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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심정 벗님글방

쓰시마섬에서 본 경계인의 삶

등록 2009-06-30 10:11

[벗님글방/원철스님]

와타즈미신사의 3번 도리이가 주는 암시

육지와 바다를 아우르는 경계인 보는듯

 

 

하늘과 인간세계를 이어주는 새

 

쓰시마의 와타즈미 신사는 절집의 일주문 노릇을 하는 도리이(烏居)가 다섯 개 씩이나 되었다. 도리이는 새가 머무는 자리이다. 새는 천계(天界)와 인간세계를 연결시켜 주는 역할을 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동해안의  솟대(烏干) 위에도 새를 올려 놓은 것도 같은 이치이다.  숫자도 숫자지만 세워놓은 위치가 범상치 않다.  ‘바다의 궁전’이라는 별칭에 걸맞게 물에서 육지까지 연이어져 있다. 육지 쪽에서 바라보니 바다를 향해 걸어가야만 할 것 같은 출구 분위기를 만들어 놓았다. 해안가에서 치어보면 바다 건너 누군가가 육지를 향해 뚜벅뚜벅 물 위를 걸어오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용궁으로 가든지 한반도 쪽에서 오든지 그건 문제가 아니였다. 어쨋거나 가야 할 사람은 서운하더라도 갈 수 있도록 전송해 주었고, 와야 할 사람이라면 누구든 마음놓고 올 수 있도록 반갑게 맞이하려는 구조미가 돋보였다.  그래서 바다와 육지를 향해 모두 열려 있는 대문 구실을 제대로 하고 있는 셈이다.  그 이미지에 걸맞게 낡은 배 한 척이 마당에 소중하게 보관되어 있었다. 오래 전에 누군가가 타고 온 배였겠지만 언젠가  또다른  누군가가 타고 나갈 배이기도 하다.

 

눈길을 한동안 떼지못한 것은 물과 뭍의 경계에 서있는 그 씩씩한 도리이였다. 육지 쪽에서도 세어봐도 3번이고, 바다쪽에서 헤아려 봐도 3번이다. 이래저래 중간인 것이다. 만약 3번 도리이가 그 자리에 없었다면 물과 뭍의 두 개의 도리는  별개로 따로 존재한다는 느낌을 주었을 것이다.  육지와 바다를 함께 아우르는 그 폼새가 영락없는 ‘중간자’ 내지는 ‘경계인’ 역할을 자처하고 있다고 하겠다.

 

중국, 한국, 일본의 접점 쓰시마

 

육지는 바다로 인하여 바다는 육지로 인하여 서로 관계성 위에서 서로 의지하고 있다. 바다가 없는 내륙국가는 그 폐쇄성과 교통의 불편함은 말할 것도 없지만, 사면이 열려있다고 해도 바다보다 육지의 면적이 상대적으로 턱없이 모자라는 섬나라가 가지는 열등감도 그 못지않을 것 같다. 이제 바다도 영토인 시대이고 보면 국토를 바다 육지로 나누는 것 자체가 무의미하긴 하다. 어쨋거나 경계점에 서 있으면 육지와 바다 모두가 관념이 아니라 체감적으로 닿아온다.   

 

경계에 서 있는 그 도리이는 나머지 4개와 달리 유독 새 것이었다. 바다와 육지에서 불어오는 모든 바람을 밤낮으로 맞아야 했고 또 동시에 양쪽에서 손을 타다보니 교체도 자주해야 했을 것이다. 늘 끊임없이 자기를 업그레이드 시켜야 그 자리를 지킬 수 있었다. 흑과 백의 접점에서 양쪽의 목소리를 모두 아우를 수 있는 지정학적 위치에 서있는 까닭이다.  더불어 이 쪽과 저 쪽 모두 숨 쉴수 있도록 틈새를 만들어주는 역할은 그 자체가 격무였다. 이 틈을 만들고자 육지는 바다의 입장을 헤아려야 했고 바다는 육지의 속내를 살펴야 하는 쉽지 않은 작업을 알게 모르게 훈련받아야 했다.

 

일본어와 나란히 있는 한글 표기

 

어찌보면 중국, 한국과 일본의 접점이 쓰시마인 셈이다. 역사 속에서 대륙국과 해양국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며 나름대로 실리를 추구했다. 두 나라를 가장 잘 이해하는 경계의 철학이 반영된 탓이다. 1871년 나가사키 현에 편입되었지만 1983년에는 영도 구와 자매결연도 맺었다. 지도를 보면 일본보다 한국이 훨씬 가깝다. 하긴 모든 게 거리로만 계산될 일은 아니다. 물리적 거리와 역사적 거리는 별개인 까닭이다. 일본어와 나란히 병기된 한글로 만들어진 도로표지판에서 나름대로 경계인의 지혜를 살피게 된다.

 

고려 때 몽고가 일본을 정벌을 할 때도 쓰시마를 먼저 점령했다. 임진란 때 일본이 조선을 침입할 때도 쓰시마에 진을 쳤다. 그런 낌새를 미리 읽은 당시 쓰시마 도주(島主)는 큰일이 벌어지기 전에 조선과 일본의 화해를 위해 백방으로 뛰었다. 그건 경계인으로 살기 위한 자구책이었다. 결국 모든 것은 뜻대로 되지 않았다. 동양삼국은 7년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렸고 쓰시마도 그 이상으로 시달렸다. 그건 힘없는 경계인이 가진 한계이기도 했다.     

 

와타즈미 신사의 3번 도리이는 쓰시마의 과거 현재 미래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건축물이었다. 중간자이면서 동시에 힘있는 경계인이 되고자 하는 바람을 담아 새 암석으로 무장한 채 오늘도 씩씩하게 두 발로 땅을 딛고서 당당히 하늘을 향해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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