분들을 모시고 한국에 왔습니다. 생전 처음 비행기를 타고 한국에 온 그 분들은 모든 게 신기한 듯 눈이 왕방울만 해지곤 했습니다. 그 분들이 운문사에 머물 때 찾아가 만났는데, 청전 스님은 히말라야에서처럼 다시 한번 아빠 스님과 자라며, 한방에 머물게 했습니다. 저는 6년 전처럼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분과 행복한 단잠을 잤습니다. 아빠 스님도 아침에 일어나 “어제 밤 꿈속에서 부처님을 뵈었다”면서 어린아이처럼 기뻐했습니다. 그 분들이 다시 히말라야로 돌아갈 때, 영하 30~40도를 오르내리는 라닥에서 외출할 때 잠시나마 뜨거운 물을 드실 수 있게 조그만 보온물통을 안겨드렸습니다. 아빠 스님이 제 차가운 가슴에 지핀 따스한 장작불에 비하면 너무나 보잘 것 없는 선물이지만 말입니다.
아빠 스님은 갔지만, 그의 해맑은 미소는 제 가슴에 남아있습니다. 그의 미소를 떠올리면서 달라이 라마 존자의 말씀이 생각납니다.
“많은 이들이 수행을 한다고 하고, 오체투지를 수만번 한다하더라도 누군가를 대할 때 평화롭게 미소 지을 수 없으면 그런 것이 다 무슨 소용이겠는가.”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이 기사의 자세한 내용은 <인도오지기행>(한겨레출판 펴냄)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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