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묵 스님 입적
정동길은 덕수궁 돌담길을 휘돌아 감으면서 백여 년 된 근대문화유산이 여기저기 자리를 잡고 있는 운치있는 문화의 거리이다. 해질 무렵 그 길을 걸었다. 떨어진 잎새들이 걸음을 옮길 때 마다 발끝에 채였다. 도심도 조락(凋落)의 계절임을 비로소 느끼게 된다. 가을바람은 나무들로 하여금 불필요한 것을 모두 털어내게 만든다. 그리고 스스로 가지치기까지 마친다. 운문선사는 이런 풍광을 보고 체로금풍(體露金風)이라고 했다. 하지만 그 잎은 떨어져 다시 뿌리로 돌아간다. 낙엽귀근(落葉歸根)인 것이다. 이렇게 자연은 순리대로 돌고 돌기 마련이다. 인간사 역시 그러할 것이다. 산중노덕의 기일(忌日)이 유독 가을철에 몰려 있는 것도 이런 가르침을 몸소 보여주신 것이라 여겼다. 삶과 죽음 역시 순환의 과정임을 ‘서산에 해가 지면 동녘에 달이 뜬다’라고 고인들은 에둘러 노래했다.
정동길 끝자락의 오래되지 않은 붉은벽돌 건물에서 생명평화를 위한 모임이 마련되었다. 불을 끄고 생태환경을 주제로 한 슬라이드를 한참 돌리고 있는데 휴대폰의 진동은 빛과 함께 몇 마디 문자를 토해낸다. 도반스님의 임종을 알리는 소식 이었다. 순간 떠오르는 한 마디.
‘달은 져도 하늘을 여의지 않는다’
“죽어도 좋고, 살면 더 좋고.”
그는 수행생활을 하면서 늘 크고 작은 일 앞에서 결단이 필요할 때마다 습관처럼 농담처럼 이 말을 곧잘 내뱉곤 했다. 선방을 전전하던 선객답게 현실문제도 늘 백척간두에서 한걸음 더 내딛는 마음으로 실타래같이 꼬여가는 번뇌를 일거에 해결하곤 했다.
오십이 채 못된 나이지만 이미 영단은 흰 국화로 꾸며져 있었다. 붉은 철쭉꽃을 배경으로 엷은 미소를 짓고있는, 실제보다 십년은 젊어보이는 영정 표정은 죽었다는 사실조차 잠시 망각하게 만든다. 문상을 마치고 마당으로 나서니 즐비한 조화(弔花)의 꼬리표 가운데 적혀있는 한 마디에 눈길이 머무른다.
‘달은 져도 하늘을 여의지 않는다.’
하지만 임종한 그를 위한 언어가 아니라 그 앞을 오가는 살아있는 사람을 위로하기 위한 말로 들렸다. 여타의 상투적인 문구는 보낸 사람의 이름자가 더 크게 보였다.
해인사에 살 때 일이다. 어느 가을날 입적한 노승의 조문객 행렬이 끊어진 틈을 이용해 방명록을 뒤적거렸다. 한 마디 한 마디가 모두 선시(禪詩)였다. 그 가운데 누군가 검은 먹물의 유려한 필체로 써내려간 그 구절은 지금도 기억에 생생하다.
“안광낙지(眼光落地)하니 천지실색(天地失色)이라.”
형형하던 눈빛이 땅에 떨어지니 하늘과 땅도 제 빛을 잃었다고 했다. 선지식이 열반에 드니 삼라만상 모두가 슬퍼한다는 절절한 조가(弔歌)였기 때문이다.
어둔 밤 불을 켜니 그가 선물한 난분이 마중
성묵 스님은 키가 컸고 목소리는 늘 괄괄했다. 선방에서 조는 이의 등짝을 사정없이 내리치는 죽비에는 늘 힘이 가득했다. 함께 개성과 금강산도 다녀왔고 중국 사천성 아미산도 같이 순례했다. 꼭대기의 금정(金頂)에서 산입구의 청음각(淸音閣)까지 그 길고 험한 길도 며칠동안 함께 걸었다. 서울광장 시국법회 때도 연단에 선 그의 모습은 의연했다. 하지만 두 달 이후에 열린 대구 두류공원의 ‘성시화 운동 주도 공직자 명단공개 및 거부운동’ 선언광장에는 그는 흔적이 없었다.
타고 남은 건 항아리에 담긴 한 줌의 재 뿐이였다. 어디로 갔을까? 예나 지금이나 참으로 궁금한 일이다. 그러나 돌아서면 천년만년 살 것처럼 모두가 잊어버리는 낯선 영역이기도 하다.
이 문제에 대하여 송나라 시대에 이루어진 제자와 스승이 나눈 소박한 문답이 절집에 전해져온다.
“죽은 후에는 어디로 갑니까?”
“불 꺼진 뒤에 남아있는 한 줄기 띠풀이니라.”
그저 다비 후에 눈에 보이는대로 아무런 꾸밈없이 한 마디 내뱉은 말이지만 또다른 달관의 경지를 보여준다. 그저 이렇게 왔다가 이렇게 갔을 뿐인데 보낸 이들의 머리 속은 여전히 어지럽고 마음 한켠은 저림과 함께 허전해온다.
“나를 아는 사람들이 모두 이 세상을 떠난 뒤에 죽어야겠군.”
오는 길에 혼자 이렇게 중얼거려본다. 가당치도 않는 말이지만 그래야만 나로 인하여 어느 누구도 가슴 아픈 사람이 없을 것 같기 때문이다. 밤늦게 숙소에 도착했다. 어둔 밤에 불을 켜니 그가 선물한 난분이 그 모습 그대로 나를 맞아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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