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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심정 벗님글방

단종 재실인 금몽암의 꿈과 원형

등록 2008-12-15 15:45

  ‘대궐(禁:대궐 금)의 꿈’을 ‘금(禁:금할 금)’으로 감춰

 이지러지는 게 있으면 채워지는 것도 있는 게 이치

 

양력으로 섣달이다. 잎새를 떨군 나무만큼이나 강원도 땅 영월의 발본산도 모든 걸 비워버린 모습으로 한 해를 마무리 중이다. 그 바람에 자작나무를 닮은 은사시나무는 도리어 자신의 뜻과는 상관없이 늘씬하고 하얀 자태를 맘껏 뽐내는 위치가 되었다. 역시 이지러지는 것이 있으면 채워지는 것도 있는 게 이 세상의 이치인 것이다.

 

그 산에 자리잡은 금몽암(禁夢庵)도 그랬다. 여염집같이 단 한 채로 이루어진 복권 이전의 단종 재실이다. 그럼에도 누각이 딸려 있어 앞쪽으로는 ‘ㄱ자’형이면서 뒤편으로 양날개처럼 뻗은 방이 ‘ㄷ자’를 이루고 있는 전형적인 다용도 기와집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군더더기 없는 단아함으로 이 초겨울 계절과 잘 어울린다. 단종이 복위되면서 소박한 이 집이 왕의 격에 맞지 않다고 생각했는지 읍내 가까운 쪽에 화려한 보덕사를 창건했다. 복권 이전과 이후의 차이를 두 절집은 잘 보여준다. 마치 12월 이전과 12월 이후의 산하대지처럼.

 

보덕사로 원당(願堂)이 옮겨간 후 그 재실은 문을 닫았다. 더불어 모두에게 잊혀졌고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집은 없어지고 터만 남게 되었다. 그러나 어느 시대든지 근본주의 성향을 가진 이는 있기 마련이다. 그들은 기능이야 언제든지 필요에 따라 옮겨갈 수 있지만 원형은 원형으로서 나름대로 영원한 의미를 지녀야 한다고 믿는다. 그런 까닭에 없어질래야 없어질 수 없는 것도 있다는 신념이 삶의 밑바탕에 깔려 있다. 영조 때 참봉 나삼이 그랬다. 그는 있어야 할 것이 없어져버린 사실에 대하여 참으로 비분강개하였다. 급기야 개인재산을 털어 1745년 폐사지를 다시 살려냈다. 그이 덕분에 오늘 나도 하룻밤을 묵어갈 수 있게 된 것이다.

 

금몽암은 그 이름부터 예사롭지 않았다. 단종이 유배를 오기 전 ‘대궐(禁:대궐 금)에 있을 때 꿈에 나타난 그 집’이라는 것에서 연유한다. 하지만 사실이 그렇더라도 드러내놓고 말할 수도 없는 형편이었다. 그리고 그런 사실 자체가 또다른 오해를 낳을 수 있는 우려가 있었기 때문이다. 말 만들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능히 시비거리가 될만한 이름인 셈이다. 어리고 소심한 단종은 역으로 ‘꿈에서도 돌아갈 대궐을 생각하는 집’으로 비칠까봐 그 자신이 스스로 저어기 두려워 했을 것이다. 그런 속마음을 들킬까봐 그 마음 속까지 조심해야 할 시절이었다. 그래서 ‘절대로 돌아갈 것을 꿈도 꾸지 않는(禁:금할 금)집’으로 새겨듣도록 다시금 사족을 달아야  했던 건 아닐까.

 

결국 살아서는 돌아가지 못했다. 사약을 받은 뒤 몇백년 후에 복권되어 다시 왕으로 추존되었고 거적대기로 둘둘 말다시피 하여 장례를 치루었던 그 초라한 무덤은 한양도성에서 가장 멀리 떨어지긴 했어도 제대로 왕릉으로서 격을 갖춘 장릉으로 승격되었다. 그리하여 꿈에나마 대궐로 돌아갈 수 있는 신분이 되었던 것이다. 그야말로 ‘금몽암의 꿈’은 이루어진 것이다.

 

꼬장꼬장한 원칙주의자들은 도인무몽(道人無夢)이라고 했다. 하긴 현인은 공허한 꿈을 꾸지 않는 법이다. 이를 부연하여 반야심경에서는 ‘잘못된 몽상은 빨리 벗어나라’고 했다. 하긴 몽상은 쓸데없는 소리를 늘어놓기 마련이다. 그런 ‘몽한’ 사람들을 위해 암주스님은 대문의 두 기둥에 달아놓을, 눈물이 쏙 빠질만큼 매몰찬 주련을 미리 준비해 놓았다.  

 

 야유몽자불입(夜有夢者不入)하고

 구무설자당주(口無舌者當住)하라

 밤에 잡꿈이 많은 자는 아예 들어오지도 말고

 입 안에 혀가 없는 자만이 마땅히 머물러라.

 

어쨋거나 꿈은 몽상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희망이기도 하다. 모든 현실이 녹록치 않는  무자년 12월, 아득하게만 느껴지는 ‘꿈★은 이루어진다’는 그 꿈을  다시 한번 꾸면서 올 한 해를 마무리 짓고 또 내년을 맞이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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