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야교회 임명희 목사 버려진 사람들 새삶 일궈…영등포 뒷골목 ‘작은 기적’
서울 영등포구 영등포2동 423-93. 화려한 백화점과 영등포 역사를 돌아서 들어간 뒷골목은 전혀 딴판이다. 길바닥에 주저앉아 술을 마시는 노숙자와 매춘을 유혹하는 삐끼들이 먼저 맞는다.
화장실도 세면대도 없는 한 칸짜리 쪽방 780여개와 매춘업소가 밀집해 있는 바로 이 골목에, 부랑아와 장애인 등 100여명이 함께 사는 광야교회가 깃을 치고 있다. 허름하고 어두컴컴한 예배당에선 10여명이 누워 잠을 자거나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다. 얼굴이 하얗고 키가 큰 수도사 인상의 임명희(44) 목사는 장기를 두는 이들과 허물없이 얘기하고 있었다. 갑자기 밖이 요란했다. 또 싸움이 일어났다. 임 목사가 밖에 나가자마자 이 동네에 사는 중년 남자가 “저런 미친 노인네를 언제까지 끌어안고 살거냐”며 “빨리 이 동네에서 내보내라”고 임 목사를 향해 소리를 지른다. 싸움을 말리는 데 이골이 났지만 이제 디스크까지 발병해 말릴 수도 없는 임 목사는 싸움 당사자들을 달래며, 하릴없는 하소연을 듣기 시작한다. 한 동네 사람에게 “이런 일이 자주 있느냐”고 묻자, “저건 싸움 축에도 들지 않는다”고 말한다. “칼로 찌르는 일도 예사”라는 것이다. 그러고는 “목사님은 간도 쓸개도 없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온갖 봉변을 다 당하면서 어떻게 14년간 저들을 끌어안고 살 수 있겠느냐”고 그는 덧붙였다.
부랑아·장애인들과 동거 14년 “간도 쓸개도 없다” 소리 들으며 난폭하던 그들에 사랑 베풀어 “이 행복감 무엇과도 못바꿉니다”
아세아연합신학대에 다니면서 중국 선교를 준비하던 그가 전혀 다른 행로로 접어든 것은 1987년이었다. 길거리전도를 하던 중 이곳을 본 그는 “어떻게 서울에 이런 곳이 있나” 하며 놀랐고, 어딜 가나 교회가 없는 곳이 없는데, 이곳만은 교회도 없고, 버려진 이들을 돌보는 이가 전혀 없다는 데 분노했다. 한 교회의 교육전도사였던 그는 틈만 나면 이곳으로 왔다. 길거리의 부랑아들이 한뎃잠을 자고 있으면 따뜻한 방으로 데려가 재우고, 술을 먹고 구토하면 몸과 옷을 씻어주었다. 라면을 끓여 속을 풀어주면서 말벗이 되기도 했다. 쪽방에서 조금씩 죽어가는 사람들에게 쌀과 연탄과 김치를 갖다주었다.
이 골목에서 주먹대장 노릇하다가 병들어 죽어가던 일명 ‘하야시’도 그 중 한 사람이었다. 그는 “죽기 전에 목사님을 돕고 싶다”며 시가 70만 원 하던 방 한 칸을 10만 원에 임 목사에게 넘겨줘 그곳에서 교회를 시작하도록 했다. 교회가 생기자 갈 곳 없는 부랑아, 장애인, 매춘부들과 함께 교회에서 살면서 시장에서 시래기를 주워오고 수제비와 라면을 끓여 먹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예배 도중 골목 주먹패들에게 끌려가 “술 마시는데 교회 찬송이 시끄럽다”며 몰매를 맞는 곤욕을 치르곤 했다. 96년까지 이곳에서 함께 살던 세 자녀는 골목 사람들의 말투를 닮아 욕을 입에 달고 다녔다. “돈이 없다”며 아내가 돈을 주지 않으면 아이들은 “다른 여자처럼 남자들을 데려와 자면 되지 않느냐”고 대꾸해 가슴이 미어진 적도 있다. 그러나 세상에서 의지할 곳 없는 사람들이 이곳에서 안식을 찾는 모습을 보는 행복감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었다. ‘하야시’는 14년 전 “이곳에서 한 명이라도 변화시키면 그것은 기적일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 교회의 주방장과 관리요원도, 운전기사도 모두 길거리에서 이곳으로 들어와 안식을 찾고 이제 남들을 위해 봉사하는 사람들이다.
“나는 할 수 없지만, 하나님은 할 수 있습니다.” 임 목사가 있는 영등포 뒷골목에서 지금 작은 기적들이 일어나고 있다. (02)2636-3373. 글·사진 조현 기자 (한겨레신문 2002년 8월 2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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