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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심정 벗님글방

절집을 물고 물고기 떠있네

등록 2010-07-19 09:42

 절집에 와서 그래도 좀 제대로 한 것이라고는 ‘경전보기’와 ‘글쓰기’밖에 없는 것 같다. 별다른 취미도 없고 능한 잡기(雜技)도 없어 ‘승려 노릇하기는 딱이다’는 도반들의 농반진반의 빈정거림도 더러 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도 취미를 가져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건축책 읽기’하다 보니 ‘눈 명창’ 되어…

 

 그래서 골라낸 취미가 ‘건축’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삽을 들고 땅을 판다거나 손수 흙벽돌을 찍어내겠다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땀 나게 몸을 움직이는 것을 체질적으로 싫어하고 또 핑계 같지만 율장에서 금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취미인 건축은 정확히 말하면 ‘건축책 읽기’라고 하겠다. 우선 건축관련 서적은 그림과 사진이 많다. 그래서 부담없이 책장이 넘어간다. 그리고 설사 그 분야에 문외한이라고 할지라도 한글만 알면 대충 이해할 수 있도록 풀어 써놓은 교양입문서 수준의 저서들이 꽤나 많기 때문이다.

 

 이래저래 빈둥거릴 때마다 심심풀이로 읽어낸 책들이 쌓여 이미 넓은 벽면의 책장 일부분을 보란듯이 차지하고 있다. 한옥 양옥 퓨전집을 가리지 않았고 종교건물 살림집 공공건물 사무실 빌딩 등 분야의 차별을 두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까 집을 한 채도 지어 본 적은 없지만 ‘눈 명창’이 되어 남들 짓는 걸 곁눈질하면서 ‘이건 아닌데’하며 자주 고개를 갸웃거리게 된다. 그리고 여기저기 남의 집들을 오해(?) 받지 않을 만큼만 기웃거리며 살피게 되었다.   

 

 시절인연 닿지 않아 미완성으로 끝났지만…

 

 ‘불사’라고 하면 생각나는 어른이 있다. 영암스님이시다. 거의 ‘전설적인 주지’로 해인사 대중에게 각인되어있다. 얼마나 공금과 개인돈을 철저하게 구별하셨는지 호주머니에 공금은 두툼하게 있었는데 개인돈이 한 푼도 없어 대구에서 해인사까지 걸어오셨다는 어른이다. 그 분이 늘 대중들에게 하셨다는 말씀이 ‘고래등 같은 기와집에 유리알 같은 장판에.......’ 그 다음은 뻔하다. “그런데 왜 공부 안하냐?”

 

 그 ‘고래등 같은 기와집, 유리알 같은 장판’은 그 어른의 건축관이었다. 그건 아직까지 절집 건축관의 대세이기도 하다. 그 덕분에 대궐 같은 큰집에서 후학들이 폼나게 살고 있다.       

 

 그리고 정말 큰집이 될 뻔했던 ‘해인사 신행문화도량’일을 거들어주면서 내로라하는 이 땅의 건축대가들 그리고 문화인들과 머리를 맞대고 숙의할 기회를 가졌다. 건축가 정기용 선생과 조성룡 선생도 그때 만났다. 함께 유럽과 일본의 ‘명작건축’들을 보러 다니는 호사까지 누렸다. 시절인연이 닿지 않아 결국 설계도만 남기고 미완성으로 끝났지만 ‘건축’이 취미였던 나에게는 안목이 좀더 넓어지는 시간들이었다. 전통성당의 형식을 원용하여 현대적 수도원을 만들어낸 프랑스 건축가 르 꼬르비제의 작품과 노출콘크리트 건축의 원조인 일본의  안도 다다오의 걸작인 ‘물의 사원’도 친견하면서 단순한 복원뿐만 아니라 시대를 함께 호흡하며 신구(新舊)의 전이(轉移)과정을 거친 창조적 건축물에 대해서도 관심을 갖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공적인 큰집보다는 사적인 작은집이…

 

 언제부턴가 공적인 큰집보다는 사적인 작은집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대찰보다는 아기자기한 작은 절들에 더 관심이 갔다. 그리고 살림집이라고 할지라도 사람냄새와 손때가 켜켜이 쌓여있는 격조 있는 아름다움에 관심이 갔다. 젊은 날에는 크고 장대한 것을 좋아했는데 이제 나이가 들면서 꿈의 부피와 내용이 줄어든 까닭일 것이다. 또 그런 암자와 작은 집은 사는 사람의 삶과 사상이 투영될 수 있고 그 사람의 의지대로 모든 것을 만들어갈 수 있다는 점이 부각되기 때문일 것이다.

 

 이제 사(寺)라는 명칭보다는 암(庵)이나 정사(精舍) 또는 아란야(阿蘭耶)라는 현판에 더 눈이 간다. 초당(草堂) 또는 재(齋)라는 글자도 더없이 정겹다. 초당 또는 아란야는 절집의 원형이다. 바위굴 나무 밑에서 수행하던 시절을 지나 그 뒤 얼기설기 엮어서 비바람을 피할 정도의 그야말로 ‘토굴’이었다. 이것도 세월이 흐르니 이제 토굴은 ‘안가(安家)’의 성격이 더 강해져 그 고유의 의미가 상실되어버렸지만.

 

 어쨌거나 큰 집은 큰 집대로, 작은 집은 작은 집대로 역할이 있기 마련이다. 큰 절에는 많은 대중이 살아야 하고, 큰 집에는 대가족이 살아야 한다. 식구도 없으면서 지나치게 큰 아파트를 고집한다면 결국 그곳에 사는 사람에게도 별로 좋지 않을 것이다. 하긴 집채 수만 많고 대중이 없는 절이 주는 썰렁함은 익히 경험해온 터이다.

 

 서울 북촌 ‘퓨선 한옥’으로 변신 중

 

 이즈음 서울 북촌에서는 작은 기와집 보존작업이 한창이다. 걸핏하면 헐어내고 연립주택을 지어 세를 놓아버리는 경제논리의 만연은 마을전체의 부조화와 불균형을 낳게 되었고 이에 뜻있는 사람들이 하나 둘 모여 ‘한옥살리기’라는 문화운동으로 이어져가고 있다. 이제 그 기와집은 한옥사무실, 소형아트숍, 작은미술관, 커피집, 심지어 와인바 등으로 변신하면서 한옥 특유의 푸근함으로 많은 사람들을 불러 들이고 있다. 젊은 건축가들에 의하여 또다시 ‘퓨전한옥’으로 변신하고 있는 중이다   

 

 북촌 입구로 정기용· 조성룡 두 건축가 선생님이 함께 이사를 왔다. 도시생활이라는 것이 가까이 있다고 해서 마음 나는대로 자주 뵐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조계사와 가까운 이웃이 되었다는 사실만으로도 기쁜 일이였다. 아마추어의 어설픈 건축기행문의 모음집인 《절집을 물고 물고기 떠있네》라는 나의 새 책에 추천사까지 흔쾌히 써주셨다.  인연의 소중함에 다시금 감사를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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