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불교 제자들이 말하는 교조 소태산
“전주 건달 대장도 무릎 꿇고 머리 조아려”
원불교는 교조인 소태산 박중빈 대종사(1891~1943)가 1916년 4월28일 대각(大覺·큰 진리를 깨달음)을 함으로써 시작된다. 올해는 그로부터 아흔다섯 해째인 원기 95년이다. 원불교는 ‘모두가 은혜입니다’라는 주제로 진리와 은혜를 나누는 다양한 봉축행사를 펼친다. 봉축 분위가 무르익은 전북 익산 원불교 중앙총부를 찾았다.
전남 영광에서 태어나 깨달음을 얻은 소태산이 1924년 옮겨와 ‘종교’로서 원불교를 시작해 열반 때까지 머물며 수많은 제자를 길러낸 곳이다. 익산시내 원광대 건너편 수만 평의 총부는 오래된 구옥들과 새건물, 고목과 조그만 꽃들이 정갈하게 어우러져 마치 잘 짜인 원불교의 진리 체계를 눈으로 보는 듯하다.
직접 지도 받아 생전 모습 생생히 기억
연보라빛 제비꽃밭 사이로 허름하지만 단정한 구옥이 앉아 있다. 소태산이 머물던 ‘조실’이다. 그곳에서 생전에 소태산을 직접 접했던 제자들이 스승의 향기를 전한다. 원광대 총장을 지낸 문산 김정용 종사(85)와 원광대 부총장을 지낸 아타원 전팔근 종사(81)다. 소태산이 열반한 1943년 전에 교단에 들어와 직접 지도를 받은 인물들의 대부분이 세상을 뜨거나 노환인 현재까지도 소태산의 생전 모습을 생생히 전할 수 있는 ‘드문’ 인물들이다.
아타원 종사는 조실채에서 30여 미터밖에 떨어지지 않은 총부 안에서 태어나 소태산을 ‘할아버님’이라고 부르며 자랐다. 경기여고와 서울대를 나와 유학까지 다녀온 재원이었지만, 소태산에 대한 ‘일심’에서 벗어난 적이 없는 삶을 살았다.
소태산과 원불교 2대 종법사인 정산 송규 종사가 ‘인연’을 맺도록 해준 조모로부터 늘 ‘익산에 생불이 계시다’는 말을 듣고 자랐던 문산 종사가 소태산을 처음 만난 것은 초등학교를 졸업한 이듬해인 14살 때였다.
“혼자 익산역에 내려서 대종사님(소태산)에게 드리려고 일본과자점에서 셈베(전병)과자를 사가지고 와 조실채에 들어가자마자 벽이 꽉 찬 듯이 크고 빛나는 분을 보고 할머니 말씀이 틀림이 없다고 느꼈다. 들고온 꾸러미를 보고 대종사님이 ‘뭐냐’고 묻자, ‘대종사님 입맛 다시라고 가져왔습니다’라고 말씀드리자 얼마나 크고 호탕하게 웃으시는지 어리둥절했는데, 옆에 있는 주산 종사님이 ‘촌에서는 입맛 다신다는 말을 경어로도 씁니다’라고 말해 왜 그렇게 웃으시는지 알았다.”
당시 소태산의 모습을 담아 이번에 <생불님의 함박웃음>(원불교출판사 펴냄)을 출간한 문산 종사는 “대종사님은 목소리가 워낙 커서 마이크가 없는데도 백 미터 밖에서도 잘 들을 수 있었다”고 했다. 그는 또 “정산 종사님은 쳐다보면 눈이 안기는데 반해 대종사님은 안광이 빛나 쳐다보는 내 눈이 아래로 똑 떨어졌다”며 “꾸지람을 할 때는 무섭게 했는데도 조실채에서 나올 때는 누구나 웃으며 나온 것을 보면 그분의 능력을 알 수 있었다”고 했다.
‘너보다 못한 사람들을 너만큼 끌어올려라’
“이곳에 굉장한 사람이 있다는 소문이 나니 전주의 건달 대장이 자기가 봐야겠다며 찾아왔다. 조실채 문을 열자마자 대종사님이 ‘앉으라’고 권하는데도 큰절을 하고 무릎을 꿇고 앉아 ‘참 잘하십니다’라는 말만 되풀이하다 돌아갔지.”
문산 종사는 “일제 때는 지서 주임이 조실채 툇마루 아래 누워서 조실채를 염탐해 몇몇이 방범대를 짜서 막대기를 들고 다니며 일부러 툇마루 아래를 한 번씩 훑고 지나다니자 열흘 뒤부터 순사가 툇마루 아래에 들어가지 않았다”면서 “대종사님이 일제의 초청에 불응할 수 없는 상황에서 갑자기 눈병이 발생해 일본행을 면하게 된 것이나, ‘불법연구회’(원불교의 전신)를 ‘황국불교’로 개명하라는 일제의 강압이 있던 상태에서 갑자기 열반한 것도 교단을 살리기 위한 방편으로 보인다”고 했다.
아타원 종사는 “40~50명이 총부에서 함께 살며 대종사님을 아버님처럼 모시며 모두 공부심으로 일하고 배우면서 늘 가족처럼 화합해 욕이라는 것을 모르고 살았는데, 학교에 가서 친구들로부터 ‘썩을 년’이라는 욕을 처음 배워 이곳에 와서 했다가 어머니에게 꾸중을 들은 기억이 난다”고 했다.
“여고 때 대종사님에게 성적표를 보여드리자 대종사님이 ‘너보다 못한 사람들을 너만큼 끌어올려야 한다’고 했다. 나는 ‘내 공부하기도 바쁜데’라고 한 내 마음을 아는 듯이 대종사님은 ‘그 마음으로는 아무리 공부해도 소용이 없다’며 ‘다른 사람들을 끌어올린다는 마음이라야 큰일꾼으로 쓰일 수 있다’ 고 말씀하셨다.”
마치 오늘 본 듯이 전하는 감동의 회고담이 가득한 조실채 주위엔 오늘도 꽃비가 내린다.
익산/글·사진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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