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엔 누각도 요사도 필요…조화·배려가 ‘힘’
수난 잦았던 빈일루, 소실되고 짓고 3번 반복
경복궁은 조계사와 가까운 탓에 산책삼아 자주 찾는다. 주인없는 빈 근정전에선 그 옛날 임금께서 앉았던 용상과 배경인 ‘오봉산일월도’를 통해 당시의 위엄을 헤아린다. 하늘에는 붉은 해와 흰 달이 걸려 있다. 그리고 다섯 봉우리가 우뚝하다. 불그스름한 빛이 도는 몸체에 푸른 잎을 가진 토종 소나무가 훤칠하게 서있다. 그 아래에는 파도가 출렁이는 바다가 펼쳐진다.
사찰이 워낙 유명한 탓에 절이름에 가려 산이름이 묻혀버린 경우가 더러 있다. 낙산사를 품고 있는 오봉산 역시 그러하다. 어떤 이는 으레 인근 설악산 줄기려니 여긴다. 관음성지 순례객들은 보타낙가산, 혹은 줄여서 낙산으로 부르기도 한다. 그것도 아니면 산이름 알아서 뭐할 거냐고 반문하는 불립문자주의자도 있다. 어쨌거나 홍예문 아래 일주문에는 ‘오봉산 낙산사’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오봉산과 낙산사는 산불로 소실된 지 5년여 만에 본모습을 찾아가고 있다. 얼마 전 그동안 안타까운 마음으로 걱정해주고 후원해준 이들을 초청해 복원을 자축하는 낙성식과 산사음악회가 열렸다. 그 자리를 함께 했다.
입 안에서도 바람소리 나는 ‘루’, 스치는 바람과 필연인가
오봉산에서 해와 달을 상징하는 건물에 유독 눈길이 오래 머물렀다. 동쪽에는 해를 맞이하는 빈일루’(賓日樓)가 우뚝 서 있고, 서쪽에는 달을 보내는 ‘송월요’(送月寮)가 앉아 있다. 산불을 용케도 피해간 노송 몇 그루가 지난 날의 위용을 짐작케 해주고, 홍련암 앞에는 파도가 여전히 물보라를 치면서 넘실거린다. 오봉산일월도가 김홍도의 ‘낙산사 그림’보다도 더 실감나게 입체적으로 그려져 있었다.
조선 천지에서 이름을 떨치던 궁중화가 김홍도에게도 빈일루가 가장 인상 깊었던 모양이다. 낙산사 그림 중앙에 이 건물을 도드라지게 그렸다. 하지만 무엇이든 남의 눈에 띌수록 그만큼 손도 많이 타고 수난도 잦게 마련이다. 기록에 따르면 이 누각은 1888년 선학스님이 중건하고, 그 이후 어떤 연유로 없어졌던 모양이다. 1912년 해성스님이 또 세웠으나 한국전쟁으로 다시 소실됐다. 그러다 이번에 산불 덕분에 60년 만에 다시 세상에 나타날 수 있는 인연을 만났다. 자료만으로도 벌써 세 번째 중창을 거듭한 셈이다. 빈일루 입장에선 모든 게 전화위복이었다. 누각은 지관대종사의 친필 편액으로 마무리를 했다.
누각이라는 것이 본디 그렇게 변화무쌍한 것이다. 기둥으로 집을 공중에 띄운 것 자체가 바람을 탄다는 것을 의미한다. 땅 위에 서 있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허공에 매달려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사방이 터져 있다. 설사 막혀 있더라도 벽은 벽의 구실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 반드시 큰 창문을 몇 개씩 뚫어놓았기 때문이다. ‘루’(樓)라고 읽으면 입 안에서도 바람소리가 난다. 그래서 머무는 곳이 아니라 스쳐 지나가는 곳이 될 수 밖에 없나보다. 요즘 짓는 버스정류장처럼 투명함을 추구하는 건물인 셈이다.
바람 흐르는 빈일루, 바람 막는 송월요가 함께
송월요는 서쪽 한 켠의 마지막 자리를 지키고 있다. 요사채는 바람처럼 지나가는 곳이 아니라 오래 머무는 곳이다. 그런 집이길래 땅 위에 야물게 당당한 자세로 앉아 있다. 벽은 외풍을 막아주는 역할에 충실하고, 방바닥은 온기를 더해준다. 뜨끈뜨끈한 아랫목에 엉덩이를 붙이고 서쪽에 난 작은 봉창문을 통해 지는 달을 바라보기에 제격이라 하겠다.
절집이 공원의 정자처럼 누각만 있다면 뜨내기의 들뜬 공간으로 보이고, 요사만 있다면 바깥사람을 거부하는 폐쇄된 공간으로 비치기 쉽다. 물이 흐르기만 한다면 피곤함이 묻어날 것이고, 고여 있기만 하다면 답답함으로 다가오게 마련이다. 그래서 흐를 때는 흘러야 하고 머물 때는 머물러야 한다. 큰집은 나그네도 불편하지 않고 더불어 사는 이도 편안해야 한다. 그래서 누각도 필요하고 요사도 필요하다. 종갓집 역시 사랑채도 있어야 하고 안채도 있어야 한다. 내 집이지만 남을 위한 공간도 함께 배려할 줄 아는 것이 큰살림살이의 법도이다.
범부들의 일상생활은 아침이면 일하러 나가고 저녁이면 일을 마치고 돌아온다. 나그네는 해가 뜨면 길을 나서고, 달이 뜨면 묵을 공간을 찾는다. 인생이란 일과 휴식, 다니는 것과 머무는 것 그리고 나그네와 주인을 굳이 나눌 필요가 없는 까닭에 누각과 요사가 한 공간에서 조화롭게 서 있을 수 있는 것이다.
빈일루가 신세대에겐 ‘비니루’로 들리는 모양이다. 오렌지를 ‘아륀지’라고 힘줘 말하던 어느 구세대의 발음을 들을 때 만큼이나 생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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