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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심정 벗님글방

늙음 염려 말고 거릴낄 것 없는 편안함으로

등록 2009-04-24 15:37

[원철스님] 창덕궁 기오헌

궁궐 속 고졸한 온돌방 하나 효명세자의 절제된 삶 보여

돌마저도 세월에 시들고 늙어…생물적 불사란 불가능해

 

 

무르익은 봄날 오후 창덕궁 비원에는 꽃비가 흩날리고 있었다. 그 화려함 속에서 감춰진 소박함을 만난다는 것은 또 다른 감동을 준다. 아무 군더더기 없이 고졸한 기오헌(寄傲軒)은 온돌방 하나에 작은 대청 누마루로 이루어진 독서와 명상의 공간이었다. 바로 옆의 의두각(倚斗閣)은 몸조차 누일 수 없기에 앉아있어야만 하는 두평도 채 안되는 집이었다. 그늘진 북향, 게다가 그야말로 아무 장식이 없는 백골택(白骨宅)이다. 구중궁궐 속에서 화려한 화계(花階)를 거부하고 주먹돌로 된 뒷축대를 가파르게 쌓아올렸다. 뒤뜰 역시 뭐라고 한마디 말할 것조차 없는 평범함 그 자체였다.

 

기오헌의 분위기에 건축가도 취해

 

이 집은 순조의 아들 효명세자가 1828년 완공했다. 왕손이면서 더불어 유가의 선비정신에 누구보다도 투철했기에 그의 절제된 삶의 편린은 이렇게 상징화되었다. 하지만 약관을 갓 넘긴 나이에 요절하는 바람에 오래 머물지는 못했지만 그의 흔적은 여전히 남아있다. 의두각은 절집의 칠성각을 연상케 한다. 두(斗)가 북두칠성의 뜻이라면 더더욱 그러하다. 불로문과 더불어 다소의 도가풍을 연상시킨다. 세도정치세력과 줄다리기를 하는 와중에 잠시 짬을 내어 산그늘 밑에 은둔하듯 숨어 내공을 쌓는 수행도 게을리 하지 않았을 것이다. 깐깐한 선사의 토굴 분위기인 탓에 상상력은 가지에 가지를 친다. 현대 건축가 민현식 선생은 이 분위기에 반하여 1992년 자신의 사무실을 개원하면서 ‘기오헌’이란 이름을 주저 없이 붙였다.  

 

‘기오’는 남의 눈치를 보지 않고 거리낄 것 없는 여유로움을 말한다. 도연명(365~427)이 벼슬자리를 버리고 돌아간 고향집에서 느낀 ‘기오’의 편안함을 〈귀거래사〉로 읊었다.

  

  의남창이기오(倚南窓以寄傲)  심용슬이안(審容膝易安)

  남쪽 창에 기대서니 마음은 거리낄게 없어

  좁은 방안일 망정 이 얼마나 편안한가

 

대구의 불로동은 ‘나이 든 어른이 아무도 없는 마을’

 

기오헌 담장을 끼고 불로문(不老門)이 서 있다. 진시황제도 불로를 꿈꾸었지만 결국 이룰 수가 없었다. 생물적 불사(不死)란 어차피 불가능한 일이다. 통돌로 깎은 불로문은 세월의 흔적 앞에 그 글씨마저도 흐릿해져 처음 만들 때 의도와는 상관없이 이미 늙을 만치 늙어버렸다. 돌조차도 만수무강 불로장생을 바라지만 그건 만든 이의 바람일 뿐이다. 지하철 경복궁역에 새로 만들어진 불로문은 출근길에 바쁜 걸음의 사대문안 직장인들로 하여금 오늘 하루도 ‘스트레스 없는 불로’를 기원하며 통과의례를 한다.

 

고려대장경연구소 종림스님이 머무는 흑석동 공간에는 ‘정신세계 불노원(精神世界 不老院)’이라는 다소 투박한 돌현판이 걸려있다. 1966년 만들어진 허름한 요사채인데, 입구에 누구 글씨인지 이름도 없고 낙관도 없는 (이름을 남기거나 낙관을 찍을만한 명필은 물론 아니지만) 가로 80 세로 20 두께 3센티 정도의 직사각형의 무늬가 깔린 옥돌같은 대리석에 새겨 달았다.  이 글처럼 정신세계의 불로는 가능하다. 그리고 불로를 ’늙지 않는다‘가 아니라 ’늙음조차도 염두에 두지 않는다‘고 고친다면 전혀 불가능한 일이 아닌 것이다.

 

대구 팔공산 언저리의 불로동은 장수촌의 의미가 아니었다. 왕건이 공산전투에 패하여 도주하다가 이 지역에 이르니 이미 어른들은 모두 피난가고 어린아이들(아마 고아였을 것이다)만 남아있는 까닭이다. ‘나이 든 어른(老)이 아무도 없는(不) 마을(洞)’은 그렇게 오늘까지 이름으로 남아있다. 그렇더라도 ‘늙지 않고 살 수 있는 동네’인 불로동이 어디쯤인가 한 곳은 있어야 할 것 같다.

 

더러움에 물들지 않은 도도한 연꽃처럼

 

불로문 담장 밑으로 이어진 애련지와 애련정은 1692년 숙종임금 때 연못과 정자가 함께 만들어 졌다. 주돈이(1017~1073)는 군자의 꽃이라서 연꽃을 사랑한다는 ‘애련설(愛蓮說)’이란 명문을 남겼다. 그런 도도함과 함께 연꽃의 가장 큰 매력은 진흙 밭에 뿌리를 내리고 살지만 결코 그 더러움에 온몸이 물들지 않는 지혜로운 그리고 꼿꼿한 처신 때문이다.

  

  가원관이 불가설완언(可遠觀而 不可褻翫焉)

  멀리서 바라볼 수는 있지만  가까이서 만만하게 다룰 수 없구나.

 

그 도도한 한여름의 연꽃이지만 4월 초파일에는 발 밑에서 피어나길 마다하지 않는다. 인류의 대스승인 부처님께서 도솔천에서 사바세계로 오신 날 일곱 걸음을 옮기며 ‘천상천하 유아독존’이라는 할(喝)을 내지르셨다. 아기 선지식의 발자국마다 그 아래에서 연꽃이 피어났다. 그날 일곱송이 연꽃은 제자 되어 다소곳한 자태로 앉아 탄생 게송 4구절을 온전히 함께 들었다. 

  

  삼계개고(三界皆苦) 아당안지(我當安之)

  이 세상이 모두 고통 속이니

  내가 마땅히 편안케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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