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들어 개신교계 안팎에서 ‘야간 십자가 조명’에 대한 논란이 있었다. 너무 밝은 십자가 조명으로 인해 인근 거주자들이 수면권리를 침해받는다는 주장이 있었고, 개신교 내에서도 일각의 비난을 불식시키고 친환경적으로 전력 소모량도 줄이는 방향으로 전환하자는 ‘친환경 십자가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이런 논란이 있기 오래 전에 이미 십자가에 대한 고민을 한 목사와 교인들이 있었다. 지난 1992년 수원시 서둔동의 한 상가건물 지하에 세든 수원등불교회는 ‘등불’을 켜는 마음으로 옥상에 십자가를 달았다. 그 십자가 첨탑 아래 까치 가족이 둥지를 틀었다. 그런데 요즘처럼 비가 많이 내리던 어느날 까치가 십자가 전등과 연결된 전선을 쪼았는지 합선이 돼 옥상에 불이 나 까치 새끼들이 다 타죽고 말았다. 교회에선 그날 회의를 열었다. 한쪽에선 또 불을 밝히면 다른 까치들이 죽을 수가 있다며 우려했다. 그러나 다른 한쪽에선 지하에 세든 교회가 십자가마저 달지않는다면 사람들이 우리 교회를 어떻게 알고 찾아오겠느냐고 했다. 난상토론 끝에 수원등불교회는 결국 까치의 생명을 살리기 위해 십자가의 불을 밝히지않기로 했다.
갸날픈 생명의 아픔을 공감해 그들 쪽에서 그런 결정을 내렸던 장병용 목사와 그 교인들이 이번엔 장애인들의 십자가를 졌다. 그들이 뛰어난 예술적 재능을 지니고도 몸의 장애와 세상의 편견 때문에 어둠 속에서 살아가는 장애인들의 예술혼에 불을 지피기 위해 만든 ‘장애인 예술인 공간’ 인 ‘에이블아트센터’가 16일 오후 4시 경기도 수원시 권선구 금곡동 1021번지에서 문을 연다. ‘에이블아트’는 ‘가능성의 예술’ 또는 ‘장애의 예술’이란 뜻을 담고 있다.
장애인예술가들과 이야기하는 장병용 목사
수원등불교회 교인들과 수많은 이들의 도움으로 110평의 땅에 지하2층, 지상 7층으로 들어선 에이블아트센터는 24년 전 장병용(53) 목사의 ‘소망’이 씨앗이 됐다.
당시 고향인 경기도 여주에서 목회를 하던 장 목사는 그림에 천재적인 재능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뜻을 펼치지못하고 결국 여주대교에 몸을 던진 죽마고우의 죽음을 체험한다. 그는 친구처럼 장애 때문에 재능도 펴지못하는 이들의 꿈을 이룰 공간을 마련하겠다고 다짐했다. 그런 그에게 눈에 뜨인 것이 에이블아트의 선구자였던 하리마 야스오 소장이 이끌던 35년 전통의 일본의 민들레집이었다. 민들레집같은 장애인예술센터를 만들기 위해 나섰지만, 상가건물에 세들어있는 신자 100명 남짓의 수원등불교회 처지에선 언감생심 꿈조차 꾸기 어려웠다. 하지만 신자들이 그의 꿈을 이해하며 매년 바자회를 열어 1천만원가량씩 모았다. 바자회 때마다 류연복 화백을 비롯한 많은 예술가들이 자신의 작품을 기증해주었다. 기금 마련을 위한 음악회엔 세계적인 가수 비와 네손가락의 피아니스트 희아 등도 함께해주었다. 3년 전 땅을 사 겨우 공사를 시작했지만 건축비가 없어 1년 만에 공사를 중단하는 등의 우여곡절 끝에 완공의 기쁨을 맞보았다.
에이블아트 센터엔 회화실, 도예실, 공예실, 영상실, 음악실,전시실 등이 마련돼 있다. 지역민을 위한 공연장과 문화카페, 하늘공원, 장애인 예술가들의 작품을 파는 아트숍도 있다. 건평 425평의 공간에 아기자기한 배치를 보면 장 목사를 비롯한 스텝들의 고심과 배려가 단박에 느껴진다.
에이블아트센터는 이곳에 상주하며 꿈을 펼칠 ‘장애인 스튜디오 신진작가’ 10명을 최근 선정했다. 또 장애인 예술가들의 작업을 도울 ‘아트 서포터즈’ 10명도 함께 뽑았다.
에이블아트센터에선 이들 장애인신진작가들 말고도 일반 장애인들과 지역민들을 위한 단기 참여 프로그램들을 준비하고 있다.
개관식엔 일본 민들레집에서 온 자폐증화가 야마노 마사시가 관객들 앞에서 직접 ‘라이브 페인팅’을, 두 손을 사고로 잃은 우리나라 석창우 화백이 ‘서예 크로키’를 각각 시연한다. 또 장애인과 비장애인 20여명으로 구성된 에이블아트오케스트라가 연주하고, 시각장애인 재즈피아니스트 정명수씨의 노래와 연주가 이어진다.
장병용 목사는 “인간의 순진무구한 에너지를 그대로 쏟어내는 장애인들의 원초적 생명력과 지적 장애인들이 펼쳐내는 무한한 상상력이 오히려 병든 세상을 치유할 것으로 믿는다”면서 “교회 예배당만 지을 것이 아니라 장애인, 지역민과 함께할 이런 대안적 교회를 세우는 지역문화운동이 수원말고도 전국 여기저기에서 나오길 바란다”고 말했다. http://www.ableart.or.kr/ 070-8091-1077.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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