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아름다운 히말라야 계곡
직각 산 허리 다람쥐길, 오줌이 찔끔찔끔
지프차 짐칸에 타고 열흘 넘어 덜컹덜컹
아찔했다. 벼랑 끝을 내려다보기만 해도 오줌이 찔끔찔끔 나올 정도였다. 그야말로 만화에서나 나올 법한 그런 험준한 산에, 그야말로 다람쥐길 같은 도로를 뚫어놓았는데, 그 길로 차가 달리니 차 안에 있어도 늘 벼랑 끝에 한발로 서 있는 기분이었다.
함께 가던 청전 스님에게 “이곳에 떨어지면 어떻게 될까요”라고 물으니, 걱정할 것 없단다. 뼛조각도 남지 않고 모두 산화할테니 천도재도 필요 없을 거란 얘기였다.
“여기서 떨어지면 뼛조각도 안 남고 산화할게요”
누가 계곡 밑으로 금방 떠미는 것도 아닌데, 이곳에선 늘 죽음을 준비해야 할 것만 같았다.
4년 전 네팔 히말라야의 고도인 단센을 올라갈 때와 3년 전 히말라야 다람살라를 가면서 “산도 높고, 절벽도 높고 깊다”고 아찔한 긴장을 경험했다.
그런데 정작 레콩피오와 샹글라, 자로리 패스 등 히마첼주 오지를 다녀보니, 그 때는 즐거운 비명을 질렀음을 알았다. 그곳이 에버랜드나 롯데월드 놀이기구 타는 정도라면 이곳은 우주선을 탄 기분이라고나 할까.
영문 안내 책자에선 이곳 샹글라에 대해 “히말라야에서 가장 아름다운 계곡”으로 규정했다. 아름다운 것도 정도가 있지, 너무 아찔해서 기가 찰 정도다.
아득한 아래쪽에선 바스파강의 급류가 흐르고 있다. 그곳까지 천길인지 만길인지 알 수도 없었다. 산의 경사는 거의 직각이었다. 그 직각에 어떻게 길을 놓을 수 있느냐고? 벽과 같은 바위산의 허리둘레에 긴 홈을 판 것이 길이었다.
죽음을 이고 사는 사람들이라서 그런지, 아예 살기 싫다는 것인지 차 두 대가 비켜 지나가기에도 좁은 길엔 가이드레일 하나가 없었다. 그나마 바위산은 다행스러웠다. 대부분의 산이 부스러기 같은 사토였다. 가끔씩 도로 한 쪽이 많이 허물어져 있었다. 무너진 도로 옆을 지나자면 오금이 저린다.
특별 접대 위해 데려온 스님 “누굴 죽이려고…”
청전 스님이 몇 년 전 한국에서 스님이 와 이곳으로 데려왔단다. 그는 가장 특별한 손님이 오면 이 곳을 구경시켜준다고 했다. 그런데 그 스님이 이 계곡을 지나면서 “누구 죽이려고 이리 데려왔느냐”며 화를 내더란다.
관념은 더 이상 무용지물이다. 이 백척간두에서 어떻게 불안과 두려움이 아니라 생사 위의 현존을 즐길 것인가.
지프차 운전기사 시띠는 스물여덟살인데, 결혼할 처녀가 있다고 했다. 운전엔 이골이 난 그도 무서워 죽겠으면서도 이런 길의 드라이브를 포기하지 않는 우리들이 못내 미운 표정이었다. 장가도 못가고 죽으면 몹시 억울할 테니까.
얼마를 달렸을까. 머리 위엔 바위들이 지붕처럼 떠 있었다. 또 가끔 절벽쪽도 바위로 막혀 마치 동굴 같은 길도 나온다. 아슬아슬한 절벽 위에 힌두 신전이 만들어져 있었다. 사람은 없는 것 같지만, 참 정성도 지극하다는 생각이 아니들 수 없다.
한 곳에선 우리 차를 뒤따라오던 트럭이 짐을 많이 실어선지 바위에 끼어 옴싹달싹 못하게 되고 말았다. 그 차가 저 사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지 참으로 답답해 보이기만 했다.
이런 길을 하루 이틀도 아니고 열흘을 다녔으니 이골이 날만도 하건만 보면 볼수록 아찔했다. 그래서 가급적 절벽쪽 의자엔 누구도 앉고 싶어 하지 않았다. 지프차가 떨어지면 절벽 쪽이고, 아닌 쪽이고 산화하긴 마찬가지일 텐데도 말이다.
그러니 지프차 뒤 짐칸에 타고 가는 내 심정은 어떻겠는가. 내가 자원한 것이지만. 이번 여행 명단에 나는 애초에 들어 있지도 않았다. 청전 스님은 인도의 전설적인 고승인 샨티 데바의 저작인 <입보리행론>을 번역했다. 번역 작업을 도운 두 유학생과 마침 다람살라에 와 있던 두 라닥 노승들을 위해 히마첼주 오지 여행을 하기로 한 것이다.
하루 종일 걸려 겨우 출입허가 받았는데 환호는 잠시…
운전기사까지 여섯명이 직접 해먹을 음식과 취사도구, 침낭, 옷 등을 챙겨 가려니 지프차 하나가 부족할 형편이었다. 그런데도 난 짐짝칸에 타기를 자처하고 여행에 동승한 것이다. 차편만 있다면 혼자라도 가겠지만 이 곳은 외부인들이 여행하기엔 너무나 어려운 곳이었다. 한 번 안 된다면 하늘이 두 쪽 나도 안 된다고 할 만큼 맺고 끊는 것이 분명한 스님에게 매달려 동승했으니 내 열정도 어지간했던 모양이다.
특히 레콩피오지역은 티베트와 접경 지역이어서 비자 외에 또 출입 허가를 받아야 들어갈 수 있는 곳이다. 우린 스피티의 주도 가자에서 평상 근무가 태업이나 마찬가지인 인도 지방정부 관리들을 상대로 출입국관리소와 경찰서를 하루 종일 왔다 갔다 하면서 드디어 출입증을 따냈다. 청전스님은 이번엔 아주 운 좋게도 순탄하게 따냈다고 하니, 평상시 그 여정이 얼마나 까다로운지 짐작할 수 있었다.
출입 허가를 따냈다고 환호성을 터뜨렸는데, 더 큰 장벽이 기다리고 있었다. 스피티주의 따보 쪽에서 티베트 접경인 레콩피오 쪽으로 가는 길이 산사태로 끊겨버렸다는 것이다. 이 지역을 다녀보니, 푸석푸석한 돌과 모래산들이 무너져 내리지 않는 게 신기하다고 여겼는데, 기어코 우리 앞길에 이런 일이 생긴 것이다. 이토록 어렵게 온 인도와 티베트, 중국 접경 지역 히말라야 오지 여행을 중단한 채 돌아가야 할 것인가. 기가 막혔다.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이 기사의 자세한 내용은 <인도오지기행>(한겨레출판 펴냄)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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