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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심정 순례기

히말라야 아이의 무지개빛 미소를 가슴에 찰칵

등록 2009-07-02 17:35

거대한 바위들의 도시 함피에서

정교한 돌조각들은 밖으로 튀어나올 듯하고   

우연히 물어본 집이 바로 수라지 집이라니!

 

 

돌라나였다. 히말라야의 소년 수라지 대신 함피에서 나를 맞은 것은 온 천지를 뒤덮은 바위뿐이었다. ‘세상에 존재할 수 없는 풍경’이라고 했다는 이탈리아의 여행가 디 콘티의 경탄을 공감하고도 남을 정도였다. 온통 거대한 바위와 돌무더기뿐인 성스런 도시 함피가 막 어스름 달빛 아래서 기지개를 펴고 있었다.

 

동산 만한 산들은 집채 만한 화강암 바위들의 패션쇼장이었다. 헤마쿤다 언덕엔 마치 그리스 신전 같은 돌기둥들이 당당히 서 있었다.

 

>  

‘한국 아저씨’ 왔다는 얘기에 맨발로 달려나와

 

높이 56미터의 거대한 돌탑을 자랑하는 비루팍샤 사원 앞쪽에서 게스트하우스들이 모여 있는 오른편 골목으로 들어갔다. 수라지를 찾기엔 너무 이른 새벽이었다. 사람들도 별로 눈에 뜨이지 않았다. 우선 묵을 게스트하우스를 봐 두었다.  아침을 먹은 뒤 수라지네 음식점을 찾아볼 생각이었다. 그런데 어떤 집 대문 앞 대리석 위에서 한뎃잠을 자는 남자에게 네팔 아이 수라지의 집을 물으니 “바로 여기”라고 하지 않은가. 세상에 이런 일이. 히말라야의 마날리에서 3박4일을 와야 하는 이곳 함피에 오면서도 정작 수라지를 만날 수 있으리라는 확신은 전혀 없었다. 오직 신이 이끄는 대로 왔을 뿐이었다. 그런데 바로 여기가 수라지의 집이라니. 정말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당장 달려가 수라지를 깨우고 싶었지만 그래도 수라지를 깨우기엔 너무 이른 새벽이었다. 그래서 짜이나 한 잔 마시며 그를 기다리려 했는데, 수라지가 맨발로 달려 나왔다. ‘한국 아저씨’가 찾아왔다는 얘기에 눈을 번쩍 뜨곤 달려 나오더라고 했다. 수라지네 음식점은 허름한 게스트하우스 안에 있었다. 그 게스트하우스는 하룻밤 방값이 80루피(2천원 가량)로 저렴했지만, 허름하기 그지없었다. 깨끗한 게스트하우스를 봐두었지만, 수라지 집 게스트하우스로 짐을 옮겼다.

 

수라지는 여전히 수줍음을 탔다. 그러나 이번엔 내 손을 다시 잡는 데 채 1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이제 수라지가 내 손을 끌고선 신비로운 함피의 돌무더기 쪽을 가리킨다.

 

돌무더기 도시인 함피엔 대리석 사원들이 지천이었다. 그 가운데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빗딸라사원은 규모도 규모려니와 화강암 조각이 너무나 정교해 신상과 동물들이 돌 밖으로 걸어 나올 것만 같다.

 

이곳에서 압권은 두드리면 악기와 같은 소리가 나는 56개의 화강암 기둥들이다.  돌에서 어떻게 그런 청아한 소리가 나는지.

 

그러나 내게 늘 돌조각보다 더 큰 신비는 살아있는 조각품 수라지의 통통 튀는 목소리였다. 

 

“파파지!, 파파지!”

 

내가 이틀간의 짧은 해후를 뒤로 하고 떠날 무렵 그가 다시 아빠를 불렀다. 한국 아저씨와 사진을 찍어달라는 것이었다. 난 수라지와 사귀는 데 일등 공신인 디지털카메라를 수라지 아빠에게 맡겼다.

 

포즈 취하는 순간 손에서 놓쳐버린 카메라

 

수라지와 내가 멋진 포즈를 취하며 활짝 웃는 순간이었다. 수라지 아빠가 카메라를 떨어뜨렸다. 돌에  떨어진 카메라는 더 이상 작동하지 않았다. 군인에게 총이 생명이듯이 기자에게 필수품이자 인도 여행의 고락을 함께 해온 인 하나뿐인 카메라가 그 순간 회복불능이 되어버렸다.

 

수라지 아빠는 어쩔 줄 몰라 하고, 수라지도 놀란 토끼 눈이 되었다. 더 이상 수라지와 추억의 사진 한 장 남길 방법도 없었다.

 

“어차피 카메라를 바꾸어야 했어요. 덕분에 더 빨리 좋은 카메라를 갖게 됐네요.”

 

수라지도 마치 무슨 말인지 알아듣기라고 한 것 마냥 금세 웃음을 되찾았다. 그리고 내게 꼭 안겼다. 그 순간 히말라야 아이의 무지갯빛 미소가 내 가슴에 사진보다 더 선명하게 찰칵 찍혔다.

 

수라지와 빠이 빠이를 하고, 황혼에 싸인 돌무더기 도시를 떠날 때 아이의 천진으로 채워진 내 가슴의 바다에선 시인 워즈워드의 ‘무지개’가 기도문이 되어 물결치고 있었다.

 

  하늘의 무지개를 바라볼 때면

  내 마음은 뛰누나.

 

  내 어릴 때 그리하였고

  내 어른이 된 지금도 그러하거니

  나 늙어진 뒤에도 그러하기를

 

  그렇지 않다면 나는 죽으리.

  어린이는 어른의 아버지.

  원컨대,

  오는 내 생의 하루하루가

  모든 천성의 경건으로 이어가기를.

 

 글·사진 조현 종교명상전문기자 cho@hani.co.kr, 동영상 장수경 기자

[이 기사의 자세한 내용은 <인도오지기행>(한겨레출판 펴냄)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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