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흥주 굿연구소장 강연
30년 무속연구 ‘굿전도사’, “굿은 우리 민족 바탕 문화”
천지인으로 삼신할매 조명…“자연·생명·창조 원리 담겨”
‘주역의 대가’ 야산 이달 선생의 맥을 잇는 동방문화진흥회(회장·이응문)가 서울 동숭동 대학로 흥사단에서 매달 한 번씩 여는 시민문화강좌에서 우리 민족의 정신사를 이해하는 데 큰 실마리를 제공하는 네 가지 무(舞·춤, 巫·무속, 武·무예, 無·무심) 강좌가 연속으로 펼쳐지고 있다.
지난달 열린 첫 번째 무(舞) 강좌에서 무용가인 서울대 이애주 교수는 “무(舞)는 무(巫·무속)에서 나왔다”고 역설했다. 이 교수가 춤의 근원이라고 말한 무(巫) 강좌가 지난 20일 열렸다. 굿연구소 박흥주(51·경희대 국문과 객원교수) 소장이 강당을 가득 메운 1백여명 앞에서 ‘삼태극으로 나타난 삼신할미’를 주제로 강연에 나섰다.
박 소장은 대학 2학년 때부터 우리민족의 원류를 찾아 전국의 시골마을을 답사한 이래 무속 연구의 외길을 걸어왔다. 곱슬머리와 넓은 이마, 쏘는 듯한 눈, 오똑한 콧날이 그의 외골스런 결기를 그대로 드러내 준다. 근대 불교계의 대선지식인 만공선사(1871~1946)의 모습을 빼닮은 듯한 외모다.
박 소장은 굿 전도사이긴 하지만 신내림을 받은 무속인은 아니다. 그는 농반진반으로 “신의 은총을 받지 못했다”고 말한다. 하지만 굿이야말로 우리 민족의 문화와 기질, 놀이 등 생활 전반에 가장 깊게 스며든 바탕문화임을 확신한 그는 굿음악제의 예술감독을 맡아 굿판이 대중과 어우러지게 하는 데 앞장서왔다. 이날 강좌에서 무속과 대중을 연결시켜준 그의 끈은 삼신할미였다.
한국사람들은 ‘삼신할미가 어머니 뱃속에 우리의 생명을 점지해주었다’는 얘기를 듣고 자라왔다. 우리에게 생명을 주었다는 삼신할미는 어디에서 유래한 것일까.
박 소장은 삼신할미가 삼신(三神)에서 나왔다고 했다. 우리에겐 ‘인격신’으로 다가왔지만, 그 뿌리엔 한국인들의 ‘정신과 사상’이 담겨있다는 의미다.
“셋에는 일과 이가 담겨 있다. 일(一)인 아버지와 이(二)인 어머니, 두 분의 지극한 어우러짐, 즉 창조행위가 가져다준 결과다. 아버지는 하늘성이고 어머니는 땅성이다. 아버지는 햇님이고 어머니는 달님이다. 일과 이가 어우러져 두 성질이 함께 있는 새 생명을 만들어냈다. 그래서 새 생명인 삼(三)은 서로 모순일 수 있는 상반된 성질을 한몸에서 동시에 조화시켜버리는 창조와 완성의 수이자 조화로운 공생을 추구하는 수인 삼을 우리 민족은 너무도 좋아했다.”
박 소장은 자연과 생명, 창조의 원리를 담은 삼신은 우리를 세상에 태어나게 하는 수태신 정도가 아니라 우주창조력을 지닌 한민족 신앙의 중심신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육당 최남선도 이미 <조선상식>에서 ‘삼신’에 대해 “우리 고신도(古神圖)에서 중대한 위치에 있는 점이 분명한데 후세에 와서 이 근본적 실체는 도리어 숨겨지고, 그 여러 속성 중에서 산육(産育)의 방면만 좀 드러났다”고 한탄했다는 것이다.
박 소장은 쌍태극으로 상징되는 중국은 음양사상으로 2수세계관을 갖고 있는 것과 달리 한민족은 3신 사상의 독특성을 지닌다고 보았다.
중국의 경우 씨를 뿌리고 거둬들이는 2단계 과정의 순환원리가 음양과 역의 원리로 정립돼 중국인들은 2를 유난히 좋아하고 ‘3’은 흉수로 여겼지만 한국인은 달랐다는 것이다. 중국인들과 달리 한국인들은 3개의 태극이 한 점을 중심으로 돌고 있는 삼태극 문양을 많이 썼는데, 3개의 태극은 하늘과 땅과 사람을 가리킨다고 한다. 이 3태극 문양은 소고와 북과 부채 등 생활용품 뿐 아니라 서낭당의 문이나 절 집 대웅전, 향교의 외삼문 등에도 보인다.
박 소장은 중국인들의 쌍태극에 대해 “우주만물은 음양 2기가 교감해 변화·생성하는 과정의 결과물”이라는 인식으로 보았고, 한국인들의 3태극에 대해선 “음양 2기는 우주만물, 즉 ‘나’가 있기 위한 조건일 뿐”이라는 인식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 인식의 차이로 인해 우주 본질이 바뀌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을 인식하는 주체가 만들어나가는 삶이나 그 문화는 결과적으로 큰 차이를 가져온다고 했다. 그는 한국인은 하늘과 땅보다도 사람을 중심에 두어 처음부터 끝까지 사람의 생명을 존중하는 생명의 세계관이자 주체의 세계관을 지녔다고 주장했다.
박소장의 말대로 현재 우리나라 국기인 태극기에 그려진 청·홍색의 쌍태극이 중국의 음양 사상을 표방한 것이라면, 우리 민족 고유의 원융 화해 사상을 내포한 삼태극 모양으로 바꾸어야 하는 셈이다.
박 소장은 전통부채에 그려진 음양의 태극문양이 어우러진 쌍태극이 유교의 영향으로 궁과 향교 등에 나타나 있지만, 우리 문화의 뿌리를 담은 삼태극도 경복궁 강녕전과 창경궁 명정문 등에 나타나 있다고 했다. 중국에 대한 사대주의 문화의 영향과 우리 고유 상고시대 문화가 함께 혼재되어 있다는 분석이다.
삼태극의 색은 청·적·황색으로 이뤄져 있다. 그는 이에 대해 <재물보>라는 책에 보면 녹색을 청황색으로 보고 있으므로, 삼태극은 ‘빛의 삼원색’으로 이뤄져 있고, 이 삼원색은 흰색 하나에서 변화된 것이기에 삼태극은 일신이 삼신으로 작용하는 원리를 보여주고 있다고 설명했다.
삼신을 △우주 창조력을 가진 한민족 신앙의 중심신 △천(天), 지(地), 인(人) △환인·환웅·단군 등으로 조명한 그는 우리 생활 속에는 세 가지의 합을 추구한 문화가 유난히 많다고 했다. 예컨대 초가삼간은 부엌과 방과 대청이, 한옥은 지붕과 기둥과 기단이, 한복은 바지와 저고리와 두루마기가 각각 어우러진 것이라는 설명이다. 또 홍어와 김치와 돼지고기를 함께 싸서 먹는 삼합, 굴과 낙지와 주꾸미로 만드는 젓갈, 콩나물과 된장과 두부로 만드는 삼태탕도 세 가지의 어우러짐을 추구하는 문화에서 나온 것이라고 강조했다.
오는 8월17일 오후 7시엔 전통무예인 심무도(心武道)의 이용원 관장이 세 번째 강좌로 무(武)에 대한 이야기를 펼친다.
글·사진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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