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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심정 조현이만난사람

죽을지언정 대화하고 소통해야한다

등록 2013-03-13 18:49

넬레스 테베이 신부

박근혜 대통령은 대선 닷새 전인 지난해 12월13일 충북 제천시 봉양읍 베론성지에 있는 지학순(1921~93) 주교의 묘지를 참배했다. 지학순 주교는 1974년 ‘박정희 정권의 유신헌법은 무효’라는 양심선언으로 구속돼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 결성의 기폭제가 된 인물이다. 박 대통령이 눈길을 밟아 ‘민주화 운동의 상징’인 지 주교를 찾아간 것은 자신이 반대세력과도 대화하고 소통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것이었다. 그러나 지난 3개월간 박근혜 대통령과 지 주교의 가치가 소통될 수 있으라는 기대는 옅어가고 있다. 봄이 왔지만 남북한과 남남갈등은 더욱 꽁꽁 얼어붙고 있다.

 지난 12일에도 남태평양 파푸아섬에서 온 원주민이 지 주교의 묘소를 찾았다. ‘제16회 지학순정의평화상’ 수상자인 넬레스 테베이(49) 신부다. 그는 독립국가로 살아가려는 파푸아와 이를 용납지않는 인도네시아 간에 무려 10만여명이 죽고 죽인 ‘불통의 땅’에서 왔다. 그러나 그는 ‘내가 죽을지언정 소통과 대화의 길만은 포기하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테베이 신부는 1992년 사제로 서품을 받은 이후 <자카르타포스트> 기자로서 파푸아 문제를 기사와 책으로 썼다. 이어 이탈리아 로마에서 공부하고 돌아온 뒤엔 파푸아평화네트워크(PPN)를 결성해 파푸아-인도네시아 간 대화를 이끄는 평화운동가로 활동하고 있다. 

 240개 부족이 평화롭게 살던 그의 고향 파푸아에 폭풍이 불어닥친 것은 50여년 전이다. 1883년부터 네덜란드 식민지였던 파푸아는 1961년 의회를 창설해 ‘웨스트파푸아’라는 나라로 독립을 준비하던 중 인도네시아의 무력침공을 당했다. 1969년엔 유엔의 주관하에 독립여부를 묻는 찬반투표를 방해한 인도네시아에 합병됐다.

 폭력은 끝나지 않았다. 1965년 결성된 파푸아해방운동 등 반군 등이 게릴라 무장투쟁을 벌이고 있다. 내부 양상도 복잡하다. 인도네시아 군부가 다른 섬 주민들을 대거 이주시킨 탓에 290여만명이던 인구가 450여만명으로 불어나며 독립 찬반파가 나뉘었기 때문이다. 인도네시아 인구의 80%는 무슬림이지만, 파푸아는 네덜란드 식민지였기에 개신교가 70%, 가톨릭이 30% 가량이다.  

 고통의 역사에서 그의 가족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의 삼촌은 인도네시아 군인들에 의해 고문을 받고 살해당했고, 그의 사촌 누이는 군인들로부터 성폭행을 당했다. 파푸아에선 군인들의 성폭행을 고발해봐야 살해나 폭력을 당하는 아비규환이 되풀이된다고 한다.

지난 12일 서울 삼청동 한국비폭력대화문화센터 교육장에서 파푸아 문제에 대해 강의중인 테베이 신부

 이런 와중에도 ‘대화를 통한 해결’을 주장하는 그에 대해 정부와 반군 모두 협박을 멈추지 않았다. 인도네시아 군인들은 “너는 분리주의자 아니냐”며“한번만 더 그런 소리를 하면 너는 쥐도새도 모르게 사라지게 될 것”이라고 협박했다. 군인들의 최첨단 무기에 활로 대응하며 쫓겨다니는 반군들도 “너는 인도네시아편이 아니냐”고 의심하며“관을 준비해 두어야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하지만 그는 대화 노력을 중단하지 않았다. 일간지에 글을 써 인도네시아 수도 자카르타의 여론을 환기시키고, 게릴라들을 찾아 며칠씩 정글 속을 헤매 대화를 나눴다.

 “폭력은 더 큰 폭력만을 불러올 뿐이지요. 2주 전에도 인도네시아 군인 8명이 죽었어요. 그들은 또 보복하려 나서겠지요. 언제까지 서로 보복을 계속해야 하나요?”

  테베이 신부에 대해 협박만 있는 것은 아니다. 파푸아 원주민 쪽에선 그가 그런 소리만 하지 않으면 파푸아 주지사로 추대하겠다는 당근도 제시했다. 그러나 그가 원하는 것은 파푸아의 주지사가 아니라 파푸아의 평화다. 그래서 그는 지난 13일 지학순정의평화상을 수상하며 탄 상금 1만달러(1천만원 가량)도 ‘대화’를 위해 쓰며 평화운동에 전념할 계획이다. 그의 ‘대화론’은 어디서 나온 걸까. 

 “제 어린 시절 원주민들은 공동체들 간에 갈등이 있을 때 대개 제 아버지를 찾아와 해결해달라고 부탁했지요. 아버지는 양쪽을 멀찍하게 앉게 하고 한쪽부터 이야기를 하게 했어요. 이야기 도중에 ‘그건 사실이 아니다’고 반대쪽이 끼어들면, ‘당신도 충분하게 이야기할 기회가 있다’고 말리고 이야기를 계속하게 했지요. 이렇게 이쪽저쪽으로 왔다갔다하며 이야기를 충분히 하게 했어요. 아버지가 합의안을 내놓는 게 아니었지요. 충분한 대화가 계속되는 중에 자기들 안에서 합의가 나왔어요.”

 지난 2011년말 인도네시아 반방 수실로 유도요노 대통령은 파푸아문제를 대화로 해결하겠다고 선언했다. 역사적 진전이었다. 그러나 개최 장소부터 난항이다. 인도네시아는 대화를 자카르타에서 대화할 것을 주장하지만, 반군들든 “자카르타에 가면 군인들이 우리를 죽일 것”이라며 제3의 장소를 요구하고 있다. 대화 원칙은 천명됐지만, 그 사이에도 폭력 사태는 계속되고 있다.

 그는 “폭력은 연기와 같다”고 했다. 어딘가 불이 있기에 연기가 나는 것이기 때문에 불이란 원인을 봐야 한다는 것이다. 폭력은 원인을 보지 못하게 막아버리지만, 대화를 계속하다 보면 원인이 보이고, 원인이 정확해지면 불을 끌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그는 가끔 너무 지칠 때면 휴대폰조차 두고 바닷가로 가서 며칠 내내 수영만 하기도 하지만, 다시 충전해 돌아와 대화운동을 계속한다. 그는 자신을 지탱해주는 것은 ‘신앙’이라고 했다.

 “저를 죽인다면 평화를 위해 죽을 각오가 되어있어요.”

 죽음의 위기 속에서도 소통의 끈을 놓지 않은 테베이 신부는 파푸아의 봄을 맞기 위해 이렇게 말했다. 

“사람들은 상대를 적으로밖에 안봅니다. 그러나 그 적이란 이미지 뒤의 ‘인간’이 있어요. 그 인간을 봐야 합니다.”

  글·사진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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