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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심정 순례기

2.호랑이도 보호한 수레기어머니 손임순

등록 2007-06-12 18:30

② ‘수레기 어머니’ 손임순아홉 자식 가슴에 묻고 모두의 어머니가 되었다

 

“엄마 엄마 불이 계속 우리를 따라와. 엄마 저기 봐 불이 우리를 비추어줘.” 

전남 화순군 도암면 등광리 개천산. 칠흑처럼 어두운 밤 엄마 등에 업힌 사내아이는 계속 그들을 쫓아오는 불을 보고 있었다. 그렇게 불은 마을 어귀에 있는 집에 이르도록 따라오곤 했다. 그 불은 개천산 어미 호랑이의 눈에서 뿜어져나오는 것이었다. 

자식들 낳는 대로 죽고 자신도 나병 걸려 고통 이세종 선생 말씀 훔쳐듣고 감화해 수도자 삶 “병조차 자신에게서 나온 것” 구도계기 삼아 

개천산의 ‘그리스도교 도인’ 이세종의 가르침을 받던 엄마 등에 업혀 개천산 중턱의 산당을 오가며 그 호랑이불을 보았던 아이는 이제 머리가 새하얀 노인이 되었다. 이원희(75) 장로다. 그의 모친 손임순(1893~1963)은 폭포가 있는 인근 ‘수락기’ 마을에서 시집을 온 수락기댁이었는데, 사람들은 소리 나는 대로 수레기댁이라고 불렀다. 또 광주, 남원, 벽제, 화순 등에 있는 수도공동체인 동광원에서 그를 ‘신앙의 어머니’로 등불 삼아 수도하는 개신교 여성수도자들은 ‘수레기 어머니’로 칭했다. 

그는 이 마을 최고 부잣집에 시집을 와서 아기를 쑥쑥 잘 낳았다. 그러나 아이는 낳는 족족 예닐곱살이 못 되어 세상을 떠버렸다. 그렇게 가슴에 묻은 자식이 무려 아홉이었다. 그는 당시 유행하던 보천교에 귀의해 3년간 열심히 기도했다. 하지만 시부모에게 물려받은 전답과 집마저 탕진했고, 다리엔 오목하게 파인 상처가 생겨났다. 그는 바늘로 상처를 찔러보았다. 감각이 없었다. 나병이었다. 자식을 모두 앞세워 보내고 가산을 탕진한 채 자신마저 나병에 걸려 죽게 생겼으니 기막힐 노릇이었다. 

그즈음 한 마을에 사는 이세종은 기독교를 접한 뒤 환골탈태해 예전과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 산당에서 성경을 가르치고 있었다. 수레기댁은 어느 날 아홉번째 낳은 아들을 둘러업고 산당으로 올라가 이세종의 말을 훔쳐들었다. 그때 이세종은 마치 거울을 들여다보며 단둘이 얘기하듯 그의 고통과 갈증을 해소해주었다. 그때부터 그는 이세종의 제자가 되었다. 

그런 어느 날 수레기댁의 꿈속에 갓을 쓰고 하얀 옷을 입은 노인이 나타나 “네가 3년 동안 열심히 기도했는데도 너를 위해 해준 것이 없다”며 “네 병은 내가 가져가겠다”고 했다. 그 꿈에서 깬 뒤 나병이 거짓말처럼 사라져버렸다. 그러나 시련은 끝나지 않았다. 아홉째 자식마저 또 세상을 뜬 것이다. 수레기댁이 낙심해 행여 삶을 포기하지나 않을지 걱정이 된 이세종이 방문을 열어보자 수레기댁은 죽은 아이를 그대로 둔 채 먹을 갈고 있었다. 그는 이미 싸늘해져버린 시신에 집착하기보다는 성경을 통해 새 생명을 얻기 위해 그렇게 한글을 배우고 있었다. 

수레기댁이 열째 자식인 원희를 낳자 이세종은 “더 이상 자식에도 재산에도 집착하지 말고 하늘을 울 삼고 땅을 벗 삼으며 순결의 삶을 살라”고 했다. 그는 그때부터 남편을 설득해 금욕하며 수도자의 삶을 살았다. 

이세종이 말년에 산당을 떠나 인근 화학산 도구밭골로 가기로 하자 수레기댁은 자신이 산당에서 기도하겠다고 했다. 그러자 이세종은 이곳은 대낮에도 범인은 혼자 살 수 없는 곳이라고 했다. 훗날 빨치산의 은거지가 될 만큼 골이 깊었던 이곳은 늘 호랑이가 우글거리는 호랑이 소굴이었다. 여자 혼자서 이 산중의 산당에서 밤을 지새운다는 것은 어림없어 보였다. 

그러나 수레기댁은 이에 아랑곳없이 홀로 기도했다. 그렇게 몇날며칠이 흘렀다. 칠흑 같은 밤 산당 안이 대낮처럼 밝아왔다. 눈을 떠도 눈을 감아도 너무나 밝은 빛을 피할 도리가 없었다. 빛을 본 것이다. 그 뒤 수레기댁은 한밤중에도 산중을 오르내리며 성경을 전하러 다녔는데 그때마다 집채만한 호랑이가 눈에 불을 켜고 불을 밝혀주었다고 한다. 

늘 헌신적인 수레기 어머니는 자비롭기 그지없어 그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안락을 누리게 했다. 그러나 자신에겐 엄격하기 그지없었다. 아파도 약을 쓰지 않았다. 

“어머니는 모든 병이 자신으로부터 나온다고 했다. 병이 나면 자신을 되돌아보라고 했다. 누구에게 잘못했는지, 삶을 어떻게 잘못 살았는지 자신을 돌아보라는 것이었다. 이를 참회하고 고쳐서 병을 낫게 했다.” 

이원희 장로의 회고를 듣던 이세종기념관의 심상봉 목사는 “발병발도심”(發病發道心)이라고 표현했다. 수레기어머니는 병을 절망 삼은 게 아니라 ‘구도의 계기로 삼았다’는 것이다. 

개천산을 내려와 수레기 어머니의 집터가 있던 ‘광구(光求)터’에서 솟는 물에 손을 대보니 어쩐 일인지 한기를 녹이는 온기가 솟아난다. 산짐승의 마음까지 녹여버리곤 했던 수레기 어머니의 그 자비심을 전해주듯이. 글·사진 조현 종교전문기자 (한겨레신문 2007년 1월 31일자) 

[이 기사의 자세한 내용은 <울림 - 우리가 몰랐던 이땅의 예수들>(한겨레출판 펴냄)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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