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과 공기놀이를 하는 글라라 수녀
서울 영등포구 신길5동 천주교살레시오여자수도회. 사회에서 죄를 지어 소년원에 가기 전단계인 ‘6호 처분’을 받은 40여명의 소녀들이 6개월간 거쳐가는 마자렐로센터가 있는 곳이다.
아프리카 수단에서 헌신하다 선종한 이태석 신부와 같은 수도회의 정신으로 살아가는 김인숙 글라라 수녀(54)를 만났다. <너는 젊다는 이유 하나로 사랑받기에 충분하다>(휴 펴냄)의 저자다. 밝고 맑은 미소는 나이를 가늠하기 어렵게 한다. 젊지않아도 사랑받기에 충분한 그다.
글라라 수녀와 함께 사는 이들은 처녀티가 풍기는 15~18세 소녀들이지만, 그에겐 ‘아이들’이다. 그의 사무실에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훤히 보이는 창문 밖으로 아이들은 안을 들여다보고, 때론 인사를 건넨다. 이곳에선 어느 곳도 격리된 공간이 없다. 그래서 8명의 수녀를 비롯한 20명의 ‘선생님들’도, 아이들도 숨을 곳이 없다.
김인숙 글라라 수녀
한 순간도 아이들에게 눈길을 떼지 않기 위한 살레시오수도회의 독특한 구조다. 불상사를 미리 예방하는 것으로 유명한 살레시도수도회 교육의 핵심은 ‘아시시덴차’(임장지도)다. 아시시덴차는 늘 현장에 있는다는 뜻이다. 이 슬로건에 따라 수녀들은 24시간 아이들과 함께 생활한다. 식사도 함께 하고, 화장실도 같이 쓴다. 숨어 쉴 곳이 없는 아이들이 불편하지않을까.
글라라 수녀도 처음엔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아이들이 감시받는다기보다 관심과 사랑을 받는다고 느끼도록 친절과 온유로 대하면 아이들은 눈길을 부담스러워하기는 커녕 너무도 좋아한다. 이곳에 온 아이들은 어려서부터 ‘엄마의 부재’를 경험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부모의 이혼이나 엄마의 부재로 어려서부터 혼자 방치되면서 또래 아이들과 어울려 폭력과 성매매 등 범죄에 빠져든 아이들은 외로움이 세포 속에 켜켜히 박혀 있다. 그래서 생전 처음 느끼는 관심의 눈길과 배려에 그렇게 감격해 할 수 없다. 처음 받아보는 ‘인간 대우’ 에 감사해하는 아이들은 6개월 후 이곳을 떠나면서 “수녀님과 선생님은 참 좋은 분들 같다”며 수줍은 미소를 띠고, 그리움의 편지를 보내오곤 한다.
글라라 수녀와 함께 센터 여기저기를 도는 사이 스스럼없이 포옹하고, 수녀와 어울려 공기놀이를 하는 아이들은 이미 인생의 쓴맛을 보았다하더라도 천상 엄마 품이 그리운 아이들의 모습이다. 복도 끝 한쪽 방에선 아이들이 나란히 누워 침을 맞고 있다. 아이들은 술,담배 때문에 위장과 간을 비롯해 몸이 만신창이가 돼 있는 경우가 많다.
“이 아이들의 몸 상태를 보면 엄마의 부재와 가난이라는게 얼마나 몸 깊숙히 박히는 지 알지요.”
글라라 수녀는 어린 아이들이 감내했을 삶의 무게에 더 이상 말문을 잇지 못한다. 글라라 수녀도 밖에선 ‘문제아’로 낙인 찍은 아이들과 이토록 가까워지리라곤 이곳에 온 3년 전까지는 상상도 못했다.
마자렐로센터 복도에서 한 소녀와 이야기중인 글라라 수녀
“마자렐로에 있던 아끼는 후배가 잇몸이 다 떳기에 ‘인생은 장기 마라톤인데, 그렇게 온 에너지를 한꺼번에 다 쏟아버려서 대체 어쩌려고 그러냐’고 핀잔 아닌 핀잔을 줄 때 그 후배가 빙그레 미소만 짓더라고요. 저도 마자렐로에 온 이후에야 그 미소의 이유를 알았지요.”
그는 이 아이들을 만나 행복이 무엇인지 알았다. 이 세상에 자신의 관심과 사랑을 가장 필요로 하는 아이들이 여기에 있었기에 행복했고, 온 힘을 쏟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글라라 수녀에게 요즘 세계경제개발기구 소속 국가 가운데 최고라는 우리나라 청소년들의 자살율을 거론하며, ‘가정과 사회에 대한 불만과 삶의 고통이 누구보다 심한 이 아이들은 어떠냐’고 물었다.
“이 아이들은 자살 같은 거 안해요. 자살은 부모들이 삶의 쓴맛을 전혀 경험하지 못하게 비닐하우스 속에 키운 아이들이 어느날 힘든상황을 직면하지 못하고 자포자기 하는 거지요. 고생하며 큰 우리 아이들은 이미 고통을 감내하는 힘을 지니고 있어요.”
마자렐로센터 앞 잔디밭에 선 글라라 수녀
과연 어느 쪽이 ‘문제아’일까. 글라라 수녀는 “정말 바보라면 가출할 엄두조차 못낸다”면서 “우리 아이들은 어느 아이들보다 똑똑하다”고 말한다. 그도그럴 것이 최근 중졸과 고졸 검정고시엔 불과 한두달 공부해놓고 16명 응시자 가운데 15명이 합격했다. 글라라 수녀는 “비닐하우스 화초처럼 자란 아이들은 외워서 억지로 글을 쓰려고 애쓰지만 인생의 다양한 경험을 하고 삶의 고뇌를 아는 이 아이들은 글을 술술 잘 풀어낸다”면서 “이곳에서 배우는 커피 바리스타와 네일아트와 바느질 등에서도 얼마나 창조력이 뛰어난지 모른다”고 입을 침을 튀며 자랑한다.
하지만 6개월 뒤 아이들이 가정으로 돌아가면 다시 혼자 방치돼 또래 친구들과 어울려 옛관성 속으로 휩싸이는게 너무나 속상하다. 글라라 수녀는 “이 아이들과 계속 살 수 있는 건물만 한 채 있다면, 이 아이들이 건강한 사회인으로, 또 좋은 엄마로 성장해가도록 할 자신이 있다”고 말했다. 조금만 더 관심과 사랑을 쏟아준다면 우리 사회의 문제아가 아니라 세상의 빛이 될 아이들을 보듬어 안을 꿈이 글라라 수녀의 눈 속에서 빛나고 있었다.
글·사진 조현 종교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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