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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심정 조현이만난사람

탐욕도 벗어놓고 염불도 내려놓고 더불어 삶

등록 2011-05-12 11:00

 

 열린공동체 가꾸는 마곡사 원혜 스님

   주민-귀농자-도시인 함께 나누는 터 닦아

 잃어버린 흙의 감성 회복, 나도 남도 치유

 

 옛부터 ‘춘마곡 추갑사’(봄엔 마곡사, 가을엔 갑사가 최고)라 했던가. 충남 공주시 사곡면 태화산 골짜기에선 태극 곡선으로 휘감아 도는 계곡물을 머금은 신록들의 응원에 수백 년 동안 전각을 지탱해온 고목들이 천년의 침묵을 깨고 용틀임을 시작한다.

 마곡사는 <정감록>에 의해 전쟁에도 화가 미치지 않는 열 곳(십승지) 중 한 곳으로 여길 정도로 사람이 살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명당으로 꼽혔다. 정감사상이 유행했던 황해도 지역민 1천여 명이 이곳 샘골로 이주해올 정도였다. 일제의 명성황후 시해에 대한 울분을 참지 못한 청년 백범 김구가 일제 장교를 죽인 뒤 숨어들어 머리를 깎고 출가했던 것도 마곡사였다.

 

 전쟁도 피하는 십승지 중 한 곳…백범도 일제 장교 죽이고 피신

 

 그런 은둔의 골짜기 마곡사에 새로운 바람이 불고 있다. 마곡사 홈페이지(www.magoksa.or.kr)에 들어가면, ‘마곡사공동체’의 이름을 지어달라는 공지문이 가장 먼저 눈에 띈다. 마곡사에 ‘공동체’가 화두로 떠오른 것은 원혜(57) 스님이 지난 2009년 가을 주지를 맡으면서부터다.

 지난 6일 그 변화를 이끄는 주지 원혜 스님이 차 한잔을 건네준다.  평소 말수가 거의 없음에도 가끔씩은 구수한 입담과 평화로운 미소를 잃지 않은 그를 닮은 차다. 그와 마곡사 식구들이 직접 심어 거둔 돼지감자차다. 마곡사에서 직접 키운 것이 돼지감자만은 아니다. 고구마와 감자와 호박과 콩과 고추와 온갖 채소들까지. 마곡사 공양에 올라온 먹을거리들의 대부분 마곡사 스님들과 직원들, 템플스테이 참가자들이 경내 생태농장 2천여 평에서 가꾸고 거둔 것들이다. 배추가 ‘금치’였던 지난 늦가을엔 이곳에서 심은 배추를 지역민들에게 몇 포기씩 나눠주고, 함께 김치를 담가 다문화가정 등에 나눠주기도 했다.

 

 원혜 스님은 절식구들만이 아니라 인근 지역민들과 귀농자들, 도시인들과 함께 나누며 살아가는 ‘마곡사 공동체’를 꿈꾸고 있다. 승가공동체만이 아니라 ‘자연과 인간, 인간과 인간, 농촌과 도시’가 함께 어우러지는 ‘열린공동체’를 만들어보자는 꿈이다. 마곡사가 250만여 평의 땅을 가지고 있는 것을 비롯해 산사는 많은 땅을 가지고 있음에도 놀리고 있고, 도시인들은 시골에 내려와도 땅이 없기 때문에 도시인도 살고, 땅도 활용케 해 산사와 도시인이 함께 살 활로를 개척하고 나선 것이다.

 원혜 스님은 열아홉 살에 산사로 출가해 오래 숲에 머문 ‘산인’이다. 그러나 그도 1999~2007년까지 서울 강남 봉은사 주지를 지내며 도시생활을 해볼 만큼 해보았고, 도시인들의 고달픈 모습을 누구보다도 가깝게 지켜보았기에 “시골 가면 뭘 해서 먹고 사느냐”며 고개부터 절레절레 흔드는 도시인들을 향해 “교통 지옥, 입시 지옥, 생업 지옥에서 생고생하지 말고, 좀 적게 쓰면서 좋은 공기 마시고, 조금씩 나눠 먹고, 수행하면서 함께 살아가자”고 말할 수 있다.

 

 10만여 평에 귀농인들과 함께 할 공동체농장 계획

 

 그래서 그는 절 인근에 귀농자가 살 집만 마련하면 마곡사 경내의 땅을 함께 경작할 수 있도록 해볼 작정이다. 수십 년 전까지 1천여 명이 살던 샘골엔 이제 12가구만 남아있다. 이 일대 땅 10만여 평에 귀농인들과 함께 가꿀 공동체농장을 만들어보겠다는 것이다.

