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기호 신부의 산위의 마을 편지] 1신
‘내일’이라는 미래에 가서 ‘오늘’이라는 과거 봐
그게 역사의식…을사오적,박정희, 재벌은 없는 눈
더부네님들 반갑습니다. 저는 천주교 서울대교구 소속의 박기호 신부 입니다. ‘예수살이공동체 산위의 마을’ 에 살고 있습니다. 산위의 마을은 충북 단양군 가곡면 보발리 라는 소백산 자락에 있습니다. 가톨릭 신앙인 공동체 마을 이지요.
남녀노소 열아홉 식구 가진 것 다 내놓고 정직한 공동생활
정말 예수님의 가르침대로 따르는 제자의 삶을 살아보려는 생각있는 젊은 가정이 모여 가진 것을 내어놓고 공동생활과 자녀교육, 정직한 농업 노동으로 먹거리를 얻으면서 살아갑니다. 가족은 다섯 살 난 강산이 녀석부터 72세 미카엘라 할머니까지 남녀노소 열아홉 명입니다. 농사일 좀 도와주러 오시면 고맙겠습니다.
종교 영성 전문가인 조현 님께서 이런 나눔의 장을 마련하고 저 같은 촌사람까지 초대해 주시고 여러 더부네들과 인연지어 주심에 감사합니다. 그런데 사실은 제가 이곳을 아직 방문해 보지 못했습니다. 좋은 나눔의 장이 어떻게 생겼는지를 아직 몰라서 아주 궁금합니다. 제 글이 쪽창 성격에 맞는 건지도 모르겠고요.
우리 마을은 산골짜기라서 인터넷이 되지 않습니다. 얼마 전 신문에 “충청북도 오지마을 인터넷 보급 완료!”라는 기사를 보았는데, 아마 행정하는 사람들이 우스개 소리 한방 쏜 것일 겝니다. 어쩌든 귀농 4년이 지났는데도 인터넷 접촉이 안 되고 있습니다.
‘구문’ 읽는 재미 쏠쏠…뉴스, 꼭 득달같이 알아야만 하는 것도 아니고
세상 소식은 우편으로 배달되는 한겨레신문과 농민신문을 받아보는데 주로 이틀사흘치가 묶여서 옵니다. 당일치가 올 때도 종종 있곤 하지요. 신문이 아니라 완전한 ‘구문’입니다. 2-3일치 신문이 올 때면 우선 당일 신문을 먼저 읽게 되는데 다음에 전날 신문을 읽으면 묘한 재미도 있습니다.
대통령 선거 관련이나 BBK 수사, 삼성그릅 비자금 수사 등 긴박하게 보도되고 진행되어지는 사건을 이틀 사흘 건너 결과부터 읽게 되니까요. 뉴스라는 게 꼭 시시각각 득달같이 듣고 알아야만 하는 것도 아니고 오히려 뻔한 과정의 소식은 다소 생략되어도 좋은 것 같습니다.
‘내일’이라는 미래에 먼저 가서 미래의 눈으로 ‘오늘’이라는 과거를 보게 되니 짧은 타임머신을 타는 기분이지요. 그래서인지 인간의 진실성에 대한 의심과 회의, 정치인, 기업인에 대한 존재론적 불신 같은 것이 생기는 것입니다. 미래의 눈은 과거에 진실처럼 했던 말도 거짓말임을 알게 하니까요.
미래의 눈은 과거에 진실처럼 했던 말도 거짓말임을 알게 해
미래의 눈으로 오늘을 보는 것을 ‘역사의식’이라고 할 겁니다. 역사의식은 오늘 나의 삶에 대한 진리와 오류를 심판하는 위대한 판관입니다. 그래서 ‘오늘 내가 한 일이 내일 어떤 진실로 드러나고 어떻게 평가 될까?’를 생각하면 거짓말을 할 수 없게 되고 자기 신념에 대한 검증과 성찰과 올바른 선택을 가능하게 합니다.
을사오적이 있습니다. 그들도 당시에는 나름대로 나라를 위한 현실적 판단이라 여겼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결국 매국이 되었습니다. 박정희 대통령도 유신통치가 나라를 위한 그의 진실된 신념일 수도 있습니다. 유신을 지지했던 수많은 교수 지식인들도 그러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정치적 반대자에 대한 무자비한 억압이었고 독재였고 민주주의에 대한 배반이라는 것이 역사의 판관이 내린 심판입니다.
맨손으로 기업을 일으키려고 국제시장을 누비고 개척하며 신화를 일으켰던 기업인들도 당시에는 정경 유착이 성장을 위한 유일한 길이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개발독재와 결탁된 성장제일주의였고 철학 없는 성공주의라고 반성되고 있습니다.
대선 공보물 보면 너도나도 경제 구세주 자처, 가히 메시아시대
을사오적이나 박정희나 재벌 기업인들이 역사적으로 비난받고 사회적으로 존경받지 못하는 이유는 그들에게 현실이라는 오늘의 눈은 있었으되 역사의식이라는 ‘미래의 눈’이 없었던데 이유가 있습니다. 역사의식으로 오늘 나의 생각과 말과 행동에 대해 식별하고 판단하면 오류 없는 신념이 될 수 있습니다.
역사의식은 종교적 언어로 ‘영성’이라고 합니다. 사물의 내면을 보는 눈을 영성이라고 하지요. 그러니까 역사의식은 영성의 사물 기반이기도 합니다.
오늘 우편물에는 대통령 선거 공보물들이 있었습니다. 꼼꼼히 읽어 보았습니다. 공통점이 두 가지 있었습니다. 하나는 자신이 우리나라의 메시아를 자처한다는 점이고 또 하나는 어쩌면 그렇게도 한결같이 경제적인 구세주가 되겠다고 합니다. 가히 메시아 시대를 맞은 듯 합니다. 국가 최고 봉사자는 역사의식이 있어야 할텐데요.
자신이 살아오며 저질렀던 죄에 대하여 고해성사도 거부하면서 자신이 유일한 선택이라는 후보도 있습니다. 우리가 돈이 없어 불행한가요? 발전을 못하고 성공을 못해서 불행한가요? 정의와 사랑이 없음이 불행이요 윤리와 도덕이 없어 천박한 사회가 되었고 진정한 나눔이 없어 이기와 탐욕이 이글거리는 시대를 맞지 않았을까요?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내가 그리스도다! 그리스도가 여기 있다! 저기 있다! 하더라도 속지 말라. 하느님의 나라는 바로 너희 마음에 있고 네 곁에 있다”고 가르치셨습니다.
진정한 회개와 용서, 사랑과 화평을 일구는 실천으로 성탄절 준비
▲ 박기호 신부 소백산 자락의 산위의 마을에는 흰눈이 내립니다. 머지않아 성탄절도 다가옵니다.
우리 산위의 마을에도 아기 예수 탄생의 우렁찬 울음소리가 축복의 전언이 되기를 고대하면서 우리 가족들은 오늘까지 사흘 동안 콩을 삶아 메주를 쑤었습니다. 아주 힘들었습니다. 내일부터는 성탄을 준비 할 생각입니다. 우리들의 부족한 생활들, 공동생활의 진정한 회개와 용서, 사랑과 화평을 일구는 실천으로 준비하려 합니다. 성탄의 축복이 더부네 여러분에게 가득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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