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짬] 한국선문화연구원장 성본 스님
달마와 혜능과 서산과 경허의 선문답을 몇 마디 얻어들은 이들도 저마다 선(禪)과 깨달음과 견성과 해탈에 대해 말한다. 그래서 선가(禪家)에서는 개구즉착(開口卽錯)이라고 했다. ‘입만 열면 잘못된 말이 나온다’는 뜻이다. 그 때문일까. 성본(70·사진) 스님은 선을 가장 체계적으로 배운 선승임에도 오래도록 입을 열지 않았다. 한국선문화연구원장인 그가 최근 <선불교개설>(민족사 펴냄), <돈황본 육조단경>(개정증보판)을 동시에 출간했다. 그를 지난 22일 서울 종로구 견지동 민족사 사무실에서 만났다. 그가 개인적으로 언론과 인터뷰한 것은 처음이다.
동국대 정년퇴임 이후 7년간 집필
선어록 나침반 삼아 ‘선불교개설’ 펴내
‘돈황본 육조단경’ 개정판도 함께
“진정한 선은 사바세계에서 필요” 서른살 때 일본 유학 8년간 정진
“중국 송대 그대로 실참해 큰충격”
국내 고승들의 법문이 대부분 교학적 근거와 관련없이 개인적 체험에 의존하고 있는 것과 달리, 그의 책은 수천 년간 검증된 조사들의 어록에 철저히 근거하고 있다. 따라서 ‘선(禪)이 무엇이고, 깨달음이 무엇인지’ 분명한 언어로 전달한다. 7년 전 동국대에서 정년퇴직한 뒤 선어록 집필에만 몰두해온 그가 지난해 탄허불교아카데미(탄허강숙)에서 했던 선 강의는 ‘선의 진수’에 목말라하는 수행자들의 갈증을 해소해 주는 명강의였다. 코로나19 사태로 월정사 부설 탄허강숙 강의도 중단되면서 그는 요즘 주로 대구에 머물며 소수를 위한 선 세미나를 진행 중이다. 더불어 그가 중국 선의 최고 정점으로 꼽는 천동굉지의 공안집인 <종용록> 출간도 준비 중이다.
대부분의 선승들이 책을 멀리하고, 참선만을 중시한 것과 달리 그는 철저히 선어록을 나침반으로 삼는다. 20대 초반 출가한 그도 처음엔 ‘참선만 하라’는 엄명을 받고 강원과 선원을 오갔다. 그래도 공부하고 싶은 마음에 동국대 불교학과를 나온 그에게 일본에서 선교학을 제대로 공부해보라고 권한 것은 해방 전 일본에 유학했던 조계종 종정 서옹 스님이었다. 그는 30살에 일본으로 유학을 갔다. 한국 선가에선 근거 없이 일본 불교를 폄하하지만 그가 직접 본 현장은 달랐다.
“나보다 한참 어린 대학원 입학생들이 한문 원전을 줄줄 외고, 세미나 발표를 해내는 것을 보고, 나는 절집에서 강원과 선원, 대학교까지 마쳤지만 헛되이 세월만 보냈다는 한심함으로 뼈저리게 발심했다.”
그래서 그는 만 8년간 방학 때도 한 번도 귀국하지 않고 학문에 매진했다. 아이치가쿠인대학에서 석사학위를 마치고도, 선학(禪學)의 본산인 도쿄 고마자와대학에서 “왜 그렇게까지 하느냐”는 만류에도 다시 석사학위부터 시작해 박사학위를 마친 것도 제대로 공부하고 싶어서였다고 한다. 그는 특히 “중국 송대의 불교가 그대로 이식된 일본 선원에선 한국 선원과는 달리 안거에 들어가기 전에 조실(사찰 최고 어른)이 선어록을 먼저 강의하고, 송대의 선원청규에 한 치의 어긋남 없이 생활하며 실참하는 것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고 전했다.
성본 스님은 선에 대해 ‘인간 누구나 본래 구족하고 있는 진여일심(참된 본성)을 깨달아 그 지혜로 독창적인 자신의 삶을 창조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따라서 그는 이를 토대로 그간 잘못 회자된 선 풍토를 날카롭게 비판했다. 먼저 그는 참선 수행을 통해 망상을 없애고 고요한 경지에 이른다는 데 대해 활인검을 들이댔다.
“숲에 들어가 조용한 곳에서 고요함을 찾는 것은 선의 정신에서 멀어진 것이다. 선은 현실을 떠나 다른 곳으로 가는 것이 아니다. 연꽃이 진흙 속에서 꽃을 피우듯, 사바세계에서 ‘참된 본성’을 발현해서 살아가는 것이다. 이 사바세계를 떠나 부처들의 세계로 가는 것이 아니다. 부처의 세계에 부처의 존재가 무슨 필요가 있겠는가. 부처와 선이 필요한 것은 이 고통 중생들이 살아가는 사바세계다.”
그는 이어 ‘번뇌 망상을 비우고 없애려고 하는 것은 선이 아니다’라고까지 단언한다. ‘망념을 지혜로 전환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선’이라는 것이다. 그가 선어록의 ‘파자소암’(婆子燒庵)을 강조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파자소암은 한 선승을 20년간 공양한 노파가 16살 손녀를 시켜 선승의 품에 안겨보라고 했을 때 선승이 ‘고목이나 바위처럼 아무런 감정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하자 땡초라고 쫓아내 버리고 암자를 불 질러버렸다는 일화를 말한다.
“인간에게 감정이 없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거짓말이다. 선은 감정조차 없는 고목이나 바위가 되려 하는 것이 아니다. 중생심의 어리석음을 불심의 지혜로 전환하는 것이 선이다.”
그가 코로나로 인한 ‘화’의 극복 방안으로 ‘고전을 읽으라’는 것이나, ‘갈등과 불화를 이겨내기 위해 이기려고 하지 말고 먼저 덕을 베풀어보라’는 것도 어리석음을 지혜로 전환하는 선의 지혜에 따른 것이다. 위대한 선 스승이면서도 평생 화장실 청소를 자처했던 설봉 선사를 가장 존경한다는 그는 나눔과 베풂을 ‘건강한 삶’이라며 이렇게 말했다.
“사과나무가 왜 봄부터 땅의 기운을 빨아들였겠는가, 사과를 맺어 많은 사람에게 나누기 위함이다. 태양도 달도 나무도 모든 만물이 자신의 생명을 불태워 만인에게 나누는 것이다. 그 ‘자연의 도(道)’를 실현하는 것이 부처와 조사(한 종파를 연 선승)들이다. 땅 기운을 자기 혼자 먹고 살찌고, 대접받고 나누지 않는 것은 선이 아니다.”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한국선문화연구원장 겸 동국대 명예교수 성본 스님. 사진 조현 종교전문기자
선어록 나침반 삼아 ‘선불교개설’ 펴내
‘돈황본 육조단경’ 개정판도 함께
“진정한 선은 사바세계에서 필요” 서른살 때 일본 유학 8년간 정진
“중국 송대 그대로 실참해 큰충격”

지난해 서울 종로구 견지동 탄허강숙에서 선(禪)에 대해 강의중인 성본 스님. 사진 탄허강숙 제공

사진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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