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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심정 순례기

홍성 풀무학교

등록 2005-10-28 22:58

오리농법 ‘씨앗’ 뿌린 풀무학교 사제의 ‘생명 풀무질’

“허허~ 농사도 짓고, 오리가 효자여” 유기농 쌀 찾는 소비자 늘어 예약판매하는 홍성 문당마을 

익어가는 생태마을 꿈 뒤쪽엔 스승과 제자의 외길 노력이… 

무농약농사 실천 주형로씨에 10년전 오리농법 권한 홍순명교장 “선생님께 희망을 배웠습니다” “사심없는 자네 노력덕분이지” 

“어서 와. 식사하시게. 낮에 행사장에 가서도 자네 얼굴도 못보고 왔어.” “손님이 워낙 많이 와 선생님이 오신 것도 몰랐네요.” 

머리를 긁적이는 제자를 보는 스승의 얼굴이 따사롭다. 

지난 6일 충남 홍성군 홍동면 문당리 환경농업교육센터 뒤 솔숲에서 벌인 ‘오리 입식’ 잔치의 손님을 맞느라 점심조차 제대로 챙겨 먹지 못하고, 해거름에야 인근 풀무학교 전공부 식당으로 들어선 제자 주형로(42·문당마을 지도자)씨를 본 홍순명(65) 교장이 남다른 눈길로 음식을 권했다. 

이날 9개 마을에서 나눠 열린 ‘오리 입식’ 잔치엔 수도권의 오리쌀 소비자와 어린이 등 무려 3천~4천명이 참석해 농민들이 준비한 떡과 고기와 막걸리로 한바탕 잔치를 벌이고, 직접 논에 새끼 오리를 풀어주었다. 

쌀 수매가 어려워지면서 파산 위기에 처한 대부분의 벼재배 농가의 분위기를 문당마을에선 찾아볼 수 없었다. 

오리농법으로 짓는 유기농 쌀을 찾는 소비자가 늘어 이곳에서 수확이 예상되는 5만가마(가마당 40㎏)가 벼를 심기도 전에 모두 예약 판매됐기 때문이다. 

다른 농가들로선 부럽기만 한 이런 기적 같은 일은 풀무학교의 사제지간인 홍순명-주형로씨의 사랑과 존경이 그 씨앗이 되었다. 1992년 초 주씨는 “주군에게”로 시작하는 편지 한 통을 받았다. 편지 속엔 “자네에게 꼭 필요할 것 같아 보내준다”는 홍 교장의 글과 함께 일본의 농민잡지의 <오리농법>에 대한 기사와 번역문이 들어있었다. 스승에게서 배운 대로 땅에 농약을 뿌리지 않고 농사를 짓느라 하루종일 김을 매고, 꿈에서마저 밤새 김을 매느라 야위어가는 농사꾼 제자를 보고 마음이 아팠던 스승의 사랑이 담긴 편지였다. 

모내기 뒤 새끼 오리를 이삭이 패기 전까지 달포 간 논에 넣어두는 오리농법은 오리가 떼지어 다니며 흙탕물을 일으켜 풀의 발아를 막고, 나온 풀들도 뜯어먹도록 한다. 

농약을 할 필요도 없고, 김을 매지 않아도 되는 이 방법이야말로 흙도 살고, 농민도 살 수 있는 비책으로 생각한 주씨는 이를 ‘함께 해보자’며 마을 사람들에게 권유했다. 그러나 농민들이 희한한 농사법에 선뜻 응할 리 만무했다. 겨우 동네 후배 곽민기씨만이 그의 제안을 따라 둘이 1000평씩 오리 농법을 시작했다. 그런데 마을 주막 앞 곽씨의 논에서 오리들이 풀을 뜯어먹고 벌레를 잡아먹는 모습을 보고 어른들은 “허허, 오리가 농사 다 짓네”라며 신기해했고, 다음해엔 19농가가 3만1900평에 오리농법으로 농사를 지었다. 

봄에 새끼 오리를 사서 넣어주고 가을에 쌀로 받는 ‘오리 보내기’와 ‘오리 입식 행사’, 또 ‘가을걷이 나눔의 축제’ 등 도시 소비자와 농민이 함께 어우러지도록 문당리 농민들이 낸 온갖 아이디어가 소비자의 관심을 끌어냈고, 드디어 ‘쌀 계약 재배’를 뿌리 내리게 했다. 

