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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심정 조현이만난사람

절집이 신부도 목사도 함께 하는 ‘사랑방’

등록 2009-07-29 14:10

열린 불교인 삼천사 성운 스님

기독교 행사에 가 성경구절로 얘기하고 “아멘!”

노인 요양원·노숙자 쉼터 만들어 ‘마을 이장님’

 

 

수려한 북한산의 능선들이 어머니의 품처럼 감싸 안은 서울 은평구 진관동 250번지. 은평뉴타운을 지나 북한산 숲에 둘러싸인 ‘삼천사 사회복지법인’ 인덕원이다. 1996년에 개원한 노인요양시설인 인덕원은 지난 2년 동안 잠시 문을 닫고 지하 2층, 지상 4층 300병상인 국내 최대 규모로 새로 지어져 입소자들을 받고 있다.

 

그런데 인덕원 재건축 기간 중 이곳을 떠나 있던 노인들 가운데 사망자를 제외한 전원이 인덕원 재입소를 희망하고 있다. 인덕원의 그 무엇이 입소자들의 마음을 붙든 것일까.

 

붓다마을도 있고 예수마을도 있고 마리아의집도 있고

 

인덕원은 이곳에서 북한산 계곡 안으로 500여미터쯤 올라간 천년고찰 삼천사 주지 성운(68) 스님이 그의 제자 동출 스님 등과 함께 세운 시설이다. 그런데 인덕원 안에 들어서자 별난 푯말이 눈에 띈다. 붓다마을과 함께 ‘예수마을’, ‘마리아의집’이 있다. 아무리 사찰에서 만든 시설이라지만 불자들만 오라는 법이 있느냐며 타종교인들도 이 안에서 자기 종교의 신앙생활을 하면서 지낼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성운 스님의 배려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다.

 

그만이 아니다. 인덕원에는 불교 자원봉사자뿐 아니라 가톨릭과 개신교의 자원봉사자들도 받고 있다. 이곳을 찾은 스님들이 “타종교의 자원봉사자들이 와서 전도를 할 텐데 왜 그들에게 그런 기회를 주느냐”고 물으면 “그들이 더 좋은 일을 하고, 더 좋은 가르침을 지니고 있다면 그들을 따르는 게 무엇이 잘못이냐”고 반문한다. 한마디로 툭 트여 있다.

 

그가 이곳에 정착한 70년대에 이 지역 사회복지 분야엔 개신교나 가톨릭과 달리 불교의 참여는 전무했다. 그래서 대부분의 지역 행사는 기독교(개신교+가톨릭) 분위기가 지배했다. 그런 모임에 초대받아 강단에 서면 성경구절로 이야기를 하고, 그들의 기도가 끝나면 스님도 함께 “할렐루야!”와 “아멘!”을 했다. 그 말에 어떤 ‘가치판단’을 해 시비 분별하지만 않는다면 “사바하!”나 “관세음보살!”과 다를 게 뭐가 있느냐는 것이다.

 

“불교든 기독교든 사람들 아픔 함께 안 하면 뭔 종교?”

 

30여년 전엔 지역에서 ‘약자’였기 때문에 그랬다치지만 이제 산하에 노숙자쉼터와 청소년독서실, 도서관 35개 시설을 두고 직원수만 400여명 넘는 ‘지역사회계의 최고 실력자’가 됐지만, 그에겐 약자 때의 서러움을 되갚아줄 복수심이나 저항감보다는 예나 지금이나 타자를 배려하는 관용과 넉넉함이 배어난다. 그는 오히려 기독교를 고맙게 생각한다. 만일 기독교가 없었다면 불교는 아직도 깊은 잠에서 깨어나지 못한 채 중생들과 함께 고락을 함께하지 못했을 것이라며 기독교는 한국 불교를 깨워준 은인이라고 여긴다. 그래서 은평·서대문 일대에선 스님들 뿐 아니라 가톨릭 신부와 개신교 목사들도 삼천사를 사랑방처럼 찾곤 한다.

 

그는 스님이나 불자로서 타종교인들을 만나는 게 아니라 한 마을에서 살아가는 지역민으로서 만날 뿐이다. 그는 “불교가 됐든, 개신교가 됐든, 가톨릭이 됐든, 무슨 종교이든 사람들의 아픔을 보듬고 함께하지 않는다면 그런 종교가 지역에서 무슨 존재 가치가 있느냐”는 게 그의 생각이다. 그래서 수행자로서 누구보다 성실히 살아온 그지만 그는 지역민들을 만날 때는 ‘출가 승려’가 아니라 ‘마을 이장’에 가깝다.

 

그가 길도 없던 삼천사에 처음 들어왔을 때 이 주변은 상의군경촌, 폐결핵요양원, 철거민촌으로 오갈데 없이 서울 주변부로 밀려난 사람들 일색이었다. 집은 하나같이 다 쓰러져가는 판자촌이었다.

 

“내가 사회복지를 하려고 작정해서 한 게 아니고, 이 일대가 이런 상황이어서 굶주리는 사람들과 밥과 라면을 나눠 먹다 보니 여기까지 온 게지.”

 

그는 혼자 먹기에도 넉넉치 않았던 먹을거리를 주위와 나눠 먹으며 여기까지 왔다. 그 과정에서 목사와 신부들과 힘을 합쳐 지역민들을 위해 일했고, 사형폐지운동도 함께했다

 

모든 개인적 신앙 자유 보장한 아쇼카왕이 박사논문 주제

 

그런 삶의 멘토는 아쇼카왕이었다. 동국대에서 사회복지학을 강의하는 그의 박사학위 논문 주제이기도 했던 아쇼카왕은 기원전 2~3세기에 인도 최초의 통일국가를 이룬 인물이다. 수십명의 형제와 500여명의 신하를 죽이고 왕위를 찬탈한 뒤 통일을 이루기 위한 마지막 전쟁에서 죽인 수십만명의 피가 강물을 이루어 흐르는 것을 보고 참회해 불교에 귀의한 뒤 동물병원까지 만들 정도로 인간과 모든 생명을 위한 사회복지 정책을 제도로 정착시켰다. 그의 열린 종교관도 모든 개인적 신앙의 자유를 보장한 아쇼카왕을 닮았다.

 

그가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중생들과 함께하다 잠시 돌아와 머무는 삼천사의 방에 백범 김구가 쓴 편액이 걸려 있다. ‘송무백열’(松茂栢悅)이다. ‘소나무가 무성하게 자라면 잣나무가 이를 기뻐한다’는 것이다. 사돈이 땅을 사면 배 아파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기뻐한다는 뜻이다. 그래서 그의 주위는 불교와 기독교, 빈자와 가진자들이 함께하는 ‘은혜로운 평화의 땅’(은평)이 되었나 보다.

 

글·사진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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