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이소선 여사 빈소를 찾아 문상 중인 설악산 신흥사 조실 오현 스님
6일 오후 5시쯤 이소선 여사의 빈소인 서울 종로구 연건동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서 설악산인을 만났다. 지난달 설악산 신흥사 조실로 추대된 무산 오현 스님(79)은 강원도 불교계의 맹주다. 불타서 복원한 낙산사도, 조계종 종조인 도의국사가 출가한 진전사도, 백담사도 모두 그의 관할 하에 있다.
불교 승려가 이소선 여사의 빈소에 온 것은 그가 유일한 듯싶다. 교회에서 주일학교 교사를 했던 전태일의 분신 이후 교회가 앞장서 노동자들의 인권과 사회정의를 외쳤다. 또 전태일의 죽음에 의해 새로운 예수를 발견한 안병무 등에 의해 민중신학이 태동했고, 이소선 여사의 노동인권 투쟁에도 양심적 목회자들이 늘 힘이 되어주었다.
그런데 우리나라 나이로 80이 된 노스님이 이소선 여사의 빈소에 나타난 것이다. 그가 나타나자 이소선 여사의 자녀들과 사위들은 그를 익히 아는 듯 인사를 했다.
그는 만해사상실천선양회를 만든 장본인이고, 2년 전 고인은 만해상을 수상했다. 오현 스님과 인연을 맺은 뒤 고인은 오현 스님을 그리워했고, 병석에서도 “설악산에 가서 큰스님을 한 번 뵙고 싶다”고 했다고 한다.
오현 스님은 만해의 후신으로 불릴만큼 만해 한용운을 우리 시대의 사표로 만든 인물이다. 1997년 그의 주도로 창설된 만해대상은 <조선일보>와 공동으로 주관했다. 그래서 만해 한용운이 어떤 인물인데, 친일 전력을 지닌 <조선일보>를 통해 만해사상을 선양한다는 것이냐는 비아냥을 사기도 했다. 만해와 각별했던 <조선일보> 방응모는 만해를 늘 돌보았고, 까다로운 만해도 방응모에 대한 시를 쓸만큼 가깝게 여겼다”고 당대부터 이어진 각별한 인연을 그 계기로 내세웠다.
만해상은 평화부문과 실천부문, 문학부문, 포교부문 등으로 나누어 97년부터 시상됐다. 올해 네팔의 여성인권운동가 코이랄라, 지난해 노벨수상자이기도 한 이란의 여성운동가 시린 에바디를 비롯해 만델라, 김대중, 달라이라마, 리영희, 고은, 조정래, 강원용 목사, 함세웅 신부, 법륜 스님, 정주영, 박원순 등이 이 상을 수상했다. 내년엔 1인당 상금을 3천만원에서 5천만원으로 올릴 예정이다. 상금 뿐 아니라 수상자들의 권위로 벌써 아사이에서 최고의 상으로 떠오르고 있다.
보수와 진보를 망라해 누구든 만나면서도, 그는 70~80년대 엄혹한 시절 공권력에 쫓기는 인사들을 많이 감춰주면서도 뒤를 돌보아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 동안 수백명의 가난한 청소년들에게 몰래 장학금을 주어오기도 했다.
백담사에 한번 들어가면 나오지못하고 수행만 해야하는 무무관을 지어 선승들의 수행을 돕거나 조계종 종조의 출가찰인 설악산 진전사를 복원한 것은 출가승으로 도리일 뿐, 그의 본분사는 아닌 듯 싶다.
남으로부터 돈을 받아내기도 잘하고, 쓸 곳에 쓰기도 잘하는 것으로 알려진 그는 막행막식의 모습을 감춤 없이 드러낸 솔직한 언행으로도 유명하다.
빈소에 앉은 그는 사람들이 많은 것을 보고 “임금이 죽어야 국상이 아니고, 모든 사람을 안은 사람이 죽은 이 여사님의 상이 국상”이라고 말했다. 그는 주위 사람들이 “이 여사는 노동자들의 어머니”라고 하자, “나에게도 젖을 먹인 우리 모두의 어머니”라며 “제대로 배우지 못했음에도 참으로 지혜롭고 모든 사람들을 품어안을 만한 큰그릇이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날 이소선 여사의 빈소에 나타남으로써 그가 아무도 몰래 노동운동을 하는 전태일기념사업회에 매달 30만원씩 후원을 해온 사실도 알려졌다. 그의 법호가 안개산이란 뜻의 ‘무산(霧山)’이다. 안개속에서 산승의 진면목은 무엇인가.
조현 종교전문기자cho@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