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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심정 순례기

장애도 녹이고 결점도 안아 ‘복’을 만들다

등록 2009-09-07 10:22

미나네 가족

길거리 아이 키우는 아내, 아내의 혹 기뻐한 남편

의사인 남동생은 히말라야 오지에서 인술 베풀어

 

 

미나는 어머니와 남편, 그리고 딸아이와 함께 넷이서 푸네 반짜와트에서 살고 있다

 

미나는 얼마 전 학교에서 생물 과제를 하던 딸아이로부터  자신을 “낳기까지 출산 과정을 설명해 달라”는 질문을 받았다.

 

늘 호수처럼 깊고, 화롯불처럼 따사로운 눈빛을 잃지 않은 미나는 딸아이의 손을 잡고 답했다.

 

“엄마는 엄마의 몸으로 직접 아가를 낳은 적이 없단다.”

 

딸아이가 놀라서 그를 바라보았지만 그는 딸의 손을 잡고 전혀 동요하지 않은 채 조금의 거리낌도 없이 말을 이어갔다.

 

“꼭 직접 낳아야만 가족이 되는 게 아니란다. 외할머니와 아빠는 서로 알지도 못했지만 엄마와 아빠가 결혼한 뒤 만나 부모 자식 사이가 돼 이렇게 행복한 가족을 이루고 있지 않니. 그처럼 내 딸과 엄마와 아빠, 할머니도 서로 만나 이렇게 서로 사랑하는 한 가족이 된 거란다.”

 

딸은 눈을 반짝이더니 금세 모든 것을 이해한 듯 전혀 동요 없이 환하게 웃었다. 그 딸은 소아마비 장애인이었다.

 

유학 다녀온 뒤 교수까지 한 인텔리 중 인텔리

 

인도의 시내 거리를 다니다보면 손발이 잘리거나 심한 소아마비 상태로 버려져 구걸로 연명하는 아이들이 너무나 많다.

 

미나는 미국 유학을 다녀와 대학 교수까지 했으니 인도에서 인텔리 중 인텔리 여성이다. 그런 미나는 결혼 초부터 그런 아이를 데려다 길렀다. 지금 그 딸에게 처음으로 이 사실을 고백한 것이다.

 

“그런 사람들을 보는 것 자체가 기쁨이다.”

 

이렇게 미나에 대한 얘기를 처음 전해준 사람은 푸네에 사는 박경숙씨였다. 그는 멋진 아유르베딕 의사와 함께 살고 있는데, 나와 친구가 된 그 남편 두경우씨(휴심정 벗님글방의 필자)는 바로 미나네 집 앞에 병원을 운영하고 있었다.

 

내가 푸네에 도착해서 간 집이 경숙씨 집이었는데, 그곳에 도착한지 몇분이 안되어 지리산 실상사의 주지인 재연 스님이 달려왔다. 80년대 푸네대학에 유학했던 스님은 불경을 산스크리트어 원전으로 다시 읽어보려고 6개월 예정으로 와 있다가 내가 왔다는 얘기를 듣자마자 온 것이다. 

 

실상사에 갔을 때 멀리서 얼굴 한 번 봤을 뿐인 스님을 만나자 난 평생지기를 만난 듯 그의 집에 배낭을 풀고, 뻔뻔스럽게도 그가 아끼고 아낀 한국산 반찬들과 아침 식사대용인 우유까지 동냈다.

 

난 스님이 손수 지어준 맛있는 밥을 먹으며, 불교와 힌두 경전 원전들에 해박한 스님으로부터 며칠 밤낮에 걸쳐 귀와 마음을 여는 호사를 누렸다.

 

경숙씨 부부는 13년 전 둘 다 출가를 꿈꾸며 히말라야를 여행하다 눈이 맞았다. 그래서 결혼하고 두 딸을 낳고 이곳에서 알콩달콩 잘 살고 있었다.

 

13년 터줏대감 한국인 부부 덕에 ‘한인 공동체’

 

동양의 옥스퍼드라는 푸네 대학엔 한국에서 여러 명이 산스크리트어를 배우러 와 있는데 푸네에 터 잡은 지 13년이나 된 경숙씨네 집은 한국인 유학생들의 안방이나 다름없었다.