농민들이 일반 쌀보다 30%나 더 비싸게 받고 농사를 지을 수 있게 되자 오리쌀 재배 면적은 지난해 32만평으로, 올핸 홍동면 전체 면적의 3분의 1이 넘는 108만평으로 늘었다. 

홍동면 들판은 900평 단지마다 50~60마리의 새끼 오리들이 ‘농촌의 희망을 몰고’ 푸릇푸릇한 벼 사이를 떼지어 누비는 모습으로 그야말로 장관을 이룬다. 

주씨는 이날 피로도 뒤로한 채 전문 농사꾼을 길러내려는 2년 과정으로 지난해 문을 연 풀무학교 전공부에서 후배학생 10여명과 방문자들에게 체험을 들려주었다. 

그는 “중학교 때까지 배구 선수를 해 공부에는 전혀 흥미가 없었고, 풀무학교가 농고라고 ‘똥통학교’로 멸시를 당했지만, 홍 선생님이 모든 것을 긍정적으로 생각하도록 해 희망을 가꿀 수 있었다”고 말했다. 

홍 교장과 주씨의 만남은 절묘하기까지 하다. 네대째 훈장을 해온 홍 교장은 독서광이며, 영어와 독어, 일어, 중국어까지 독학으로 수준급에 이를 정도로 학구적이다. 농사꾼이자 대장간집 아들인 주씨는 지금도 거의 책은 거들떠보지도 않는 책상물림과 달리 일의 추진력에선 남의 추월을 불허한다. 

주씨는 “홍 선생님이 가르쳐 주시는 대로만 했을 뿐”이라고 겸허히 말했고, 기도하듯 애제자의 강연을 경청하던 홍 교장은 “주군이 사심이 없기에 사람들의 마음을 모아 마을을 변화시키는 게 가능했다”고 말했다. 

스승은 풀무질로 바람을 일으켰고, 제자는 불로 타올라 땅과 인간에 생명을 불어넣고 있다. 홍성/글·사진 조현 기자 cho@hani.co.kr(한겨레신문 2002년 6월 13일자)

변화의 주역 풀무학교 홍성 ‘유기농 환경공동체’의 젖줄

충남 홍성군 홍동면의 문당마을은 주민들이 돈을 모아 환경농업센터(041-631-3538)를 지어내고, ‘21세기 문당리 발전 백년 계획’까지 마련한 곳이다. 지난 2월엔 환경부로부터 자연생태 우수마을로 지정됐다.

환경운동가들과 농민들이 이곳에서 비전을 보는 것도 1970년대 새마을운동이 관 주도였던 것과 달리 주민들이 스스로 공동체를 가꿔가며 발전하고 있기 때문이다.

공동체는 문당리만으로 한정되지는 않는다. 넓게는 홍동면, 나아가 홍성군 자체가 ‘유기농 환경 공동체’로 변화하고 있다.

그 변화의 축에 풀무학교가 있다. 풀무학교는 교회라는 틀을 넘어 아름다운 생태의 회복을 바랐던 함석헌, 김교신 등 무교회주의자들과 뜻을 함께 한 이찬갑, 주옥로 선생 등에 의해 58년 설립됐다. 

그 이후 국가적인 공업화 정책으로 농고에 대한 푸대접은 이만저만이 아니었고, 이 지역에서도 멸시를 당해 입학생이 2~5명에 불과할 때도 있었다. 그러나 학교 초기부터 몸담아온 홍순명 교장 등은 주위의 평가에 아랑곳하지 않고, ‘진리와 이웃과 자연과 더불어 살자’는 가르침으로 묵묵히 외길을 걸었다. 더구나 홍 교장은 6명의 자녀를 모두 풀무학교에 보냈고, 제자인 주형로씨도 중학교 선생님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이번에 대학에 들어간 아들 하늬에 이어 무늬까지 풀무학교에 보냈다.

〈녹색평론〉 편집장 출신으로 주씨의 권유로 이곳으로 귀농해 풀무학교 전공부 교사 겸 문당리 동곡마을 작목반장으로 일하는 장길섭(41)씨는 “풀무학교를 졸업한 이들이 귀농자들과 함께 각 마을과 생산자협동조합, 신용협동조합, 홍성신문 등을 통해 건강한 지역공동체를 만들어가는 주축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홍성/조현 기자 (한겨레신문 2002년 6월 13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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