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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심정 벗님글방

하늘이건 땅이건 다니면 전부 길인 것을

등록 2010-07-02 14:27

 세계문화유산의 지정기준이 점(點) 에서 면(面) 단위로 바뀌면서 단일유물에서 유역 전체로 광역화되고 있다. 그리고 거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면과 면을 잇는 흐름까지 포함하려는 동적(動的) 개념까지 가미하고 있다.

 

 실력자라고 할지라도 가마를 탈 수 없도록

 

  2004년도에 일본 고야산을 포함하는 기이산(紀伊山) 그리고 구마노(熊 野) 권역을 묶어 지정될 때 무엇보다 중요시한 것은 ‘성지순례의 통로’라는 가치였다. 불교와 신도(神道)가 함께 어우러진 지역으로 3군데 성지와 성지끼리 이어지는 참배길이다. 사람의 발길이 거의 미치지 않는 지역을 관통할 뿐만 아니라 걸어서 갈 수밖에 없도록 의도적으로 험난한 지역만 골라서 만들었다는 공통점을 가진다. 높이도 해발 1000m를 넘기는 구간도 적지 않았다. 간혹 자연석 돌계단이나 약간의 포장길이 있긴 하지만 대부분 거칠고 웃자란 풀들로 뒤덮혀 있다. 실력자라고 할지라도 가마를 탈 수 없도록 만들어 놓았던 것이다.

 물론 큰 도시인 교토와 나라(奈良) 지역에서  걸어 올 수 있는 통로 구실도 겸했다. 5월 하순(5.26~29)에 ‘아름지기’라는 문화재 보존운동을 하는 민간단체에서 마련한 순례길에 함께 했다. 짜여진 다른 일정 때문에 옛길을 충분히 걷지 못했지만  바닷물 한 숟가락만 먹어 보아도 전체 바다가 짠 것을 안다는 경전 말씀으로 위로를 대신했다.

 

 인구 십만 명에 우동집이 700여 개

 

 걷다 보면 쉬어야 하고 또 하룻밤을 묶어야 할 일도 생긴다. 먹는 일도 적은 일이 아니다. 일본 진언종의 개산조인 홍법공해(弘法空海:774~835) 대사가 창건주이자 열반지인  고야산 성지를 찾는 참배객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면서 많은 사찰들이 숙방(宿房) 기능을 해야 했고 더불어 정진(精進 쇼진) 요리가 함께 발달했다. 지금도 고야산의 200여 사찰 가운데 오십여 곳에서 참배객에게 숙소를 제공하고 있다.

 순례 인연이 닿아 총지원(摠持院)에서 하룻밤을 묶었다. 젊은 승려들이 음식시중을 들었다. 음식마다 여러 가지 이야기를 곁들였고 통역인은 열심히 설명했다. 음식 만드는 것도 수행이고 먹는 것도 수행이라는 가치관이 반영된 깔끔한 공양이었다. 어쨌거나 정진 요리도 홍법 대사가 원조인 셈이다. 당신은 음식과도 인연이 많았다. 특히 고향인 사누키(讚岐) 지방의 우동도 그가 원조라고 했다.  인구 십만 명에 700여 개의 우동집이 있는 일본 최대의 우동 소비도시로서, 전세계의 미식가를 불러 모으고 있는 맛의 고장이다. 

 

 부처님 가르침 아는 첫걸음이 길 걷기

 

 특히 고야산 금강봉사(金剛峰寺) 가는 길은 홍법 대사가 만들었다고 전해지는데 아직도 109m마다 표지석이 남아 있다. 당연히 안내글씨가 새겨진다. 당신은 일본의 문자인 가나문자 성립에 기여한 공로도 적지 않았다. 그의 출신지인 시코쿠(四國)에는 1400KM를 걸어 45일 동안 88개 사찰을 찾는 1200년의 역사를 가진 순례길인 ‘오헨로(お遍路)’가 있다.

 오늘도 그 길을 흰 장삼 차림으로 걷는 오헨로상(さん)들은 ‘2인동행(二人同行)’ 사상으로 무장한 채 길을 걷고 있다. 2인, 즉 언제나 홍법 대사와 함께 걷는다고 여긴다. 이 길은 대사의 수행 흔적을 따라 세월이 흐르면서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순례길인 까닭이다. 대사는 순례자가 갖추어야 할 마음가짐을 ‘다닐 때는 살생하지 않으며, 이성과 교제하지 않으며, 술을 마시지 않고, 서로 잡담하지 않으며, 밤늦은 시간에는 다니지 않는다’ 등 몇가지 원칙도 세워놓았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제대로 알려면 ‘자기 자신부터 알아야 한다’면서 그 방법론으로 길 걷기를 권했다. 승려로부터 시작되어 일반 불자로 확대되었고 이제 일반인은 물론 외국인까지 찾아오는 유명한 길이 되었다.  

 

 용산(龍山) 선사가 찾아온 납자들에게 물었다. “이 산에는 길이 없거늘 스님들은 어디로 왔습니까?”

  그러자 그 납자가 되물었다.

 “화상은 어디로 왔습니까?”

 “나는 일찍이 운수(雲水)가 아니었겠소.”

 

 구름과 물처럼 사는 사람에게 무슨 길이 따로 있겠는가?

 그게 하늘이건 땅이건 다니면 전부 길인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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