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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부처님은 주지를 하셨을까?

등록 2010-08-19 18:15

부처님이 주지가 되신 이유

 

최초의 주지 스님은 누구였을까? 그러면 그 스님은 어느 사찰에서 소임을 맡았을까? 최초의 사찰은 인도의 기원정사이다. 따라서 말할 것도 없이 최초의 주지 스님은 부처님이 된다.

 

부처님과 주지 소임. 뭔가 이미지가 맞아떨어지지 않는다. 그래도 이는 분명한 역사적 사실이다. 부처님이 주지가 되신 건 순전히 날씨 때문이다. 그것도 우기(雨期) 3개월 때문이다.

 

초기의 수행자는 ‘집 없는 사람’이다. 나무 아래에서 머무는 것을 원칙으로 하였으며 지붕이 있는 곳에서는 잠을 자지 않았다. 그것도 집착이 생긴다고 같은 나무 아래에서 사흘 이상 머물지 못하게 할 정도였다. 날씨가 좋을 때는 아무런 불편함이 없었다. 문제는 비가 올 때였다. 그것도 석 달씩이나.

 

그럼에도 사문(집 없는 사람)답게 비가 오거나 말거나 용감하게 그냥 돌아다녔다. 그러자 ‘부처님 제자들은 자비심이 없어 초목, 개구리, 지렁이 등을 상하게 하고 밟아 죽인다’는 비난 여론이 들끓게 된다. 그러다 보니 어쩔 수 없이 한 자리에서 머물러야만 했다.

 

많은 대중이 모여들다가 보니 넓은 공간과 시설이 필요할 수밖에 없었다. 신심과 경제적 능력을 갖춘 재가의 신도들이 가만히 보고 있을 리가 없다. 출가대중이 수행하는데 불편함이 없도록 집을 지어 드리겠다는 제의가 들어온다. 생각지도 않던 뜻밖의 일이 벌어진 것이다. 워낙 민감한 사안이라 모든 대중이 참여하는 회의가 열렸다. 찬성과 반대 의견이 팽팽하게 맞섰다. 반대 이유는 수행자는 지붕이 있는 곳에서는 살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결국 이 문제는 대중이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부처님에게로 떠넘겨졌다.

“이걸 어떻게 해야 하나. 주지를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되네.”

심사숙고 끝에 사찰 창건을 허락하기로 결심하였다. 대중을 모아놓고 결과를 알렸다. 그리고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하셨다.

 

“모든 감각 기관[眼耳鼻舌身意]을 제어할 수 있는 자에게는 삼림이건 지붕이 있는 집이건 다를 바가 없다. 세계의 어느 곳이든 선정을 위한 장소인 것이다.”

 

결과적으로 ‘떠돌이’에서 승원(僧院)의 거주 생활로 바뀐 사실이 교단을 후세까지 존속시킬 수 있는 가장 큰 힘이 되었다. 당시에 끝까지 ‘지붕을 거부하고’ 유행(遊行)을 고집한 근본주의 입장을 견지하던 수행단체들은 오늘날 모두 사라져 버렸다는 것이 이를 반증한다. 부처님이 주지가 되신 건 당신의 가르침을 이 세상에 오래도록 머물게 하기 위한[正法久住] 종합적 판단이었던 것이다.

 

‘집도 절도 없는 신세’를 면하게 해준 까닭에 후학들 입장에선 그러한 결정을 내리도록 만들어준 비[雨]님이 새삼 고맙다. 이것을 모티브로 이번에 문고판으로 정리하게 되었다. 따지고 보면 《왜 부처님은 왜 주지를 하셨을까?》라는 책이 나온 것도 순전히 비 때문인 셈이다.

 

경전이나 선어록을 열람하다가 보면 의외로 주지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그럴 때 마다 자료를 모아두는 것이 습관 아닌 습관이 되었다. 그 결과의 일부가 이번에 ‘주지학 개론’이라는 부제를 달게 된 것이다. 

 

현실의 사찰은 어차피 주지를 중심으로 돌아갈 수 밖에 없다. 심지어 거지조차도 동냥 얻으려 와 주지만 찾는다는 우스갯 소리가 있을 정도다. 그래서 교과서적인 주지 모습이 어떤가를 살펴야 하는 당위성이 도출된다. 왜냐하면 이른 바  ‘주지시대’인 까닭이다. 원론은 변치않는 지남(指南)을 제공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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