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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심정 순례기

[사성암] 깎아지른 절벽 위 ‘지혜’의 곳집

등록 2008-01-08 18:17

▲ 전남 구례 사성암   원효·의상·도선·혜심 수도 ‘성지 중의 성지’

툭 터진 “할!”…기암괴석 ‘오산 12대’ 옹위

 우리나라엔 많은 금강산이 있습니다. 북쪽에만 금강산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금수강산입니다. 외국의 많은 명승지를 가보기 전엔 우리나라가 금수강산이라는 말을 믿지 않았습니다. 우리나라가 이렇다면 넓고넓은 나라들에는 얼마나 아름다운 풍광이 많을 것인가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30여개국의 명승지를 돌아본 지금은 이제 우리나라가 금수강산이라는 것을 의심할 바 없이 믿습니다. 특히 저는 작지만 화강암으로 이루어져 힘이 있는 우리나라의 산들을 좋아합니다. 우리나라엔 국립공원이 아님에도 빼어난 산들이 많습니다. 해남의 달마산이나 장흥의 천관산, 홍성의 용봉산에 가본 분들은 그 산들도 금강산 못지 않게 빼어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20미터 기둥들에 떠받쳐 허공에 솟아 오른 듯    구례의 오산 또한 그랬습니다. 구례읍 산동면 지리산 자락 해발 530미터의 오산에 있는 사성암은 통바위 수직 절벽 위에 20여미터의 기둥을 세워 지어졌습니다. 아찔하게 서 있는 누각들을 보노라면 경이롭기 그지 없습니다. 입구쪽에 있는 약사전 누각은 한두뼘 정도만 바위 위에 있고 건물의 대부분이 기둥에 받쳐 허공에 떠 있습니다. 기둥에 새겨진 약사여래불 주위로 건물을 지어서 실내에서 예불을 할 수 있도록 한 것입니다. 그 약사여래불은 바위에 새겨진 암각인데, 원효대사가 선정에 든 상태에서 손톱으로 그렸다는 전설이 전해내려 옵니다. 중생들의 병을 치료해줄 호리병을 든 약사여래불을 참배하고 약사전을 내려와 다시 고바위 위에 있는 사성암을 오릅니다. 좁다란 바위길을 올라보면 그야말로 통바위 위 여기저기에 암자가 지어져 있습니다. 깎아지른 절벽 위에 지어진 암자도 기묘하지만, 암자에서 내려다본 전경은 그야말로 세속의 티끌마저 날려버립니다.  >   구례의 크고 아름다운 세 가지 ‘3대3미’ 한눈에    이중환은 <택리지>에서 구례를 삼대삼미(三大三美)의 땅으로 소개합니다. 세가지 크고 아름다운 것은 섬진강과 지리산과 너른 들판입니다. 그런데 이곳 사성암이야멀로 그 삼대삼미를 제대로 조망할 수 있는 곳입니다. 넓디 넓은 들판 너머로 섬진강이 태극 모양으로 흐르고 있고, 지리산의 광대한 자락들이 오히려 사성암을 향해 고개를 숙이고 있는 듯 합니다.

 사성암 주위의 기암괴석들은 워낙 수려해 옛날부터 ‘오산 12대’로 불렸습니다. 사람이 쉬어 갈 수 있도록 평평한 쉬열대, 거센바람이 불어대는 풍월대, 화엄사를 향해 절하는 배석대, 향을 피우는 향로대, 진각국사 혜심이 참선한 좌선대와 우선대, 석양을 감상하는 낙조대, 병풍을 펼쳐놓은 듯한 병풍대, 선녀가 비단을 짰다는 신선대, 하늘을 향해 있는 앙천대, 사성암을 지은 연기조사가 마애불로 화했다는 관음대입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은 오산에 대해 ‘산 마루에 바위 하나가 있고 바위에 빈 틈이 있어 그 깊이를 헤아릴 수 없다’고 돼 있습니다. 과연 바위를 돌아가니 기다란 암굴이 있습니다. 도선굴입니다. 도선국사가 이 굴에서 수행해 천하의 지리를 간파했다고 합니다. 도선국사가 어떤 이인으로부터 산천순역의 이치를 가르침 받았다는 사도리와 천하명당이라는 금환락지(金環落地)인 오미리가 이 인근에 있습니다.  이곳 사성암에서 원효와 의상, 도선, 진각국사 혜심 등 4명의 성인이 수도했다하여 원래 오산암이었던 암자가 사성암으로 불리게 되었습니다.

