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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심정 벗님글방

연등꽃의 아름다움 보면서 수고로움 생각 

등록 2009-05-09 01:53

[벗님글방/원철스님]

‘꽃대궐’ 봄세상 새 것이 태어나듯 조화롭게 다시 살자

 

 

눈 닿는 곳마다 떠나는 길마다 꽃천지다. ‘나도 꽃’이라며 연초록 잎새도 질세라 함께 다투어 피어난다. 푸른 산과 붉은 꽃이 어우러져 봄세상은 그야말로 꽃대궐이다. 더불어 숨어있던 우리 마음속 꽃잎 한 장 까지 마침내 덩달아 활짝 피어오른다.

 

만화방창(萬化方暢)의 계절인지라 꽃으로 장엄된 호시절이다. 너도 꽃이고 나도 꽃이고 또 우리 모두가 함께 꽃이 되기 때문이다. 또 서울시청 앞의 탑등과  청계천의 잉어등 그리고 코엑스 근처 승과평의 수월관음등이 한지의 은은함과 단청의 화사함이 어우러진 꽃이 되어 봄밤을 아름답게 수놓고 있다. 낮에는 자연이 피운 꽃을 보고, 밤에는 사람이 피워낸 꽃을 본다. 낮에도 꽃이고 밤에도 꽃이다.  천화(千花)와 만등(萬燈)의 모임이니 그대로가 화엄세계가 되었다.

 

서울 사대문 안과 북촌에는 일만 등꽃이 피었다. 더불어 전국 방방곡곡에도  연등의 물결로 가득하다. 〈고려사〉에는 일만개의 등불을 켰다는 기록이 가끔가끔 보인다. 밀랍 다루는 솜씨가 부족하던 시절엔 촛농이 덜 흘러내리라고  양초를 소금물에 담갔다가 잘 말린 뒤 사용했다고 했으니 그 정성은 오늘날 전깃불에 비할 바가 아니다.

 

고려 충선왕은 연등회 때 매일 200개의 연꽃등을 만들어 5일 동안 부처님께 올렸다고 했다. 나라의 안녕과 백성의 평안을 기원하고 더불어 정치가로서 그동안의 허물을 참회한다는 기도의 의미였다. 그렇다. 모든 등불에는 지위의 높고 낮음과 상관없이 크고 작은 소망이 함께 자리한다. 청개천 난간에 매달려 있는 이름자과 소원의 글은 보는 이로 하여금 함께 기도하게 만들어준다.

 

북송 왕안석(1021~1086)의 봄맞이는 신선의 경지까지 승화시킨 것을 보여준다. 그는 이맘 때 쯤이면 언제나 꽃그늘 아래쪽 마당을 깨끗하게 쓸었다. 그리고 그 위로 꽃잎이 떨어지길 기다렸다. 비질을 마친 정갈한 마당 위에 꽃잎이 쏟아지는 풍광을 즐긴 것이다. 한편으론 그 꽃잎 위에 행여나 흙이나 먼지가 날아와 더럽혀질까봐 걱정했다. 하지만 꽃잎을 더럽힌 것은 먼지나 흙이 아니었다.  떨어져 있는 봄꽃을 아무렇지도 않게 밟고 지나가면서 따로 봄을 찾고 있는 상춘객들이었다. 그들의 뒷모습을 망연히 바라보고서 제대로 봄을 사랑할 줄 모르는 사람들이라는 내용의 ‘춘수(春愁)’라는 시를 남겨 놓았다.

 

꽃을 피우기 위해선 인고의 시간이 필요하듯 등꽃을 피우기 위해선 정성과 노고가 뒤따르기 마련이다. 손톱 끝을 빨갛게 물들이며 연꽃잎을 비비고 밤새 눈 비벼가며 한지를 오려붙이는 작업공간은 몇 달 몇 밤 동안 불이 꺼질 줄 모른다. 그렇게 오랜 시간 솜씨를 익히고 정성을 쌓은 것이 연등축제요 만등의 모임이다. 사람들이 휘늘어진 꽃가지 밑을 거닐면서 꽃의 아름다움만 감탄할 때, 지혜로운 이는 꽃을 피우려는 뿌리의 고단함도 함께 살핀다. 꽃만 보고 뿌리를 잊어버리거나 연등만 보고 수고로움을 모르는 것은 또 다른 치우침일 것이다. 이제 그 어려움까지 읽혀지니 구경꾼처럼 마냥 감탄만 할 수 없는 위치가 되어 또 다른 ‘봄시름(春愁)’을 앓아야만 했다.

 

봄날은 모든 걸 새로 태어나게 한다. 성인들도 그러했다. 예루살렘에서 부활로 다시 태어나셨고, 백여년 전 한반도 영광 땅에선 대각으로 거듭 나셨으며, 꽃비 날리는 룸비니 동산에서 이천육백년 전 디디는 발끝에 일곱송이 연꽃을 피우면서 사바세계로 오셨다. 기독교의 부활절과 원불교의 대각개교절, 그리고 부처님 오신날이 모두 무르익은 봄날에 앞서거니 뒤서거니 사이좋게 모여 있는 것도 또 다른 조화와 화합을 주문하는 이 시대의 메시지로 읽힌다. 그래서 종로거리의 연등축제는 우리 모두가  함께하는 세상인 것이다. 

  

  용비봉무(龍飛鳳舞)하니

  세계일화(世界一華)로다

  용은 날고 봉황이 춤을 추니

  세계가 한 송이의 꽃이 되네

 

원철 스님/조계종 재정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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