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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심정 순례기

하늘 등불 밑 천년 묵은 봉황

등록 2008-02-05 14:44

                                            경북 안동 천등산 봉정사   [하늘이 감춘 땅] 천등산 봉정사   해병대 출신 스님 1억짜리 소나무 다 베낸 까닭은?

우리나라 최고 목조건물 “하나의 거대한 나무조각”   등잔 밑은 어둡게 마련이다. 등불이 비추는 저 높은 산은 잘 보이지만 바로 턱밑은 어둡다. 그러나 소중한 것은 늘 가까이 있다. 경북 안동에 있는 ‘하늘의 등불’(천등)도 너무 가까이 있어 보이지 않을 수 있다. 서후면 태장리 천등산 자락으로 들어서니 솔향이 그윽하다.  이 산에서 봉황이 앉을 만한 자리에 봉정사가 있다.

    어느날 밤 홀연히 아리따운 한 여인이 앞에 나타나…   천등산은 원래 대망(大望)산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이 산정은 거무스름한 바위가 있는데, 그 바위 밑에 천등굴이 있다. 신라 의상대사의 제자인 능인 대사가 소년 시절 이 천등굴에서 계절이 지나는 것도 잊고 하루에 한끼 생식을 하며 도를 닦고 있었다. 살을 에는 듯한 추위가 휘몰아치는 겨울에도 찌는 듯한 더위의 여름에도 나무아미타불을 염(念)하며, 마음과 몸을 나른하게 풀어지게 하고 괴괴한 산속의 무서움과 고독 같은 것도 아랑곳 없이. 이렇게 정진한 지 10년째 어느날 밤 홀연히 아리따운 한 여인이 앞에 나타나 능인에게 사모의 정을 고백했다. 그러나 능인은 유혹을 물리치고 수행을 흐트러뜨리지 않았다. 그러자 여인은 “천상에서 옥황상제의 명으로 시험하러 왔다”면서 “수도하는 굴이 너무 어두워 하늘의 등불을 보내니 그 불빛으로 더욱 깊은 도를 닦으라”며 기원했다. 능인 대사는 그 천등굴에서 도를 닦았고 마침내 어둡던 내면에도 밝은 하늘이 열렸다. 그가 종이를 접어 날리니 종이는 봉황이 되어 앉았는데, 그 자리에 세운 것이 봉정사라는 전설이 전해 내려온다.   
                                     경북 안동 천등산 봉정사

  영화 <동승>과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 촬영장소   봉정사는 세간엔 거의 알려지지 않은 사찰이지만 우리나라 최고 목조건물이고, 작은 다리로 연결돼 있는 영선암은 영화 <동승>과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의 촬영장소로서 한국적 건축의 백미를 세계에 알린 곳이다. 1999년 한국을 찾은 영국 엘리자베스 여왕도 봉정사와 영선암을 보고는 “절이 거대한 나무 조각 같다”며 감탄한 곳이다.   요란한 단청 색칠이나 보수의 흔적이 별로 보이지 않는 고건축은 시간을 천년 전으로 되돌려 놓는다. 사람이야 오고 가며, 미망과 깨달음을 반복하지만 천등산이야 1천 년 전이나 지금이나 무엇이 달라졌을까.  1만 년 전 하늘이 오늘의 하늘이듯이. 영화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에서 괴로움의 원인을 묻는 동승의 질문에 한 스님이 “사바 세계의 모든 것을 담을 만한 마음 그릇이 없기 때문이며, 실은 그릇이 있어도 아상이 가득 차 있기 때문”이라고 했던가.  
                                               봉정사 중암   해발 1천미터 이상에 올라도 보기 어려운 놀라운 전망 펼쳐져   봉정사 뒤쪽 오솔길을 10여분 정도 오르니 솔향 그득한 곳에 토굴 같은 여덟평짜리 암자가 오롯이 좌정하고 있다. 중암이다. 생식 수행을 마치고 봉정사 주지를 맡은 은사 스님을 총무부장으로 보좌하던 성묵 스님이 옛 토굴 터에 지난 2000년 다시 지은 암자다. 그러나 정작 성묵 스님은 이 암자에서 살아보지도 못하고 도반인 지묵 스님이 지난해 초부터 이 암자에서 정진하고 있다.   애초 중암의 자랑은 암자를 둘러싸고 있는 멋진 소나무들이었다. 소나무들이 너무도 멋져서 사람들은 한 그루에 1억원짜리 소나무라고 했다. 그런데 성묵 스님이 몇 달만에 암자에 와보니 멋들어진 소나무 가지들이 모두 잘려나가 있지 않은가. 가지를 모두 쳐버려 멋없이 1자로 뻗은 소나무만이 서 있었다. 그런데 암자에 앉는 순간 세상이 훤히 보였다. 그 많은 소나무 가지에 가려졌던 시야가 완전히 탁 트인 것이다. 해발 1천미터 이상에 올라도 보기 어려운 놀라운 전망이 펼쳐져 있다.   
 지묵 스님이 소나무 가지를 베어내자  드러난 하늘을 바라보고 있다.   하늘과 천하가 함께 열려 드디어 대망산이 되다   암자에 오르니 그 소나무를 다 베어내고도 태연하기만 한 지묵 스님이 작달막한 키에 사람 좋은 웃음을 온 얼굴에 가득 담고 있다. 홀로 이 암자에 살면서 어떤 여성보다 더 맛깔나게 요리도 하고 살림을 해가는 스님이지만 그가 애초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왕년엔 누구도 감당할 수 없는 괴팍한 이였다. 해병대 시절 신참 때 죽도록 얻어맞기를 밥 먹듯했던 그는 상병 때 병으로 의가사 제대를 명받았지만 이를 거부하고 남아서 자신이 맞은 대로 신참들을 두들겨 패주었을만큼 대책 없는 사람이었다. 군 제대 뒤 출가해서도 덩치 큰 스님들이 그를 괴롭히자 두 스님을 동시에 산속으로 데리고 가 목숨을 걸고 패서 곤죽이 되게 하기도 했다. 그러던 그가 어느날부터 선방과 토굴에서 남몰래 숨어 정진했고, 그는 어느 순간부터 예전의 그가 아니었다.  성묵 스님은 한 생각을 푹 쉬어버린 그를 “오래 묵은 산더덕 같다”고 했다. 그래서 자신이 봉정사에 있으면서 가장 자랑으로 여겼던 이 소나무 가지들을 베어냈을 때 다른 스님들이 그랬다면 멱살잡이라도 했을 터이지만, 지묵 스님이기에 그저 배시시 함께 웃는다. 그 웃음 아래로 천하의 산들이 바닷물결처럼 천등산을 향해 밀려온다. 구름 걷히면 하늘인가. 소나무 가지 친 자리에 드러난 희유한 풍경이다. 이곳에서 가장 귀하다는 소나무 가지를 버리니 하늘과 천하가 함께 열리지 않는가. 드디어 대망산(크게 바라보는 산)이다.   안동 천등산/글 사진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지묵 스님(왼쪽)과 성묵 스님.

 [이 기사의 자세한 내용은 <하늘이 감춘 땅>(한겨레출판 펴냄)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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