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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심정 벗님글방

‘아래’를 보지 못해 잘린 민주주의 소나무

등록 2008-08-08 15:18

[벗님 글방/박기호 신부]   아뿔싸! 풀 벤다는게 그만 애꿎은 묘목만 잘라

위에선 아래, 아래선 위를 제대로 살펴야 조화   모처럼 비 개이고 해가 뜨니 보이는 모든 것이 더욱 해맑다. 앞산 능선도 숲도 하늘도 모두 본래의 제 색깔을 드러내 준다. 세상사 흐리고 천둥 번개 치는 듯 고통스러운 사연들도 정작 부딪히면 순간이다. 지나고 나면 오히려 사건도 물건도 해맑게 드러나는 것이니 고난 앞에 굳이 번뇌하고 두려워할 필요 없을 것 같다.   이번 장마에 이곳은 다른 곳처럼 비가 많이 오지도 않았고 하루 밤 폭우가 있었으나 우리는 별로 못 느낀 채 지났다. 그래도 여태까지의 가뭄이 완전히 해갈되었고 뒷산 옹달샘에 연결된 수도관에서는 깨끗하고 맛있는 물을 펑펑 쏟아내 주니 요즘 같으면 정말 고맙기 그지없다.    그런데 장마가 끝난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요즘은 일기예보가 잘 안 맞는 것 같다. 그래도 날씨가 화창해졌으니 밀린 일들을 해야 하는데 장마동안 무성해진 밭둑과 언덕의 풀을 정리해야 한다.   아깝다 제일 큰 놈인데…    공동체 가족 한 형제가 예초기(작은 엔진을 짊어지고 풀을 베는 기계)로 작업을 시작하였는데 웬걸 지난 초봄에 애써 심고 물을 주고 해서 살려둔 소나무 묘목을 풀과 함께 여러 그루를 베어버린 것이다. 위에서 내려다보면서 풀을 베니 풀 속에 갇혀있는 키 작은 소나무 묘목이 안보였던 것이다. 괜찮다고 했지만 속으로는 아프고 아쉽다.   어제 오후에는 내가 소나무 묘목이 심어진 곳의 풀도 치고 소나무도 살리고 쇠꼴도 마련하려고 낫을 들고 나섰다. 햇빛은 따갑고 바람은 무심한 시간, 따박따박 풀을 친다. 학교에서 돌아오자마자 꼴망태를 메고 소 뜯기며 꼴을 베어 오던 초등학교 시절도 떠올랐다.   “나처럼 신중하게 일하면 예초기라도 소나무 정도는 다치지 않게 할 수 있을텐데, 사람이 원...!” 속으로 한심스럽다고 푸념도 하면서 풀을 뜯어 모으니 불어나는 쇠꼴에 흐뭇하고, 풀 속에 갇혀서 보이지 않다가 말짱한 모습을 드러내는 소나무 묘목도 보기 좋고 기분도 좋고 그런 오후였다.    잡초 덤불은 대단했다. 풀을 한 주먹씩 가득 쥐어 낫으로 당기는데 “웬 풀이 이렇게 억세냐!” 하면서 힘껏 쳤다. 순간 앗뿔사! 그게 소나무를 쳐버렸던 것이다. 그것도 쭈그리고 앉아 낫질하는 내 머리키보다 더 큰 나무였는데 바닥 풀만 보는 바람에 가늘고 길게 자란 소나무를 보지 못한 것이다. 아깝다. 제일 큰놈인데...   조화롭지 못하면 생명의 평화는 깨지는 법   풀밭에 앉아 일하면서 풀 속에 묻혀 있는 나무만 찾았는데, 잡념망상에 젖어 머리보다 더 위에 솟아있는 소나무는 보지 못하다니... 어휴, 예초기에 잘리고 낫에 잘리고, 나무 키가 커서 잘리고 작아서 잘리고, 위에서 잘리고 아래서 잘리고... 그렇다고 어떻게 할 수는 더욱 없고...   사람이 같은 몸이라도 발은 땅에 붙여 살고 머리는 하늘에 달려 사는 존재거늘 아래서는 위를 보지 않고 위에서는 아래를 못 보아서야 어디 천지에 걸쳐 사는 인간이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하늘과 땅이 서로 걸쳐있지 않으면 조화가 없을 것이다. 조화롭지 못하면 생명의 평화가 깨지는 것이다.    상류층은 서민의 삶을 모르듯이 저 위에 사는 이들은 아래 사는 실정을 알 수가 없다. 정몽준 의원은 버스 값을 70원으로 알고 있지 않던가? 그러니 도시 빈민과 농어촌 서민들의 살림인 연탄 값을 안다는 것은 글쎄 질문의 대상이 아닐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비록 청와대 뒷산에 올라 아침이슬을 따라 부르며 감회에 젖었다고 했지만, 너무 위에 있어서 저 아래 사람들이 밝혀 든 촛불의 진심과 순정을 알지 못한다. 그래서 무자비한 예초기를 휘둘러 민주주의라는 소나무 묘목을 마구 절단 내고 있는 것이다.   민심의 물줄기는 새 세상 여는 ‘노아의 홍수’   아래서 위를 보지 못할 수도 있는데 너무 비약된 생각 아니냐고 말할 수 있겠지만 그렇지 않다. 아래 켜진 촛불은 바로 저 위에서 하는 일을 정확하게 보고 있어서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 알고 있다. 그러니까 잘할 수 있는 방법론 까지 제안하고 있지 않은가?  실제 대통령 당선 직후부터 지금까지 정책의 시도를 보면 내 말이 비약이 아닌 현실임을 알 것이다.   대운하, 광우병, 굴욕적인 푸들 외교, 대북 강경론, 오륀지 미친 교육, 공기업 민영화, 의료보험의 불안, 방송 장악, 종부세 감면 등 한국 사회 일부 상류층을 위한 것 외에는 정말 단 하나도 서민을 위한 정책은 찾아볼 수가 없지 않은가?    이명박 대통령에게는 미국 공화당의 벤치마킹만 있을 뿐 정치가 없는 것이다. 정치가 없으니 코스피 5,000을 약속하는 경제 살리기인들 잘 되겠는가? 당연 어렵지.   비온 뒤엔 숲도 하늘의 별도 더욱 해맑다. 혼돈의 시대가 맑아지려면 폭우가 잡것을 쓸어가야 한다. 명박산성 살수차에서 쏟아내던 폭우는 아스팔트의 촛불을 끄려하지만 민심의 수맥에서 솟아나는 물줄기는 저 잡다한 혼돈을 씻어내고 새로운 세상을 열게 하는 노아의 홍수가 될 것이다.    내년 봄에 다시 소나무를 심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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