 사찰들을 돌아다니다보면 고찰들은 상당수가 원효 아니면 의상, 또는 도선이 창건한 사찰들입니다. 원효와 의상, 도선은 통일신라시대의 고승들이고, 진각국사 혜심은 고려시대 보조 지눌의 법을 이은 분으로 선가에서 자부심으로 삼고 있는 <선문염송>의 저자이기도 합니다.

 한국 불교를 일으켜 세운 네 분이 동시에 인연을 맺은 그야말로 성지 중의 성지인 셈이지요.   달라이 라마나 틱낫한 처소도 천하 내려다보거나 일망무제로 훤해    한국의 사찰들은 대부분 산 위에 있기 보다는 골짜기 안에 들어가 외부를 조망하지 못하도록 지어진 경우가 많습니다. 그것은 벽을 보고 참선하는 스님들의 수행과도 관련이 있습니다. 시야를 외부에 두기보다는 자신의 마음을 보기 위한 것입니다.

 이처럼 사성암처럼 툭 터진 경우는 드문 경우입니다. 그런데 ‘인걸은 곧 지령’으로 지형과 그곳에 거하는 사람과의 관계는 뗄레야 뗄 수 없는 것 같습니다. 세계적인 명성을 얻고 있는 티베트의 정신 지도자 달라이 라마나 베트남 출신의 선승 틱낫한의 처소들도 가보니 이처럼 모두 툭 터져 있었습니다. 달라이 라마의 처소는 인도 히말라야의 산간도시 멕레오드 간지에 있습니다. 산의 봉우리에 지어진 달라이 라마궁에서 보면 천하가 다 내려다보입니다. 또 50년대 말 달라이라마가 티베트에서 그곳으로 망명한 뒤 인도에서 그 지역에 우리나라 몇개 군에 해당하는 크기의 호수까지 파서, 풍수가들은 용이 놀 수 있는 물까지 갖춘 명당이 되었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틱낫한 스님이 있는 프랑스의 플럼빌리지는 포도 산지인 농촌지역의 야산이었습니다. 야산의 숲속에 있는 그의 처소에서 보니 야산인데도 불구하고 앞에 일망무제로 트여 있고 훤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세상에 툭 터진 지혜로 세상 사람들을 이끄는지 모르겠습니다.   ‘깨인 네 중생’이 ‘미혹한 한 부처’에게 “너는 부처냐, 중생이냐”    이곳 사성암의 전망이야말로 천하의 최고라 할만한 것입니다. 이곳에서 수행한 네 고승은 이 땅의 부처로 우뚝 선 분들입니다.

 그러나 그 분들 또한 천하를 굴복시킨 것이 아닙니다. 오직 이곳 암굴에 앉아 내면을 관조하면서 자신을 이겨내고, 번뇌를 여읜 것입니다.

 간화선을 만든 대혜 종고 선사는 범부와 성인의 차이를 이렇게 말합니다.

 “다만 범부의 생각이 없어졌을 뿐, 특별히 성인이라고 할 것이 없다.”(但盡凡情 別無聖解)

 지금은 우리가 부처님처럼 빛이 나는 성자의 모습으로 그리는 네분의 스님들도 그처럼 멋진 몸을 만들거나 부처를 구한 것이 아니었다고 합니다.

 대혜 종고 선사는 다시 성인과 ‘어리석은 사람’의 차이를 말해줍니다.

 

 성인구심불구불(聖人求心不求佛·성인은 마음을 찾지 부처를 구하지 않는다)

 우인구불불구심(愚人求佛不求心·어리석은 사람은 부처만 구할 뿐 마음을 찾지않는다)

 지인조심불조신(智人調心不調身·지혜로운 사람은 마음을 다스리지 몸을 다스리려하지않는다)

 우인조신불조심(愚人調身不調心·어리석은 사람은 몸만 다르릴 뿐 마음을 다스리려하지않는다)  기막힌 아래의 산천을 두고 암굴에 머무니, ‘깨인 네 중생들’이 ‘미혹한 한 부처’를 향해 물었습니다.

  “너는 부처냐, 중생이냐?”   조현 한겨레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이 기사의 자세한 내용은 <하늘이 감춘 땅>(한겨레출판 펴냄)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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