 원혜 스님이 공동체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10년 전 한겨레출판사가 세계 10여 개 공동체 체험기를 엮은 <세계 어디에도 내 집이 있다>는 책을 접한 뒤부터였다. 파괴와 오염을 일삼는 현대 물질문명의 폐해로부터 벗어나 지속가능하고 상생할 수 있는 대안은 공동체에 있다는 확신이 선 것이다.

  이곳에 와서 처음엔 공동체를 한다면 많은 이들이 함께 할 것으로 기대했지만, 현대인들의 두려움은 예상보다 컸다. 시골에 내려와 경쟁 대열에서 낙오하고, 먹고 살길을 염려한 도시인들은 공동체에 합류하기를 꺼려 했다. 일부에선 교육이 가장 문제이니 영어학교를 이곳에 열면 도시인들이 자녀교육 걱정 없이 이곳에 올 것이라고 했다. 그래서 한때는 영어학교 개설을 검토하기도 했지만, 그것은 그가 진정으로 꿈꾸는 공동체가 아니었기에 일단 계획을 접었다. 그리고 함께 모여 살지 않는다 하더라도 사찰들이나 지역민들, 신자들과 함께 우선 해갈 수 있는 것부터 하나하나씩 해가기로 했다.

 그가 마곡사에 와 백범 삭발터 옆 계곡에 놓은 멋진 디딤돌처럼 지금은 공동체의 초석을 놓는 단계다. 공주와 유구 등의 농민들과 함께 2~3개월에 한 번씩 한 ‘마곡사공동체 만들기’를 위한 워크숍은 준비운동이었다. 워크숍에서 목조건축물의 단점 때문에 절 예산의 10% 가량을 난방비로 소비하는 절집안부터 생태적 에너지 환경을 만들어가야 한다는 지적이 있자 그는 말사들과 함께 전각 내부의 틈새 메우기부터 시작했다. 오는 14~15일 마곡사와 숲길에서 열릴 신록축제에서도 참가자들이 자연 속에서 캠핑을 즐기거나 성냥 5개비로 라면을 끓이는 효율적인 에너지 사용 실험을 함께 해보도록 한 것도 작은 것부터 생태적 환경을 길들이자는 것이다.

 

 흙집 짓기 배워 살 집 차례로 지어보자는 계모임 만들어

 

  최근엔 시민운동을 하다 인근으로 귀농한 박승옥 전 시민발전소소장 등과 함께 인근 폐교터에 생태에너지건축학교를 열었다. 생태에너지건축학교 발기인들이 벌써 흙집 짓기를 배워 살 집을 차례로 지어보자는 계모임도 만들었다. 또 일단 마곡사공동체를 단 며칠만이라도 함께 해볼 수 있는 3박4일, 1주일, 21일 단기출가학교도 6월부터 열 계획이다. 가족형 템플스테이도 준비 중이다. 한 가족들에게 경작할 땅 5~6평씩을 나눠주고 수확물 절반은 자기 집으로 가져가고 절반은 불우한 이웃들과 나눠 먹도록 해보겠다는 것이다. 그렇게 잃어버린 흙의 감촉을 통해 감수성을 회복하고 이웃과 그 수확물을 나누면서 자신도 치유하고, 남도 치유시키는 그런 세상을 조금씩 조금씩 만들어가보자는 것이다.

 원혜 스님이 지친 도시인들에게 그런 삶에 함께 하자며 다시 손짓을 한다.

 “경제성장을 하고, 부자가 되어야 한다는 오직 한가지 이데올로기만을 향해 치달으면서 공기, 땅, 물 등 자연이 다 오염됐어요. 그건 결국 사람이 오염됐기 때문이지요. 세상의 이데올로기에 의해 우리 자신이 탐욕의 덩어리가 되어버려 빠져 나올래야 빠져 나오지 못할 정도가 되어버렸어요.  대단히 어리석거나 대단한 용기를 가진 사람이 아니라면 말이지요.”

 마곡사를 환란의 도피처인 십승지가 아니라 탐욕의 현대병을 이겨내는 치유처로 만들어가고 있는 원혜 스님이 마곡사 숲속에서 지친 도시인들을 향해 손짓하며 부르고 있다. 

 공주/글·사진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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