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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심정 벗님글방

도농복합시대의 ‘도농불이형 인간’

등록 2009-10-02 20:36

산사에온 봉사생들, 처음엔 좋다더니 나중엔 “갑갑해”

도시의 존재도 농촌을 바탕으로…논·밭 역할은 못해

 

 

몇 해 전 큰절에서 여름수행학교 일을 거들고 있을 때 일이다. 십여명의 젊은 대학생 자원봉사자들은 산사에 머무니 정말 좋다고 하면서 소매를 걷어붙이고 열심히 일을 도와주었다. 여름방학이 중간쯤 지날 무렵, 몇 명이 ‘갇힌 것 같은 느낌’이라는 푸념을 늘어놓았다. 그 날은 경내가 더위를 피해온 피서인파로 온통 북적이고 있었다.

 

“산이 얼마나 좋으면 저렇게 전국에서 몰려 오겠니? 살고 있는 우리는 얼마나 행복하니?”

하지만 입을 삐죽거리면서 되돌아온 답변은 그게 아니었다.

“신선한 아이스크림과 방금 구운 피자가 먹고 싶어요. 그런데 여기는 없잖아요.”

 

그 말이 마음에 걸려 프로그램이 없는 날을 이용하여 두 시간을 달려 인근에서 가장 큰 대도시로 함께 나갔다. 아이스크림과 피자는 물론 유명커피집까지 들른 탓에 밤늦게 사찰로 돌아왔다. 

 

실버타운·납골당도 ‘좌버스 우택시가 진짜 명당’

 

바야흐로 도시화 시대이다. 전통적으로 사세를 자랑하던 산중의 큰 본사들은 다소 정체되어 있는 반면 수도권에 있는 조계사 용주사 봉선사 교구의 사격은 눈에 띄게 날로 달라지고 있다. 개발로 인하여 조계종 소유토지의 공시지가 역시 지방과 수도권은 현격한 차이를 보일 수밖에 없다. 심지어 조용하고 청정함을 선호할 것 같은 실버타운·납골당·수목장조차도 도시 인근에 위치한 곳을 찾는다. 그래서 풍수계에서도 ‘좌청룡 우백호’가 아니라 ‘좌버스 우택시가 진짜 명당’이라는 우스개소리가 나올 지경이다. 교통접근성이 무엇보다도 좋아야 한다는 것을 우회적으로 말한 것이다.  

 

누군가 인류의 역사는 도시의 역사라고 했다. 도시예찬론자들은 인간이 만든 최고의 걸작품이 도시라고도 평했다. 사막 한 가운데 어느 날 갑자기 만들어진 인공도시는 말할 것도 없고, 일천만명 이상 모여사는 자연발생적 거대도시가 세계곳곳에 자리하고 있다. 한국 역시 인구의 절반인 2천만명이 수도권에 모여 살고 있다. 그것도 모자라 홍콩이나 싱가포르는 아예 도시국가를 표방하고 나섰다. 이들은 전 국토가 도시인 셈이다.

 

최근 인근의 지방자치단체끼리 합하자는 바람이 불고 있는데 이는 광역도시권으로서 인구 일백만이라는 요건을 밑자락에 깔고 있는 시도이다. 자발적인 통합 움직임이라는 점에서 일견 바람직한 면도 있지만 기본적 시각은 도시와 도시의 통합으로 몸집불리기가 더 큰 목적인 것 같다. 설사 옆 지역일지라도 인구와 재정자립도가 떨어지는 군 단위는 거들떠보지도 않는 곳이 대부분인 까닭이다. 심지어 서울 역시 현재의 25개 구(區)를 백만명 단위의 10여개로 통합해야 한다는 이야기까지 나오고 있다.

 

시골이 불편하지 안고 도시가 어색하지 않은 21세기 대안인간

 

결국 도시가 아무리 좋다고 해도 농촌의 존재를 전제로 할 때만 존립할 수 있는 구조이다. 도시빌딩 옥상에 하중을 줄이기 위한 인공 흙과 함께 풀·꽃·나무를 이용하여 공원을 만드는 일은 가능할지 몰라도 논밭 역할까지 맡길 수는 없는 까닭이다. 그리고 설사 도시국가라고 할지라도 인근국가의 농산물 없이 홀로 존재할 수 없다. 먹을거리 생산까지 그 공간이 해결해 주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도시가 농촌을 바라보는 시각과 시골이 도시에 기대하는 관심은 서로 일치하지 않는 것 같다. 농협 축협 수협마저도 도시민을 대상으로 움직일 수밖에 없는 ‘생산 및 소비인구 태부족’이라는 근본적 한계를 극복하기란 참으로 쉽지 않은 일이라고 하겠다.

 

사실 일부 우국지사(憂國之士)의 귀농까지 대부분 실패한 까닭은 도시적 시각으로 시골을 바라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시골을 생활과 결합한 농가공간이 아니라 이미지로 구성된 별장공간으로 간주한 까닭이다. 곳곳에서 귀농 정착률을 높이기 위한 새로운 형태의 공동체를 만들어보자는 실험이 현재도 진행 중이다. 지리산 실상사 인근의 인드라망 생명공동체는 남원의 농촌인구를 늘리고 있다는 구체적인 통계치가 나타난 까닭에 그나마 성공적인 징후를 보이고 있긴 하다.

 

이제 대세는 도시적 안목을 가진 시골사람,  시골적 정서를 이해하는 도시 사람을 필요로 하는 시대가 되었다. 도시문화의 꽃이라고 하는 금융투자시장에서 이름을 날리고 있는 ‘시골의사’ 박경철씨나 ‘평택촌놈’ 정오영씨는 이 시대에 시골이 불편하지 않고 도시가 어색하지 않은 ‘도농불이(都農不二)의 이상적 인간형’으로 얼마 전에 발견한(?) 인물이다. 그 순간 21세기 대안인간처럼 보였다. 하지만 너무 희귀형이라 모범사례로 응용이 불가능한 모델이었다.

 

도농복합도시 시대에 실천 가능한 일상적인 ‘도농불이 인간형’은 과연 어떤 모습일까 하는 화두를 붙들고 불편한 시골과 복잡한 도시를 오가야만 하는 이들에게 다시 던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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