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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다 깨달음 조명 이중표교수

등록 2020-04-14 19:29





서구는 근대 ‘개인’의 탄생 이후 개인주의가 발전해왔다. 나치의 집단광기와 무솔리니의 파시즘이 한 시대를 휩쓸기도 했지만. 동양을 개인주의적 자유가 덜 발전한 미개 사회쯤으로 간주한 일부 서구인들의 관점은 ‘코로나19 사태’로도 쉽게 바뀌지 않는다.  코로나19 사망자가 무려 1만4천명이 넘은 프랑스의 한 변호사가 사망자 200여명에 불과한 한국의 감염자 동선 추적과 관련해 “한국은 감시 고발에 있어 세계 둘째가는 나라이며 개인의 자유를 희생시키고 있다”고 비판한 데서도 알 수 있다.  그러나 2600여년 전 석가모니 붓다는 ‘연기(緣起)의 법칙’을 통해 ‘그 어떤 것도 홀로 존재할 수 없다’는 사실상 반개인주의 선언을 했다. 그럼에도 붓다의 깨달음은 기존의 철학이나 경험과는 전혀 다른 것이었기에, 불교 내에서조차 오래도록 곡해됐다.

 

이중표(67) 붓다나라 대표는 이런 곡해를 시정하기 위해 일생을 바친 인물이다. 지난 10일 서울시 종로구 인사동 집필실에서 그를 만났다. 이 대표는 40년 가까이 전남대 철학과 교수이자 전남대 부설 호남불교문화연구소장으로 일했다. 광주·전남 불교계에선 그의 이름을 모르는 이가 거의 없을 정도다.  그러나 그가 고교 때 출가해 승려가 됐고, 외국 유학 한번 간 적이 없지만 독학으로 산스크리트어와 팔리어까지 배우며 초기 불교 경전에 매달려왔다는 사실을 아는 이들은 많지 않다.  전남 화순에서 태어난 그는 호남 최고 명문 광주서중학교를 수석 입학한 준재였다. 광주서중과 광주일고 재학 중 가출을 반복하며 도를 닦겠다고 나서 학교에선 ‘이도사’로 통했다. 그가 불교와 인연을 맺은 것은 화순에서 광주로 함께 통학하던 동향의 2년 선배 학담 스님과 백양사 광주포교당인 관음사에 가면서부터였다. 그는 고2 때인 1970년 광주불교학생회를 결성해 초대 회장이 됐다.   그러다 서울대 법대에 진학했던 학담 스님이 대학 1학년을 마치고 출가했다는 말을 듣고 자극을 받아 가을에 나주 다보사 우화 스님에게 출가했다. 우화 스님은 ‘일자무식에 천하에 못생긴 중’으로 자처했으나 ‘숨은 도인’으로 알려진 인물이다. 지난해 12월 열반한 봉암사 수좌 적명 스님이 우화 스님의 상좌다.

  우화 스님은 까까머리 고교생이 출가하겠다고 하자 “우리 절엔 먹을 쌀도 없으니, 있으려면 쌀이나 가져와 있어 보든지”라고 했다. 그가 쌀 한 부대를 메고 가 부려놓자 “진짜 중이 될랑갑네”라며 받아줬다. 어느 날 우화 스님이 “행자!” 하고 불렀다. 그가 “예” 하고 대답하자 “어떤 놈이 대답을 했는고?”라고 물었다. 그 물음에 그는 철퇴를 맞은 듯이 멍한 상태가 돼버렸다고 했다.  우화 스님은 “잠을 자는 동안에도 화두를 놓쳐서는 안 된다”고 했다. 그렇게 화두를 들던 중 그는 황금 광명으로 충만하고 환희롭고 시원한 상태를 체험했다. 그러나 우화 스님은 “설사 부처님이 와서 뽀뽀를 해도 체험을 붙잡고 따라다녀선 안 된다”고 경고했다.  그리고 “행자! 무등산이 먼저 생겼어? 행자가 먼저 생겼어?”라고 물었다. 눈에 보이는 ‘세계’가 ‘밖의 사물’인지 ‘내 마음 거울에 비친 것’인지 물은 것이다. “다음해 신학기에 복학했으니 불과 4~5개월 머물렀건만 내 인생의 절반을 그 절에서 지낸 것처럼 하루하루가 생생하다.”  그는 복학해서도 다시 관음사 주지 상인 스님에게 출가해 전남대 철학과를 거쳐 군 제대 후까지 승적을 유지하다 환속했다. 대학 졸업 후엔 상경해 동국대 불교대학원에 재학하며 동대 고익진 교수 댁에서 2년 동안 함께 살며 불교를 절차탁마했다. 그런데 어떤 책을 봐도 붓다가 깨달은 연기법을 이해할 수 없었기에 붓다의 말씀을 통해 직접 이해해야겠다고 생각해 독학으로 고어를 배워 초기 경전들을 독파했다. 
이를 통해 그가 쓴 <불교란 무엇인가> <니까야로 읽는 반야심경>(불광출판사) 등은 깨달음의 원형을 제대로 파악할 수 있는 수작으로 꼽힌다. 그가 전남대출판사에서 오래전 펴냈던 <붓다가 깨달은 연기법>도 곧 불광출판사에서 재출간할 예정이다. 2014년부터 서울에서 초기 경전 공부 모임을 시작한 그는 2018년 교수직 정년퇴직 후 본격적으로 서울에서 전법에 나섰다. 지난해엔 그의 책을 보고 감동을 한 기업가가 서울 강남구 역삼동 사옥 공간을 내줘 붓다나라 법당을 꾸렸다. 이 대표는 미국의 여성생태학자 조애나 메이시의 노작을 최근 <붓다의 연기법과 인공지능>이란 이름으로 번역해 출간했다. 그가 이 책에 꽂힌 것은 그동안 자신이 발견한 연기법을 상호인과율이란 관점에서 잘 설명해주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종교와 철학은 원인을 좇아 거슬러 올라가 본질적인 실체를 파악하려 한다. 그러나 붓다는 모든 현상이 상호의존성에 근거를 두고 있다고 보고, 결과보다는 과정을, 본질보다는 관계를 중시한다.

 

따라서 연기법의 관점에선 ‘나 아닌 것’으로부터 나를 분리할 수 없다. 그래서 ‘나는 선이고 너는 악’이라는 피아의 이분법에 익숙한 이들에겐 코페르니쿠스적인 대전환 없이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연기법의 관점에선 행불행을 결정짓는 것도 목적이 아니라 과정이며, 나 개인이 아니라 ‘너와 나의 관계’에 있다. 행복의 관계란 일방적 전체주의가 아닌 상호존중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개인주의가 발달하면 위기 상황에서 나만 살겠다는 사재기가 성행한다. 코로나는 ‘나는 내 마음대로 할 거야’라는 개인주의로는 다 죽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 대표는 “서구에서 근대 기독교적 가치관이 무너진 뒤에도 신을 정점으로 한 피라미드 계급구조는 그대로 남았다”며 “즉 계급 세습은 사라졌지만, 협력과 배려를 통해 공동체적으로 공생하는 게 아니라, 이제는 상류층의 소수 자리를 놓고 투쟁과 경쟁을 통해 강한 자가 이를 쟁취하고 약자를 짓밟는 것을 당연시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미 붓다가 2600년 전 연기법을 통해 발견한 진리를 다시 강조했다. “모든 것은 연결돼 있고, 서로 의존적이다. 모두가 불행한데 나 혼자만 행복할 수도 없고, 모두가 병에 걸렸는데 나 혼자 건강할 수도 없다. 관계가 건강해야 나도 사회도 건강해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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