 

마치 대학가 하숙집처럼 사람이 모이는 곳이니 별의별 사람들이 모이게 마련이다.  이 집 부부는 외출할 때도 방문객을 위해 문을 잠그지 않기 일쑤다. 그러니 남의 집 부엌을 이잡듯 뒤져 담은지 며칠 밖에 안 된 술을 갖다 먹어버리는 사람, 온통 집안을 어질러놓고 가는 사람,  밥 해먹고 설거지도 안 해놓고 가는 사람도 있었다. 그런데도 이 부부는 그런 이들의 단점보다는 장점을 얘기하며 뭐가 그리 좋은지 히히 호호 하며 다음날 또 반갑게 맞이하곤 했다. 그것이 바로 반짜와뜨마을의 한인 공동체를 이루게 했다.

 

하루는 우스갯소리를 잘 해 내 배꼽을 분실케하는 한 비구니 스님이 차를 가져왔다. 차는 겉보기에 ‘인상착의’는 썩 훌륭해 보이지 않았지만, 맛을 보니 시원한 바람이 머리 속을 휘감아 도는 듯 했다. 히말라야의 자생 풀잎들을 손으로 따서 말린 허브차였다.

 

어디서 가져온 차인지 물었더니 바로 “미나네 집”이라고 했다. 의사인 미나의 동생은 히말라야의 오지에서 치료조차 받지 못한 채 죽어가는 사람들을 치료하고, 오지의 아이들을 위한 학교를 세워 가르치고 있는데, 그 오지의 사람들이 직접 만든 차라는 것이다.

 

마음씨 착한 이 스님과 경숙씨 등은 가벼운 주머니까지 털어 그런 히말라야 오지사람들을 후원해온 터였다. 나는 그 차를 마시며 ‘그 동생에 그 누나’인 미나가 더욱 그리워졌다.

 

공작새도 주저없이 집 마당으로 ‘친구처럼’

 

미나는 공작새가 노니는 산기슭에 지어진 아름다운 집 정원에서 애견 쉬바와 함께 나를 맞았다.  쉬바는 덩치가 송아지만한 셰퍼드였다. 그런데도 미나를 닮았는지 야수성은 사라지고, 비폭력 자비견으로 바뀌어버린 듯 했다. 쉬바는 벌써 13살이 돼 개로선 환갑 진갑 넘은 나이여서 관절염이 심하다며 요즘은 편찮은 어머니와 함께 쉬바까지 두 어머니를 모시고 산다고 했다.

 

사람들은 멋지게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복이 많다고 하지만, 미나는 복을 스스로 만들었다. 미나가 이렇게 아름다운 곳에 사는 것을 본 사람들은 ‘돈이 많았을테지’라고 생각하겠지만, 실은 불모지나 다름없던 반짜와트에 가장 먼저 터를 잡은 사람이 그였다.

 

13년 전 그가 이곳에 집을 지을 때만 해도 길조차 없어 오토릭샤도 다니지 않고 우기 때는 걸어 다닐 수도 없었다. 그래도 그는 공작새가 살고, 꽃이 지천에 피어있는 이곳이 좋아 산기슭에 터를 잡았다. 그런 미나네 집을 보고, 사람들이 하나둘씩 모여들어 푸네에서 가장 아름다운 마을 중 하나가 된 것이다.

 

그와 얘기를 하는 동안 공작새 한 마리가 산언덕을 내려오며 미나와 나에게 가까이 다가섰다. 공작새도 미나나 쉬바를 그리 겁내는 것 같지 않다. 그들은 자연의 친구들이다. 그의 남편도 교수다.

 

미나가 남편과 결혼을 앞두고 있을 때 미나에겐 말 못할 고민이 있었다고 한다.

 

미나의 옆구리엔 남모르는 혹이 있단다. 암일지도 모르는 큰 혹이어서 결혼을 하면 첫날밤에 바로 알 수 있는 것이었다. 미나는 고민 끝에 남편에게 이 사실을 고백했다.

 

그 순간 남편이 두 눈을 반짝이며 “너무나 다행”이라고 했단다. 그는 의아스럽게 쳐다보는 미나에게  “나도 결점이 많은데, 미나에게도 조금이나마 결점이 있으면 내가 더 편하고 좋을 텐데”라고 생각했는데, 그 소원이 이루어졌다는 것이었단다.

 

늙고 몸이 불편한 어머니, 결점 많은 남편, 혹 달린 아내, 소아마비 딸, 관절염에 걸린 개 쉬바. 그러나 자비의 따사로움에 장애와 결점은 용해되었다.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이 기사의 자세한 내용은 <인도오지기행>(한겨레출판 펴냄)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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