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영희 선생 사진 제공 <한길사>
오늘은 리영희 선생님 1주기입니다.
보수언론과 우파들은 리영희 선생님에게 빨간 색칠하기에 바빴지만, 그분은 얼마나 청순하고 청초(파란색 일색)했는지 모릅니다.
저도 리영희 선생님을 여러번 뵈었는데, <한겨레> 기자였기 때문이 아니라 단골 식당에서 인연이 됐기 때문이었지요. 서울 을지로 백병원 정문 앞에 죽향이란 식당이 있는데, 그 죽향(粥鄕)이란 이름을 리 선생님이 지어주셨지요. 그 죽향의 사장은 정명숙씨. 1994년 에베레스트를 등정한 여성 산악인인데, 지금은 시간 날 때 북한산이나 오가며, 죽향을 운영하고 있지요.
그 정명숙씨가 리영희 선생님을 깍듯히 모셨지요. 리영희 선생님도 죽집을 좋아하셔서 자주 오셨지요. 그 죽집이 일본인 관광객들에게 인기를 끌자, 그 죽집에 대한 소개글을 일본어로 써주기도 하실 정도였지요.
저도 단골인 그 집에서 리 선생님을 여러번 뵐 수 있었어요. 그 집에서 리 선생님을 뵙게 된 한 기업체의 시이오는 "대학 때부터 리 선생님을 흠모해왔다"며 선생냄 자택의 창호공사를 해주어 따뜻한 겨울을 나도록 하며 각별히 모시기도 했지요.
리 선생님은 돌아가시기 5~6개월 전쯤엔 제가 오지 암자를 기행하고 쓴 <하늘이 감춘 땅>을 읽어보시곤 밥을 사주시겠다고 죽향으로 저를 부르기도 했습니다. 편찮으신 몸으로도 오지 암자 수행자들에 대해 궁금해하시면서 한군데라도 꼭 가보고 싶다고 하시더군요.
하지만 제가 다녀온 곳이 대부분 오지여서 선생님의 몸으로 가시기엔 무리가 따른 곳이었습니다. 선생님이 그렇게 가보고 싶다던 오지 암자를 기어이 가보지 못하고 돌아가셔서 마음이 더 아픕니다.
돌아가시기 두달 전 백병원으로 병문안을 갔을 때는 배에서 복수를 빼내는 고통 중에도 유머를 잃지않고 농담을 하셨지요. 스스로 목욕을 할 수 없어서 간병인이 목욕을 시켜주는데, "리영희가 한 물건인 줄 알았는데, 별 물건 아니라고 할 것"이라면서 껄껄 웃으셨지요. 그런 극한의 고통 중에도 여유와 유머를 잃지않던 그 모습이 참 좋았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