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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심정 벗님글방

하늘이 노한 흙비와 인간이 만든 재앙 황사

등록 2009-04-08 15:10

허물 돌아보는 수행과 적선 계기로 삼았는데

‘기상특보’감으로 전락한 것은 결국 자업자득

 

 

동북아불교문화권에선 중국은 전탑, 한국은 석탑, 일본은 목탑의 나라라고 구분하여 부른다. 그 말처럼 벽돌, 석재, 목재가 그 나라 불탑의 주재료가 된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한국에 전탑이 없는 건 아니다. 많은 숫자는 아니지만 의성 안동 등 경북 북부지방에 주로 모여 있다. 중앙선에는 ‘탑리’라는 역이름으로 사용될 만큼 의성을 대표하는 전탑이 나지막한 언덕 위에 당당하게 서 있다. 국보로 지정된 아름다운 오층탑인데 목탑 전탑 석탑의 모습을 두루 간직한 탓에 일찍부터 문화재 동호인, 그리고 지역민의 관심과 사랑을 받아왔다. 인근 면에는 이 탑과 같은 스타일로 분류되는 빙산탑도 자리잡고 있다. 두 탑은 폐사지가 주는 허허로움을 다소나마 덜어주면서 또 ‘흙비’ 이야기도 함께 나누고 있다.

 

탑리 주변의 삼각산에는 옛 고분들이 즐비하다. 옛날 삼한시대 부족국가이던 조문국의 도읍지였던 흔적이다. 그리고 가난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국법에 의해 나이 든 노부모를 갖다 버렸다는 고려장 무덤도 더러 남아 있다. 그런데 이 고려장을 도굴하려고 하면 흙비가 내려 차마 훼손할 수가 없었다고 전한다. 빙산탑이 있는 얼음골인 빙계계곡은 삼복 때는 얼음이 굳어지고 흙비가 오면 얼음이 녹기 시작한다고 옛문헌은 기록했다.

 

그런 흙비를 어떤 소설가는 이순신 장군이 첫 출전을 하기 전날 그 팽팽한 긴장감을 ‘왜 바람이 마당으로 몰려들었고 흙비가 내렸다’고 묘사했다. 어느 시인은 ‘흙비가 오면 병을 거꾸로 매단다’는 화두같은 글을 남겼다. ‘거꾸로’라는 말이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만든다. 당나라 때 남전 선사는 저녁 늦게 돌아온 제자에게 죽은 고양이를 살릴 방법을 물었다. 그러자 제자는 머리 위에 짚신을 얹고서 다시 방 밖으로 나가버렸다. 황사 내리는 날은 방문을 꼭꼭 닫은 채 병을 거꾸로 매달아 놓고서 ‘신고 온 짚신을 머리 위에 올린’ 조주선사의 ‘거꾸로 된’ 신발 화두를 챙겨보면 제대로 격에 어울릴 것 같다.

 

황사는 본래  ‘흙비(土雨, 雨土)’라고 불렀다. 임금이 정치를 잘못하고 자격없는 이가 벼슬자리에 앉는 것에 대한 응징으로 하늘에서 흙비가 온다고 믿었다. 연산군이 집권한 지 2년만에 흙비가 내리니 ‘정치를 잘못해 이런 변괴가 생겼으니 이는 단정코 그 허물이 나에게 있다’고 참회했다. 그래서 삼국시대에도 바람이 강하게 불고 흙비가 내리면 죄수를 모두 풀어주었던 것이다.

 

흙과 비라는 고운 말이 함께 어우러진 흙비의 어감은 그런 까닭에 두 배로 아름답다. 그래서 흙비가 내린 다음 산에는 소나무가 무성하게 잘 자랐고, 농산물도 생장이 왕성했다. 지금도 남해안에 적조현상이 일어나면 황토를 뿌린다. 황토물은 지장수란 이름으로 상품화되었고, 황토벽돌과 황토찜질방 역시 건강을 바라는 또다른 마음의 표현이다.

 

몽골과 중국내륙의 모래바람은 수천년 전부터 불어왔다. 사실 자연상태의 흙비는 아무 문제될 것이 없었다. 오히려 스스로의 허물을 돌아보는 마음수행과 적선(積善)의 계기로 삼았을 뿐이다. 흙비가 내려 낮이 밤처럼 어두워져도 육신의 건강을 걱정토록 하는 그런 황토가 아닌 까닭이다. 이런 흙비가 언제부턴가 황사로 바뀌어 불리기 시작했다. 황토가 황사로 바뀌면서 그 의미 역시 정반대로 다가왔다.

 

황사가 건강을 방해하는 존재로 부각된 것은 결국 그 속에 포함된 중금속을 포함한 인위적인 이물질 때문이다. 공업화로 인하여 황토는 산업사회에 접어들면서 황사 이미지로 바뀐 것이다. 중국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일본도 원인제공자인 탓에 그 피해로부터 자유로울 수가 없기 마련이다. 결국 자업자득이다.

 

2000년도 이후 동양삼국은 ‘황사주의보’라는 일기예보를 하기 시작했다. 늦게사 유목민의 과도한 방목으로 인하여 초원과 삼림파괴로 이어지면서 지나치게 넓어진 사막화가 그 원인이라고 진단하고는 녹화사업 운운 하지만 그건 본말이 전도된 처방인 것이다. 설사 백번 그렇다고 할지라도 그 원래 황토는 결코 ‘기상특보’감은 아닌 까닭이다.

 

황사 때문에 ‘커피처럼 진한 흙비를 뒤집어쓰고도 망울망울 벚꽃잎 화안한 얼굴을 보고 미안하다는 말도 못하고…’라는 남의 넋두리를 대신 읊조리며 마스크 쓰고 고개 숙인 사람에게 이 누런 봄은 참으로 길기만 하다. 중국풍의 그 전탑도 옛날 황토가 아니라고 저어하지만, 피하지도 못한 채 그렇게 희뿌옇게 서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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