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콩달콩 공동체
처녀 앞에서 꼭 그짓을 하더니 그예 ‘싹둑’
짝짝 붙는 야자수주에 별 총총 해변 ‘꿀잠’
예전에 비해 이 마을도 조금씩 변화해가고 있지만, 이 마을은 여전히 가족과 이웃이 알콩달콩 정답게 살아가는 마을 공동체다. 프렝키 집 식구나 다름없는 이가 건너편에 야자수로 허름하게 지어진 집 아들 레그먼이다. 초등학교 3학년인 레그먼은 학교 수업이 끝나면 언제나 프렝키집 현관 구석에 쭈그리고 앉아 숙제를 한다. 프렝키가 그의 무보수 가정교사다. 프렝키는 친동생이나 다름없이 레그먼을 돌보고, 레그먼도 누나나 엄마처럼 그를 따른다.
일주일에 한번만 술을 마신다더니…, 아 그래서!
레그먼 아빠는 이 마을 야자수에 올라가 흠집을 낸 나무에서 수거한 즙으로 야자수주를 만들어 팔아 생계를 이어간다. 가지조차 없이 수십미터나 일자로 뻗어있는 야자수를 오르는 그의 기술은 신기에 가까웠다.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지는 법. 그가 한 쪽 다리를 저는 것을 보면 그에게도 원숭이의 전철을 밟았던 아픔이 있었던가 보다. 레그먼 아빠는 까마득한 나무 위에서 희희낙락하는 그를 놀란 토끼눈처럼 보는 나에게 “이 술맛이야말로 둘이 먹 다 둘 다 죽어도 여한이 없는 맛”이라며 은근슬쩍 나를 꾀곤 했다.
프렝키네는 독실한 가톨릭 신자들이어서 매일 밤 8시가 되면 거실에 온 가족이 모여 가족 미사를 드렸다. 미사는 하루도 빼놓지 않고 예외 없이 지켜졌다. 主님보다는 酒님을 자주 모시는 나지만,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는 종교 기자의 ‘예법’에 따라 자주 미사에 참가했다.
몸 컨디션이 워낙 좋지 않아 술을 절제하곤 있었지만, 레그먼 아빠의 지속적인 프러포즈를 계속해서 거절할만큼 무례한 내가 아니지 않은가. 프렝키에게 자기 아버지와 야자수주를 함께 하고 싶다고 했더니 “아버지는 일주일에 한 번만 술을 드신다”고 했다.
드디어 디데이. 현관에 의자를 내놓고 앉아 프렝키 아버지와 야자수주를 주고받았다. 그런데 기대치 않았던 술맛이 혀에 짝짝 달라붙는 게 보통이 아니다. 난 너무 맛이 좋아 몇잔을 연거푸 마셨는데, 나중에야 프렝키 아버지가 이 맛좋은 술을 일주일에 한 번만 마시는 이유를 알았다. 도수가 양주보다 더 강한 술이었다.
과음하고 쫄쫄 굶고 있는데 내민 음식, 그야말로…
야자수주를 마시고, 팔로렘 해변에 갔더니 별들이 축포처럼 머리 위로 쏟아졌다. 돌고래가 춤추는 팔로렘의 바다에선 살랑살랑 파도가 내 발에 간지럼을 태웠다. 해변 식당 앞에 피워둔 모닥불 둘레엔 중년 부부가 촛불과 포도주 한 잔으로 삶의 여유를 나누고, 잔 돌 하나 없이 부드러운 모래사장에선 젊은 영혼들이 인도 북 타블라를 흥겹게 두드리며 혼불을 태웠다.
달콤한 밤이 꿈으로 이어져 밤새 바닷물결 위에서 춤추고 있는데, 나를 깨운 것은 돼지의 비명 소리였다. 너무 시끄러워서 누가 돼지를 도살하는가싶어 보았더니, 레그먼 아빠가 돼지 한 마리를 붙잡고 순식간에 칼로 불알을 따버리고 재를 한움큼 집어넣지 않은가. 그리고 놓아주니 그 돼지는 쏜살같이 내달렸다.
그렇지 않아도 아직 여물지도 않은 녀석이 시집도 안 간 프렝키 앞에서 꼭 교미자세를 취해서 낯 뜨겁게 하더니 기어이 그런 비운을 맞은 것이다. 돼지 새끼가 너무 많아 수를 조절하기 위한 것인지, 육질을 좋게 하기 위해서 하는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레그먼 아빠의 거세 솜씨는 거의 도가 튼 듯 했다.
몸도 안 좋은 내가 어젯밤 과음하고 차우디 피시마켓도 가지 못한 채 쫄쫄 굶고 있는 것이 안타까웠던지 프렝키가 요리한 음식을 내게 내밀었다. 돼지고기 커리였다. 돼지고기를 잘게 썰어 여러 야채와 양념을 듬뿍 넣어 끓인 것이었다. 마당의 돼지들에겐 미안했지만, 커리 맛은 그야말로 일품이었다.
힌두 신화 속에서도 세번째로 인류 구하는 화신
팔로렘은 수많은 여행객들이 먹다 남긴 음식물들이 많고, 쓰레기를 수거하는 쓰레기차가 다니는 것도 아니어서 쓰레기 해변이 될 법도 한데, 언제나 깨끗하기 그지없다. 모두 돼지 덕이다.
인도의 10억 인구가 쏟아내는 쓰레기는 상상을 초월한다. 2050년엔 인구 15억3천만명으로 13억9천5백만명의 중국을 따돌리고 인구 최대국이 될 전망이라니 인도의 쓰레기 방치야 말로 문제 중 문제다.
인도에서도 원시 종교에선 돼지가 신성시 됐다. 힌두 신화에 따르면 지상의 질서가 쇠퇴하고 오염될 때마다 인류를 구하기 위해 보존의 신 비슈누가 아봐타(화신)로 나타나 인류를 구한다고 한다. 세 번째로 나타나는 아봐타가 돼지 바라하로 그려진다.
인도엔 비가 푹푹 찌는 건기와 몇 달 동안 비만 오는 우기가 이어진다. 전염병이 창궐하기 딱 좋은 날씨다. 중세 유럽에서 흑사병으로 인구의 3분의1이 절멸했듯이 인도에서도 전염병이 돌기 쉬운 조건들을 두루 갖추고 있다.
거리의 청소부인 돼지들이 없다면 인도는 며칠도 못 가 부패한 쓰레기기 더미에 파묻히고, 이곳에서 야기된 전염병으로 살 수 없게 되지 않을까.
소만 신성시하는 반면 돼지를 박대하지만 돼지야말로 썩을 쓰레기들을 먹어치워 기름진 똥거름으로 땅의 생명력을 북돋워 인도를 보존하는 비슈누의 화신이 아닌가.
초주검이 돼 가던 내 몸을 보존해준 것도 팔로렘의 돼지와 돼지 엄마 프렝키다.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이 기사의 자세한 내용은 <인도오지기행>(한겨레출판 펴냄)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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