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정교 성당들에 얽힌 다양한 운명 눈요기
건축가 마음 읽어내는 것은 여행의 ‘또다른 맛’
낯선 이름의 우편물이 도착했다. 누굴까 하고 궁금증을 더하며 뜯었다. 시집이었다. 저자의 사진을 보아도 누구인지 떠오르지 않았다. 기억을 애써 더듬었지만 역시 낯설기만 했다. 사실 책 프로필 사진이라는 게 대부분 실물보다 과장되어 있는지라 그 사람을 이미 알고 있어야 알아볼 수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어쨌거나 답례로 얼마 전에 내이름으로 나온 <할로 죽이고 방으로 살리고>라는 책을 보냈다. 책 사이엔 명함도 한 장 끼워보냈다. 며칠 후 메일이 왔다. 지난 번 모스크바와 상트페테르브르그를 함께 여행한 이들의 일원임을 암시하는 문장이 한 줄 들어 있었다.
지난 여름 도반 서너 명과 함께 낯모를 사람 30여명 사이에 끼어 러시아를 다녀왔다. 혹시나 하고 그때 찍은 사진 시디(CD)를 확인했다. 일행 전체를 알 수 있는 건 가이드의 설명을 듣고 있는 뒷모습 몇 장이었다. 나머지는 나홀로 혹은 두서너 명 동행들만 등장하는 ‘이기적인’ 장면 뿐이었다. 그것도 아니면 순수한 기록사진이었다. 사람을 찾으려 켠 컴퓨터에서 한 장 한 장 아름다운 풍광에 취해 본래 의도한 목적은 까마득하게 잊고 엉뚱하게 눈이 즐거운 호사를 누렸다.
완성도 추구하다 건축주는 빚더미에, 성당은 여학교로
크리스마스가 1월7일이라는 러시아정교회의 성당들은 그 부피만큼이나 많은 이야기를 숨기고 있었다. 건축주와 건축가는 협력관계인 동시에 긴장관계일 수 밖에 없다. 건축주가 의도하는 것과 건축가가 드러내고 싶어하는 것이 일치하지 않기 때문이다. 건축주는 대부분 황제 아니면 고위 성직자다. 그 시대에 그 정도의 경제적 부담을 떠안을 수 있는 세력은 이들 밖에 없었다. 왕이나 성직자가 건축가를 겸하는 경우가 아닌 다음에야 그 안팎의 갈등은 정도의 문제일 뿐이지 어느 건축현장에나 있게 마련이다.
잘된 건축물의 공통점은 건축주와 건축가의 커뮤니케이션 정도에 달려 있다고 했다. 그러니 건축주의 생각과 함께 건축가의 마음을 읽어내는 것은 여행의 또다른 맛이다. 그 많은 볼거리 가운데 종교건물만 눈에 제대로 들어오는 것은 수행자의 한계요, 또 믿거나 말거나 식의 ‘야사’(野史)만 기억하는 중생의 호기심이기도 하다.
디즈니랜드 건립에 영감을 주었다는 ‘붉은 광장’의 바실리 성당은 이 세상에 유일한 건축이길 바라는 건축주 황제의 욕심 때문에, 완공 후 건축가의 두 눈이 뽑혔다는 얘기를 안고 있다. 40년 만에 완성되었다는 이사악 성당에는 건축주가 하루도 살지 못했으며, 죽은 후에라도 묻히길 원했으나 그마저 정치적 이유로 이뤄지지 못했다는 얘기가 전한다. ‘짓는 사람’과 ‘사는 사람’은 다르다는 종교건축의 속설을 그대로 증명한다. 스몰니 성당은 건축가와 건축주가 너무 완성도 높은 작품을 추구한 나머지 건축주가 빚더미에 오르고, 결국엔 미사 한번 올리지 못하고 국가로 귀속되어 여학교로 바뀌어버린 아픔을 품고 있다.
큰 건물은 그 거대함으로 인하여 건축주와 건축가를 모두 불행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현재는 그 거대함으로 인하여 본래 역할과는 다소 멀어지긴 했지만, 시대의 흐름에 나름대로 적응하며 관광이라는 새로운 의미를 창조하고 있었다.
‘박제된 성당’ 벗고 소통으로 영원한 생명력 입어
종교인으로서 종교성지를 찾았는데도 마음 한 켠에 뭔가 부족했다. 마지막에 들른 그 쎄르기 수도원이 아니었다면 우리도 그저 관광객 차원에 머물고 말았을 것이다. 쎄르기 수도원의 분위기는 이제까지 본 박제된 성당들과 격을 달리했다. 이 수도원은 지금도 수도원으로서의 역할을 다하고 있다. 안내를 맡은 수사(修士)가 팀마다 붙었다. 카메라는 입구에서 막아 나름대로 신성성을 지키려 애쓰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물론 카메라를 지참하고자 하는 이는 별도의 경비를 부담해야 하는 상업적 융통성도 함께 발휘했다.) 경내를 설명할 때도 영성을 곁들였고 종교성을 강조했다. 창건주 쎄르기 신부가 당시 뛰어난 영적 능력으로 국왕과 많은 이의 귀의를 받았다고 자랑했다.
장님의 눈을 뜨게 하고, 앉은뱅이를 걷게 했다는 영험있는 샘물은 오늘도 여전히 많은 참배객에게 성수(聖水)로 여겨졌다. 먼길을 온 나그네에게는 목을 축여주는 감로수였다. 한 눈에도 관광객보다 참배객이 훨씬 더 많아 보였다. 수도원은 종교 본연의 목적을 다하면서도 관광지로서의 역할에도 충실했다. 참배객은 그 자체가 또다른 볼거리가 되어주었다. 관광지와 성지의 차이가 바로 이것이었다. 건물형식과 종교의식이 함께 하면서 관광객의 기운까지 정화시키는 에너지가 흐르고 있었다. 물론 관광객은 그 에너지조차 관광으로 인식하지만 그래도 그건 형식만 남은 관광지의 감동에 비할 바가 아니다.
사람들의 기억에서 사라져 아무도 찾아주지 않는 성지도 그렇지만, 고유의 신성만을 내세워 누구도 출입을 허락하지 않거나 또 아무도 출입을 원하지 않는 ‘그들만의 성지’ 역시 생명력이 없긴 마찬가지다. 성지 역시 주변과의 소통은 영원성을 위한 또다른 생명력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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